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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윤재훈 Oct 24. 2021

배낭여행자의 여행법

배낭여행자의 여행법          



“꽃을 밟고 지나간 발자국 뒤로는 벌나비들이 따라간다.”           


     

(키르키스탄 청정 하늘 아래 바다 같은 고산 호수 이시쿨 모래밭, 카라쿨에서)      

    

길 위에 서면

누구나 들꽃이 된다

바람에 서걱이는 

억새의 울음소리를 듣는다     

끝없이 펼쳐진 길을 보면

가슴이 뛴다

저 산모퉁이가 궁금해서 

견딜 수가 없다

                -길 위에서, 윤재훈     


여행은 또 다른 나를 찾아가는 것이다. 잠들어 있는 나의 대지를 깨우는 여정이다. 먼 미지의 풍경을 향하여 한 걸음 한 걸음 내딛은 발자국에는 여행자의 삶과 애환이 묻어난다. 그 길에서 만나는 사람들은 커다란 선지식(善知識)으로 다가올 것이다. 

그러나 그 여행길은 나 혼자만 즐겨서는 안된다. 내가 가는 그 지역에도 도움이 되어야 한다. 쓰레기와 오염물질만 그곳에 남기고 “돈은 다국적 기업이 다 가져가 버리는 그런 관광을 해서는 안된다.” 그 지역에서 나는 농수산물을 먹고 로컬교통을 이용하며, 그 지역에서 물건을 사고, 지역민과 눈빛을 나누는 <교감 여행>이 되어야 할 것이다. 

특히나 가난한 나라 사람들이라고 동정하거나 측은한 눈빛으로 바라봐서도 안된다. 우리 모두는 이 한 시대를 같이 살아가는 동반자이며, 손잡고 가야하는 친구들이기 때문이다.      


“빨리 가려면 혼자가고, 멀리가려면 함께 가라”     


라는 아프리카 속담처럼 우리는 어차피  인생이라는 길을 ‘함께’ 갈 수 밖에 없다. 처자식이 굶고 있으면 가장 먼저 이웃집 담을 넘을 수 있는 생각을 할 수 있는 것이 인지상정(人之常情)이고, 문 앞에서 마주친 이웃의 슬픈 낯빛은 가장 먼저 내 마음을 아프게 하기 때문이다. 특히나 현대 인류는 피할래야 피할 수 없는 ‘WWW(World Wide Web)’로 묶여있기 때문이다.      

코로나 사태에서도 보지 않았던가. 이제 인류의 <성곽 시대>는 끝났다. 자기 나라만 굳건하게 깃발을 나부끼며 성문을 걸어 잠그고 있어보았자, 바람보다 빠르게 철조망을 넘어온다.         


(가자, 키르키스탄의 대자연 속으로)  

   

또한 우리의 여행은 반드시 <생태여행>이 되어야 한다. 세계의 수많은 목숨을 앗아가고 급기야 우리를 집안으로 몰아넣었던 이번 코로나 사태에서 보듯이, 우리는 지구로부터 크나큰 회초리를 맞았다. 여기에서도 어떤 경종을 느끼지 못한다면, 제 2, 3의 슈퍼 바이러스 앞에 인류는 혹독한 댓가를 치르고서야 큰 자탄(自嘆)에 빠질 것이다.      

그것은 중세 말기 유럽을 휩쓸었던 <페스트 경고>에서도 볼 수 있으며, 기원전 430년 스파르타를 상대로 벌인 고대 아테네의 비극적 재난인 투키디데스의 <펠로폰네소스 전쟁사>에서도 알 수 있다. 기실 인류문명의 발상지라는 그리스 종말의 출발점도 역사학자들은‘아테네 전염병Plague Athens’으로 보고 있다.          


(청초한 너)     


내가 좋아서 자연 속으로 나섰다면 그 순간부터 나는 자연과 합일(合一)이 되어야 한다. 일회용품이나 비닐(or 재활용) 등을 사용해서는 안되고, 각종 세제들도 마찬가지다. 내가 “왜, 무엇 때문에 자연(自然) 속으로 들어 왔는가.” 그 이유를 물어보면 자명하다. 

옛부터 우리의 선인들은 경치 좋은 산천으로 나가 자연과의 합일(合一)을 꿈꾸었다, 신라의 화랑도나 우리의 전통 종교들도 다 그렇게 산으로 들어갔다.

산 속에 있는 사찰들도 한 번 보라. 그 품 안에 안겨 있는 느낌이 들지 않는가. 포산(苞山)이다. 산마루와 조화를 이루며 부드럽게 날아갈 것 같은 처마, 시각효과까지 고려한 도톰한 배흘림기둥, 사람이 살 집도 이렇듯 자연 속으로 들어가 걸림이 없어야 한다.  

그런데 우리들의 주거환경은 어떤가? 온 도시를 골리앗 같은 빌딩들이 싸고도는 현대의 도시들을 보라. 너무나 위압적이고 답답하다. 스카이 라인은 커녕 산 정상에서 올라가 보면, 온 도시가 아파트 숲에 쌓여 숨이 막힐 지경이다.

물론 좁은 땅에서 살다 보니 외국인들이 이해할 수 없는 풍경이라고 해도, 도심으로 들어온 바람마저 빠져나갈 틈이 없어 ‘길을 잃는다.’ 빌딩 사이를 빠져나가지 못한 바람들이 해운대 시가지에서는 엄청난 폭풍이 되어 몰려온다. 이건 자연에 대한 크나큰 폭력이다  

    

평생 고생하여 

초가삼간 지어놓고

너 한 칸, 나 한 칸, 

달님 한 칸 들여놓고

청산은 들일 데 없으니 

둘러두고 보리라     


이 얼마나 해학이 넘치는 자연 애찬인가. 넉넉한 선인들의 생각의 품새에 저절로 찬탄이 흘러나온다. 우리는 이런 경험을 사방이 탁, 트인 정자 문화 속에서 얼마든지 느낄 수 있다.       


“코로나는 환경파괴에서 오는, 또 다른 이명(異名)이다.”     


거기다가 현대인의 캠핑문화를 한 번 보자. 자연에 나가서도 집에서와 똑같은 생활을 하려고 한다. 갈수록 대형화되어 가는 텐트를 쳐야 직성이 풀리고, 발전기를 돌리고, 심지어 에어 침대까지 펴두어야 체면이 사는 모양이다. 여기에 집에서와 똑같이 퐁퐁과 샴푸 등 온갖 세제들을 쓴다, 자연 속에서 이런 살풍경(殺風景)이라니. 

사실 자연과의 공생을 꿈꾸지 않는 사람이라면 굳이 자연 속으로 나갈 필요가 있을까, 그냥 집에서 더 편안하게 즐기면 될 텐데?

지금 우리가 철저하게 느끼고 있지 않는가? “코로나는 환경파괴에서 오는, 또 다른 이명(異名)”이라고. 천 년 동안이나 동굴이나 밀림 속에서 잠자고 있던 천산갑, 박쥐 같은 지구상에 모든 존재들을 끌어내는, 인간들의 지나친 그 잡식성에서 온 것이라고.         


(게티이미지 뱅크)  

   

45억만 년의 지구의 역사, 거기서 인간의 역사는 불과 20만 년. 소숫점으로도 나타내기 힘든 0,004%에 해당하는 찰나 같은 순간, 이 지상에 잠시 머물고 있는데, 지나온 45억만 년이라는 어마어마한 세월보다 더 순식간에 이 지구를 망가뜨려 버렸다. 거기에다 수십만 종의 생명체를 이 지구상에서 사라지게 만들었다. 너무나 무지막지한 생명체다.    

  

“이 지구의 바이러스는 인간이고, 코로나는 ‘백신’이다.”     


를 다시 한 번 되뇌어 본다. 하늘을 올려다본다. 지나친 프레온 가스 남용으로 구멍 난 하늘에선 자외선이 폭포처럼 우리의 얼굴로 쏟아지고 있다. 극지에서는 얼음이 녹아 앙상한 뼈만 남은 백곰들이 동족포식(Cannibalism)를 하고 있다.

태평양에는 대한민국 국토의 15배가 넘은 거대 쓰레기 섬이 생겨 엄청난 미세 플라스틱을 물고기들이 먹고, 그것을 다시 우리가 먹는다. 물개는 플래스틱에 목이 감겨 죽어가고 있다.     


     

(“아, 숨쉬기 좋은 시절!” 한강은 수심이 깊어 잉어들이 산란을 하기 위해 중랑천을 오르고 있다. 4대강은 어떨까?)        

  

“이렇게 숨쉬기가 편한 적이 없었다.”     


내가 1초에 한 번은 꼭 내쉬어야 하는 숨, 내 생명 최후의 보루. 그런데 코로나가 세계를 뒤덥자 “이렇게 숨쉬기가 편한 적이 없었다,” 무슨 할 말이 더 있겠는가. 

이 혹성의 표면에 화흔처럼 남아 있으면 안 될 것이다. 지구상의 많은 생명체 중에서 단지 인간만이 이 지구에 가장 해로운 존재였다고, 화석화되어서는 안 될 것이다.  

    

‘코로나가 결코 우리를 버리려고 온 것은 아닐 것이라고, 자위하자.’ 

     

마지막으로 <환락 여행>이 되어서는 안 될 것이다. 교감도 없이 사람을 돈을 주고 사서 비정상적인 짓을 하면서 현지인들의 눈살을 찌푸리며, 나라 망신까지 시키는 그런 망나니가 되어서는 안 될 것이다.


“또 다른 나를 찾아서 떠나온 여행길”, 지나온 길을 뒤돌아보니 더 성장한 내가 보인다. 이 에너지를 자양분 삼아 이 지구상에 더욱 유익한 생명체를 꿈꾸어 본다. 

“쉬엄쉬엄 걸어가는 배낭여행자의 발걸음은 지구와의 상생(相生)을 해야 할 것이다.” 약간의 불편을 감내하기 위해 떠나온 지구 위의 여행 아닌가?    

 

“꽃을 밟고 지나간 발자국 뒤로는, 벌나비들이 따라올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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