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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마녀 May 07. 2022

꿈이 많은 사람의 고백

백상이 주목한, 배우 이준호



영상 예술의 세계가 일상이 아닌 이들에게 사막의 신기루처럼 존재하던 백상예술대상이 꿈을 쫒는 여행자들의 오아시스로 존재감을 뚜렷하게 드러낸 밤이다. 대한민국 영화인들의 축제를 정리하던 대종상이 언제부터인가 유명무실해지고 방송대상이라는 이름으로 연말마다 치러지는 각 방송사의 자화자찬이 통합을 이루지 못하는 때에 전문가의 분별력이라는 무기를 장착한 한국PD대상과 거기에 역사를 얹어 한층 무게감이 돋보이는 백상예술대상은 우후죽순처럼 성장하는 대한민국 연예계의 대표적인 평가기준이 되었다. 그리고 오늘, 2022년에 58회 차를 맞이한 백상예술대상은 코로나시대의 대안으로 등장한 방구석 영화관의 위세를 유연하게 받아들임과 동시에 콘텐츠 고유의 본질을 파악하는 평가자세를 확고하게 지켰다. 적어도 나는 그렇게 판단했다. 백상이 이래서 백상이구나, 하는 밤이다.        



또한 나의, 우리의 최애, 이준호는 오늘밤 더없이 이준호했다.     



주어진 삶의 일상을 파괴하는 덕질을 더는 허락할 수 없어 오늘 현장인 일산행을 포기하고 대신 퇴근을 서둘러 브라운관 앞을 지키면서 오로지 그것만 바랐다. 더도 말고 덜도 말고 이준호가 이준호하길. 이준호라는 이름이 품고 있는 성실과 진정성으로 이루어낸 성장을 세상이 인정해주길 말이다. 간절한 기도와 바램들이 모여 우주의 기운을 이끌어낸 것처럼 수상자의 이름이, 그토록 바라던 이준호의 이름이 호명되는 순간, 당사자도 아닌 나의 심장이 부풀어 올랐고, 눈물이 왈칵, 소리 없이 쏟아졌다. 현장을 함께 하는 팬들의 함성이 화면을 뚫고 달려 나왔다. 함성을 먹고 자란 이준호는 아마도 그 때문에 더 행복했을 것이다.      



팬덤 안에는 이준호를 너무 깊이 사랑한 나머지, 이준호가 출연했다는 이유만으로, 출연작인 옷소매 붉은 끝동이 작품상이나 대상을 수상해야 한다고 믿는 사람들이 많았다. 영상콘텐츠를 기획하고 만드는 과정에 종사하는 1인으로써 들려주고 싶은 판단들이나 나누고 싶은 정보들이 있었어도 말을 많이 아낄 수밖에 없는 순간들이 있었고 그 때문에 오늘 리뷰는 살짝 뒷북 느낌이 없잖아 있다. 이 또한 그러려니 하고 읽으시라~     



나는 옷소매 붉은 끝동이준호 때문에 성공한 드라마라고 생각한다. 이미 잘 짜인 구성의 전달력, 돋보이는 연출력, 캐릭터들의 조합, 배우들의 열연도 큰 역할을 했지만 마지막 화룡점정, 메인 캐릭터의 확고한 이미지 구축에 성공한 사람이 배우 이준호이기 때문이다. 제목이 알려주듯 이 드라마는 궁녀 성덕임이 주인공이다. 정조 이산의 캐릭터를 다각적으로 분석하고 해석해서 실체화 한 이준호가 아니었다면 드라마의 전체적인 진행이 의빈 성씨 성덕임의 일대기로 흘렀을 것이라 조심스럽게 예측한다. 원작에서의 느낌도 그러하고 실제 방영된 드라마 구성 장면 곳곳에서 보였던 흐름이다. 너무 가깝고, 한 인물에게 몰입한 상태라 오히려 바로 보지 못한 많은 부분들이 사실 드라마 곳곳에 배치되어있다.      


차갑고 냉정하고 이지적이지만 의빈 성씨에게만은 진심이었던 로맨티스트 정조를 연기할 수 있는 대한민국 남자배우들은 차고 넘친다고 나는 생각한다. 자기가 맡은 역할에 진심이지 않은 배우는 없다. 많은 배우들이 주어진 역할에 집중하고 역할을 소화해내는 과정에서 좌절하거나 성장하는 모습을 보인다. 그리고 아주 소수의 배우들만이 주어진 역할을 뛰어 넘어 새로운 그 무엇을 만들어내고 그만이 보여줄 수 있는 캐릭터, 그 자체가 된다. 우리는 그런 배우들을 명품배우라 부르고 연기력을 칭찬하며 그가 보여준 새로운 캐릭터에 열광한다. 이준호는 우리에게 이제껏 알지 못했던 정조를 선물했다. 잘 만든 드라마인 것도 맞고, 모두가 성공한 드라마인 것도 맞지만, 결국 이준호가 정조였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었다. 시작도 하기 전에 단지 아이돌이라는 이유만으로 그의 연기력을 폄하했던 누군가조차도 감동시켰을만한 장면들이 매회, 우리의 눈길을 사로잡았다. 덕분에 그 누구에게라도 자신 있게 다시 보기를 추천한다.       



시청률의 기폭제가 된 팬덤의 역할 또한 오롯이 이준호의 것이다. 이준호의 팬덤들은 누구보다 그의 성실과 진심을 믿고 오랫동안 그를 지켜본 사람들이고 드라마의 성공여부와 관계없이 그를 응원하는 사람들이다. 드라마를 보고 연기하는 이준호를 알기 시작한 사람들에게 춤추는 이준호를, 노래하는 이준호를 알릴 수 있는, 이준호의 과거와 현재, 미래를 잇는 연결고리들은 그들의 최애인 이준호가 출연하는 드라마를 알리는데 그 누구보다 열심이었다. 제작사가 따로이 홍보 전략을 마련하지 않았어도 이미 최고의 홍보자원봉사단이 준비되어있던 셈이다. 작품성이 뛰어나고 잘 만든 드라마도 시청률이라는 거대한 벽 앞에서 속절없이 무너지곤 한다. 대중의 관심이 어딘가에 집중하고 있을 때 그 반대쪽에서 선택받지 못한 콘텐츠가 사장되는 일은 이 바닥에서 비일비재하다. 캐스팅의 선택지에서 콘텐츠 생존을 위해 대중적 인지도가 높은 배우를 선호하는 이유다. 그런 의미에서 준비된 팬덤을 가진 이준호의 역할은 드라마의 성공에 지대한 영향을 끼쳤다. 전년도에 시작된 ‘우리집’ 역주행으로 유입된 대부분의 팬덤들이 이준호의 군 제대 후 드라마 팬덤으로 재구성되었고 그들은 회차가 진행될 때 마다 ‘찐팬’으로 변신했다. 춤추고 노래하는 가수 이준호를, 연기하는 배우 이준호로 보기 시작한 것이다. 이준호의 전작들이 이 과정에 덧입혀졌다. 나 또한 이 길게 늘어진 행렬의 끄트머리에 이르러서야 내가 만난 것이 ‘덕통사고’였다는 것을 인정하게 되었다. 얼핏 지난한 과정 같지만 이 모든 일들이 1년 남짓한 시간에 이루어졌다. 팬덤의 역사치고는 꽤 드라마틱한 편이다. 개인 이준호 이전, 2PM 팬덤의 역사까지 미루어 짐작해 보아도 드라마틱하다.      



간절하게 상을 받고 싶었다고 솔직하게 고백하는 반면에 수상소감을 준비하는 일에는 고민이 많았다는 이준호. 꿈과 현실이 달랐던 수많은 경험들을 지나 드디어 스스로의 힘으로 꿈 하나를 가졌다는 자부심을 가진 이준호,  하루를 되새기는 시간, 새벽에 그는 팬들과 함께였다. 



"나는 꿈을 많이 꾸는 사람입니다. 내가 대단해서가 아니라 꿈을 잃지 않고 계속 노력하면서 이뤄나가려 애썼던 진심이 조금은 통했다 싶어요. 그래서 비단 나뿐만이 아니라 과거에 혹은 지금, 그리고 앞으로 미래에 자기 자신을 생각하면서 여러분들도 꼭 꾸는 꿈을 모두 이룰 수 있을 거라는 말을 하고 싶습니다."



스크린이, 브라운관이, 우리 일상에 들어오면서 한 편의 영화, 혹은 드라마로 반짝했다가 사라졌던 수많은 스타들이 우리 곁에 있었다. 쉽게 흥분이 가라않지 않는 불면의 새벽에 주고받는 이야기들로 미루어 짐작한다. 적어도 이준호는 그 별들과는 다른 길을 갈 것이 분명하다고. 그에게는 오래 전부터, 그리고 얼마 되지 않은 시간부터, 혹은 지금부터라도, 그와, 그의 꿈과 항상 함께였던 사람들이, 계속 그의 곁에 있을 것이라는 것을, 그 자신이 진심으로 믿고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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