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 셋째 날이 밝았다. 오늘은 아주 특별한 날이다. 희원이네 가족과 하루 종일 함께 여행하는 날! 원래는 지베르니 모네의 정원에 가려 했지만, 이상기후로 날이 추워 꽃이 별로 피지 않았다는 안타까운 소식에 희원이네 가족이 추천하는 새로운 여행지에 함께 다녀오기로 했다. 바로 물결 모양 계단으로 유명하다는 퐁텐블로 성이다. 처음 들어보는 곳이었지만 희원이가 추천하는 곳이면 어디든 좋아.
우선 오전에 희원이와 함께 마을 장을 다녀왔다. 동네 주차장 부지에 넓게 마을 장이 열렸는데, TV에서 종종 봤던 모습 그대로였다. 프랑스의 전통시장이라니 너무 재밌었다. 야채, 과일, 해산물, 빵, 꽃 등등이 매대에 한가득 차려졌다. 노상인데도 깨끗하게 잘 정리된 모습이 좋았다.
채소는 세척되어서 온 듯 흙 묻은 데가 거의 없이 깨끗하고 매끈했다. 특히 대파가 뽀얗고 예뻤다. 아는 야채인데 좀 더 짧거나 통통한 식의 색다른 모습을 하고 있었다. 토마토 종류가 다양한 것도 신기했다. 꽃을 사는 사람이 많은지 넓은 공간에 꽃판이 벌여졌고, 장터 한가운데엔 파이와 빵을 파는 노점이 널찍하게 자리를 차지하고 있었다. 명실상부 빵의 나라구나.
장을 보고 돌아오는 길에 희원이의 아이들이 다니는 학교를 구경했다. 커다란 나무가 무성해서 온통 초록빛인 공원 안에 학교가 있었다. 깊은 녹음이 드리운 이곳에서 자라나는 아이들이 새삼 또 부러워졌다. 희원이 이야기를 들으니, 프랑스에는 한국처럼 학원 문화는 거의 없지만 그렇다고 교육열이 낮은 건 절대 아니라고 한다. 학원 대신 개인과외를 통해 사교육이 이뤄지고 있다고 했다. 여기서도 똑같이 엄마들 모임에서 갖은 갈등이 벌어지기도 한단다. 친구의 생일 파티에 초대받는 것이 인기의 지표여서 누구누구에게 초대장을 돌릴지 어떤 선물을 들고 갈지도 세심하게 고민해야 하는 고충이 있다고 했다. 그래, 사람 사는 것 다 똑같다.
퐁텐블로 Fontainebleau
희원이네 다섯 가족과 함께 차를 타고 퐁텐블로로 향했다. 이동하는 내내 아이들은 최신 K-POP을 틀어놓고 목청 높여 따라 불렀다. 걸 그룹 ‘아이들’의 노래인 <난 아픈 건 딱 질색이니까> 첫 소절을 세 아이가 큰 소리로 쨍쨍하게 따라 부르던 장면은 여전히 생생하다. 아이들은 저녁마다 한국 드라마도 챙겨보고 있었다. 머나먼 프랑스에서도 이렇게 한국 문화를 가감 없이 실시간으로 접하며 즐기는 아이들의 모습에 흐뭇하고 기뻤다. 외국에서 아이들을 키우면서 한국 문화를 어떻게 알려줘야 할지 고민이 많았을 텐데, 이렇게 자연스럽게 아이들의 생활에 스며들 수 있는 환경이라 다행스럽고 감사한 일이다.
실제로 지금 프랑스에 한국 노래와 드라마가 꽤 널리 퍼져있다고 한다. 다른 학부모가 먼저 한국 드라마를 보고서 말을 걸어오기도 한다나. 아이 친구들이나 엄마들 선물로 한국 과자, 화장품을 챙겨주면 그렇게 좋아한다고 한다. 신기하고 뿌듯한 것.
퐁텐블로성은 차로 1시간 거리에 있는 파리 근교에 있다. 나폴레옹이 사랑한 궁전으로 유명한데 베르사유 궁전 다음으로 프랑스에서 2번째로 큰 성이며 무려 12세기에 지어졌다고 한다.
퐁텐블로가 있는 곳은 2, 3층짜리 나지막한 주택이 아기자기하게 늘어선 조용한 동네였다. 거리엔 동글동글한 돌바닥이 깔렸고, 파리에 비하면 오가는 사람도 적은 편인, 어딘가 소박하고 귀여운 느낌의 동네다. 파리의 화려한 건물에 눈이 너무 절어서 더욱 그렇게 느껴진 것인지도 모르겠다.
퐁텐블로성의 첫인상도 아늑함과 귀여움이었다. 세월이 느껴지는 2, 3층의 낮은 건물이 양팔을 길게 뻗은 모습으로 서 있었다.
성에 들어가니 우연히도 마당에서 두 남녀가 말을 타고 퍼포먼스 중이어서 색다른 광경을 구경할 수 있었다. 말도 연기자들도 머리부터 발끝까지 온통 검은색이었다. 웃음기 없는 얼굴로 서로에게 닿을 듯 말 듯 팔을 뻗었다가 스치며 천천히 돌고 돌았다. 이게 프랑스인가. 독특한 예술적 분위기에 푹 빠져서 구경했다.
퍼포먼스 현장 너머로 물결 모양 또는 말발굽 모양이라고도 하는 계단이 건물에서 흘러내리는 듯 놓인 것이 보였다. 디즈니 애니메이션 ‘미녀와 야수’에 나오는 계단이 이걸 본떴다고 한다.
안으로 들어오니 전반적으로 묵직하고 위엄있는 분위기가 느껴졌다. 장식들도 베르사유나 루브르 박물관에 비해 좀 더 구시대의 양식 같았다. 갈색 나무로 짠 벽 장식과 몰딩, 붉은색의 벽, 역시나 빠지지 않는 천장화와 황금 몰딩 장식. 많은 방이 나무를 엮고 짜고 조각하여 꾸며진 모습이어서 현란하게 장식된 대리석 건물과 달리 아늑하고 고즈넉했다.
당시에는 분명 화려했을 태피스트리와 고풍스러운 양탄자였을 텐데, 뿌옇게 빛이 바랜 것을 보니 세월의 흔적이 느껴졌다. 동네의 인상과 더불어 상대적으로 퐁텐블로가 살짝 소박하게 느껴지기도 했다.
하지만 그래도 역시 프랑스는 프랑스다. 이곳이 역대 모든 프랑스 왕이 머물렀던 궁이라 했다. 허투루 놀고 있는 공간이 없다. 아늑한 방들 사이사이 왕족의 화려함이 비어져 나왔다. 치렁치렁 거대한 샹들리에와 황금 장식으로 화려함을 꽉꽉 채운 침실과 응접실들이 곳곳에 있었다.
가장 인상 깊었던 곳은 눈이 닿는 모든 곳을 나무로 조각하고 짜 넣은 홀이었는데, 처음엔 그냥 ‘나무집인가봉가.’ 하며 들어갔다가 깜짝 놀랐다. 투박함을 도구 삼아 차고 넘치는 화려함을 구현해 낸 곳이었다. 나무가 가진 따뜻하고 아늑한 느낌에 고풍스러움과 고급스러움을 더하고 하얀 석고 장식으로 섬세한 아름다움을 가미했다. 굉장히 인상 깊었다.
성을 다니다 보면 곳곳에 나폴레옹과 부인 조세핀의 커다란 초상이 걸려 있었다. 나폴레옹이 퐁텐블로를 특별히 사랑했다고 한다. 중세에 지어져 연식이 오래된 데다 베르사유만큼 화려하지도 않고 파리에서도 멀리 떨어져 있는 곳이라서 의외였다. 퐁텐블로의 800년 역사에 끌렸던 걸까.
이곳을 황제의 권위를 상징하는 공간으로 활용했던 나폴레옹이었지만, 그가 퇴위하고 유배되는 내용의 조약을 맺게 된 곳도 바로 이곳 퐁텐블로였다. 조약 이름 자체가 퐁텐블로 조약이다. 이곳에 담긴 맥락이 너무 많아 중간중간 창문 밖으로 눈을 돌려 복잡해진 머리를 잠시 비우곤 했다.
퐁텐블로의 도서실도 보았다. 긴 복도를 따라 창문과 책장이 진열되어 있었다. 복도가 시작되는 지점에는 두세 사람이 안아야 할 만큼 커다란 지구본이 있었다. 안을 둘러보는 사람들이 있길래 너무나 들어가 보고 싶었는데 입구에 줄이 쳐져 있었다. 먼발치에서나마 도서실을 열심히 눈에 담으며, 학자들이 오랜 세월에 걸쳐 이곳을 누비며 귀한 책들을 펼치고 연구에 열중했을 모습을 상상했다.
곳곳을 둘러보며 방마다 다른 콘셉트로 꾸며진 천장을 꼭 한 번씩 올려다보았다. 손바닥만 한 부분까지 꽉꽉 채워 화려하게 장식한 방, 천장 전체를 한 폭의 그림으로 채운 방, 깔끔한 천장에 화려한 샹들리에로 포인트를 준 방 등등.
끝도 없이 화려한 양식들을 보다 보니 자연스레 우리나라 전통 건축양식과 비교가 됐다. 상대적으로 우리나라는 심플하다고 해야 할까, 자연주의라고 해야 할까. 궁궐의 단청을 생각하면 우리 역시 화려하지 않은가 싶다가도, 황금을 두른 프랑스 성을 보면, 어우, 따라갈 수가 없는 저세상의 현란함이다.
이런저런 생각을 하며 관람하다 보니 자연스럽게 고풍스럽고 우아한 갈색의 홀에 다다랐다. 퐁텐블로에 처음 도착했을 때 우연히 퍼포먼스를 보았듯이 관람의 막바지에 우연히 오케스트라 연주가 한창인 홀에 도착했다. 우리 참 운이 좋다고 이야기하며 희원이네 가족들과 밝고 경쾌한 오케스트라 연주를 감상했다.
홀 안에 가득 울려 퍼지는 음악과 진동을 느끼며 이 공간이 살아나는 것을 느꼈다. 그저 역사 속의 장소가 아닌, 여전히 살아 숨 쉬고 있는 퐁텐블로. 우리는 홀린 듯 연주를 감상하고, 깊은 감명을 품은 채 관람을 마무리했다.
우리 일행은 퐁텐블로를 나와 인근의 전형적인 프랑스 식당으로 향했다. 제대로 된 프랑스 음식을 한 번도 맛보지 못한 나를 위한 배려였다. 생선 또는 고기에 소스와 구운 야채를 곁들인 메뉴에다 콜라를 마셨다. 아이들은 고기, 나는 생선을 골랐다. 담백하게 구운 생선에 소스를 더한 것만으로 이렇게 맛이 풍부해지다니. 너무 맛있고 흡족한 식사였다.
나들이를 마치고 돌아오는 길에 엔티크한 회전목마도 아이 키만 한 체스 말이 놓인 체스판도 구경했다. 집에 돌아와서는 파리 시내에서 지낼 짐을 챙겼다. 내일부터 2박3일 동안 오페라 가르니에와 박물관 사이, 재팬타운에 있는 호텔에 묵을 예정이다. 아이들은 고새 정이 잔뜩 들어서 짧은 헤어짐마저 아쉬워했다.
저녁에는 이쯤이면 한식이 생각날 거라며 희원이가 김치찌개를 한 상 차려주었다. 오늘도 또 감사히 맛나게 먹으며 이야기꽃을 피웠다. 매일 밤 이야기를 나누는데도 그렇게 할 얘기가 넘친다. 고등학생 시절 매일같이 하루 종일 함께 지내는데도 그렇게 할 얘기가 많았던 것처럼. 우리는 지난 추억과 각자의 자리에서 살아온 이야기와 현재의 삶과 앞으로의 고민에 대해 끝없이 이야기를 이어 나갔다.
학교 끝나면 같은 교복에 같은 가방을 메고 떡볶이집에 가서 다소 불친절한 아저씨가 마법의 가루를 팍팍 쳐주는 떡볶이를 먹던 그때처럼. 싸구려 노래방에서 목이 터져라 체리필터 노래를 함께 부르고 희원이네 옥탑방에서 해 질 때까지 놀다가 할머니께서 차려주신 맛난 밥을 배불리 얻어먹던 그때처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