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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소도시 감별사 Oct 29. 2022

"엄마 첨성대가 보고 싶어요"

1-1. 경주 소도시에 대한 로망의 시작 

바야흐로 10여 년 전 이야기다. 당시 난 어쩌다 창업을 했다. 원래 다니던 회사를 그만두게 되었을 때 잠시 쉬면서 당시 세 살이었던 아이와 함께 하는 시간도 보내다가 다시 일자리를 찾아서 취업을 하려고 했다. 


그러나 어린 아이가 있는 엄마가 직장을 쉰다는 건 잘못하면 육아에 전념하게 될 수밖에 없는 계기가 되기도 했다. 시부모님이 직장 다니는 동안 육아를 도와주셨는데 내가 잠시 쉬게 된다면 어르신들께서는 육아를 도와주시지 않으실 테고 그러다가 다시 직장에 나가면서 육아를 도와달라고 하기가 쉽지 않을 것 같았다. 처음 직장을 퇴사한 후에는 두 분께는 죄송하지만 퇴사를 알리지 않았고 늘 그렇듯 오전 8시가 조금 넘는 시간 회사 출근하듯 집을 나섰다. 


아는 분 사무실 한 켠이 비어있다고 해 소정의 월세를 내고 이용하기로 했다. 책상 앞에 앉아 이런 저런 구상도 하고 사람들을 만나러 다녔다. 그러다가 하나둘 파트타임으로 크고 작은 일을 맡겼다. 일의 단위도 커져갔고 일도 늘어났다. 자연스럽게 사업자등록증이 필요하게 되었다. 


원래 하던 일은 기자였고 이후 일반 기업에서 홍보 마케팅 일도 해왔다. 독립 후에도 홍보 자료를 만들어 배포하는 일을 주로 하게 되었는데 당시 영향력이 커져가던 블로그 마케팅에 손을 대자 대행을 맡기는 수요가 늘면서 일이 많아졌다. 독립한 지 2년차에는 직원도 한 명 뽑을 정도로 일이 늘어났다. 


당시 난 업력 10년차가 넘는 숙련된 프리랜서였지만 이름있는 대행사보다 규모가 적은 1인 회사라 대행료는 저렴했다. 초창기 인맥을 바탕으로 한 영업이라 잘 아는 분들의 문의를 거절하기 힘들었던 것도 일이 늘어나게 된 주요한 이유가 됐다. 일이 생기는 것은 매우 감사한 일이지만 오히려 회사 다닐 때보다도 휴일에 쉬지도 못했고 휴가도 내지 못했다. 


내 하루 일과는 새벽 5시경 눈을 떠 밤 11시 잠들기 전까지 아이를 케어하지 않으면 일만 했다. 시부모님께서 아이의 어린이집 하원과 저녁 먹이고 노는 일을 도와주셨고 남편은 시간이 되는 대로 주중 저녁과 주말 육아를 도와줬지만 내가 독립한 지 3년차가 되던 해 지방 발령까지 받아 가버리는 바람에 육아 마저 내 몫이 늘어났다. 이와 함께 창업 초기 늘어나는 일을 감당하기엔 점점 힘에 부쳐갔다.   

   

창업 3년 만에 여러 가지로 지쳐가고 있었다. 3년간 휴일도 없이 일하면서 통장이 조금 늘긴 했지만(일한 만큼 버는 업종이라 통장이 늘어나는 것을 실감하기도 힘들었다) 만족도는 크게 떨어지고 있었다. 홍보 마케팅은 일은 재미있지만 ‘나’라는 존재가 잘 드러나지 않고 일이 끝나고 나면 남는 게 없었다. 게다가 대부분 기간단위로 계약을 하거나 프로젝트별로 일을 하다 보니 항상 모든 일에 전력을 다해야 했다(준비도 없이 뛰어들어 프리랜서의 적절한 업무 비용이 얼마인지도 몰랐다). 사실 일반 직장에 다니면 같은 홍보 마케팅 일이라도 전력을 기울이는 때와 좀 덜 그래도 되는 때가 나뉘는데 남의 일을 대신 해주는 대행사는 그게 없었다.  

    

원래 밖으로 돌아다니며 일하는 것을 좋아하는 내가 임신과 출산, 육아를 하는 5-6년 동안 거의 집과 사무실 만을 오가고 있었으니 좀이 많이 쑤시기도 했다. 여행이라도 가고 싶은데 항상 내 스케줄은 클라이언트의 스케줄에 의해 결정되었다. 


그러다 때마침 진행하려던 행사가 취소되었다. 바야흐로 9월말-10월초 황금 연휴를 앞두고 있었다. 어디든 다녀와야겠다 싶었다. 그런 내 마음을 아는 지 당시 6살이던 아이가 “엄마 첨성대가 보고 싶어요”라고 한마디 했다. 아마도 당시 유치원에서 세계의 건축물에 대해 공부를 했는데 딸아이가 맡았던 과제가 첨성대였었나 보다. 


딸 아이의 한 마디에 주저 없이 바로 ‘경주’행을 결정했다. 경주는 고등학교 때 수학여행으로 방문한 이래 여행신문 기자를 하면서 출장으로 한 번, 임신을 했던 해 여름 휴가로 부산에서 서울로 올라오면서 경주를 경유한 적이 한번 있었다. 더웠던 7월 말이라 부른 배로 어디 다닐 수가 없어서 낮에는 숙소에 머물고 저녁에 나가서 식사하고 첨성대 주변을 산책했던 기억이 난다. 경주 출신 친한 후배에게 맛집 정보를 물어봤던 게 다였다.      

아이와 갑작스런 경주 여행이 결정되자 신이 났다. 당시 지방에서 직장을 다니며 연휴 기간 전부를 쉬기 어려웠던 남편은 중간에 합류하기로 했다. 연휴가 시작되기 2일전 아이와 둘이서 KTX를 타고 경주로 떠났다. 기차를 타는 것만으로도 우리는 너무 신이 났다. 신경주역에 내려 택시를 타고 경주 구시가지 작은 한옥 민박집으로 갔다. 소박한 민박집에 머물며 아이와 천천히 경주 시내를 돌아다녔다. 첨성대 앞에 돗자리를 펴고 앉아 그림도 그렸고 대릉원을 느긋하게 산책했다. 당시 머물렀던 민박집이 구시가지 시장 부근이었는데 오가며 시장 음식 사먹는 것도 재미있었다. 프랜차이즈가 없는 소도시 시장의 분식 골목이 그렇게 정겨울 수가 없었다. 


이후 남편이 합류하면서 불국사도 가고 첨성대가 보이는 유적지 잔디밭에서 연을 띄우며 아이는 뛰어다니고 나는 멍 때리는 시간을 가졌다. 경주와의 만남은 그렇게 시작되었다. 물론 그때 나는 경주가 내 다음 인생에 어떤 영향을 미칠지 몰랐다. 그때는 그저 그저 아이랑 4박5일 잘 놀고 오고 싶은 마음 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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