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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을 기다리다(2)

by sseozi

책, 책갈피, 에코백


여행의 재미에는 쇼핑도 한몫한다. 명품 가방이나 고급 화장품 쇼핑에는 관심이 없고, 대신 소소하고 쓸모없는 것들에 많이 설레는 편이다. 미술관에서 파는 엽서, 책갈피, 문구류 같은 굿즈라면 더욱 혹한다.


이번 여행에서는 가는 곳마다 얼마나 멋진 굿즈들이 날 기다리고 있을까. 미술관마다 적당한 도록이 있으면 꼭 챙겨야지. 헤밍웨이가 단골이던 셰익스피어 앤 컴퍼니 서점에서는 책방이 그려진 에코백도 사야지. 넉넉하게 7, 8개 정도 사서 오래오래 쓸 테다. 소장할 만한 책을 발견하면 한두 권 사 오는 것도 좋겠다.

기대가 커질수록 내 안의 비상벨도 띠링띠링 울린다. 한번 마음에 들면 우리가 이렇게 만난 것 자체가 운명이라며 참지 못하고 사버리는 소비 요정이기 때문이다. 거기에다 일생일대의 여행에서 마주친 물건이고, 고상한 예술 작품까지 그려져 있다? 우리가 함께해야 할 의미가 완벽히 부여된 거다.


일말의 양심이라면 아무거나 다 데려오는 게 아니라 정말 마음에 쏙 드는 것으로, 두고두고 간직하고 싶은 것을 고른다는 점. 고삐가 풀리지 않도록 딱 캐리어 크기랑 지갑 사정만큼만 행복하기로 하자.

모든 건 가봐야 안다. 어떤 아이들을 만나게 될까. 너무 설렌다. 고르고 골라 데려와야지. 볼 때마다 언제든 그곳을 떠올릴 수 있게.



L‘amour, les baguettes, Paris


여행의 주제곡을 정했다. 바로 스텔라장의 L’amour, les baguettes, Paris. 유튜브에 ‘프랑스 플레이 리스트’를 검색하면 빠지지 않고 나오는 노래다. 이 노래를 들으면 봄보다는 가을이 떠오르고, 오후보다는 해질녘이 떠오른다. 스텔라장의 분위기 있는 음색에 품위가 느껴지는 프랑스어 가사가 더해져, 듣다 보면 절로 파리 감성에 젖어 들게 된다.


여행을 마음먹은 순간부터 이후에 펼쳐지는 모든 시간에 배경음악처럼 이 노래가 흘렀다. ‘프랑스어는 전혀 모르지만, 7개월 동안 듣다 보면 귀띔으로라도 외워지겠지.’하는 마음이었는데, 여행을 한 달 앞뒀을 즈음이 되자 정말로 반주 없이 노래를 흥얼거릴 수 있을 만큼 귀에 익었다.


일상의 틈을 채우던 노래는, 혼자서 거니는 파리의 거리에서도 배경음악이 되어 흘렀다. 듣기만 해도 설렘과 벅참이었던 이 노래는 이 글을 쓰고 있는 지금, 반가운 그리움이 되어 흐르고 있다.


숙소


여행 기간 대체로 파리에서 전철로 20분 거리에 있는 친구네 집에서 묵을 예정이었다. 하지만 3일 이상 집을 떠나게 되면 가족이라 할지라도 혼자 있는 시간을 갈구하게 되는 성정을 타고났다. 이번 프랑스 여행에서도 분명 나는 온전히 혼자 지내는 시간이 필요할 게 뻔했다.


7박의 일정 중 허리를 잘라내어 2박 3일은 외박하기로 결정했다. 친구 희원이는 나의 결정을 이해해 주며, 큰 짐과 귀중품은 집에 두고 필요한 짐만 챙겨서 다녀오라고 했다. 아무리 호텔이라도 도둑맞을 수 있으니 조심하라는 조언도 잊지 않았다. 고마운 녀석.

그렇다면 2박 3일의 일탈 동안은 어디에서 묵어야 좋을까. 당연히 루브르 박물관 근처다. 혹시라도 기회가 된다면 루브르 박물관을 한 번이라도 더 다녀오게 될지도 모르니 말이다.


계획을 꼼꼼하게 짜는 사람들은 이런 상황이라면 애초에 루브르 박물관을 한 번 더 가는 일정을 넣었을 거다. 하지만 전형적인 대문자 P인 나는 어떻게 될지 모른다는 그 조그마한 가능성이 자꾸 밟혀서 변화의 여지를 남겨두고 싶단 말이지, 허허.


이렇게 언제든 갈 수 있는 거리에 숙소를 잡아두면 상황 봐서 좋은 쪽으로 흘러가게 되겠지. 어떻게든 될 거다. 이러나 저러나 파리의 지연은 분명 행복할 테니 말이다.


새로 장만한 것들


소매치기할 욕심 방지용 후줄근 + 지퍼 달린 + 어깨 줄이 있는 에코백, 핸드폰 목걸이, 용량 빵빵한 보조배터리, 발이 편안한 운동화, 여행 중에 일기도 쓰고 넷플릭스도 볼 수 있게 당근으로 마련한 태블릿과 블루투스 키보드, 노트북도 넉넉히 들어갈 크기의 빳빳한 배낭 + 취향 가득 담긴 동물 인형 키링, 염색이 빠져서 지저분한 머리는 프랑스 여행에 어울리게 깊이 있게 톤 다운된 브라운으로 깔끔하게 전체 염색까지 완료

파리에서 보낼 시간은 7일, 파리를 기다리는 시간은 7개월. 기다림이 시작되었다. 여행을 준비할 설렘의 시간이 낭낭하게 펼쳐졌다. 실컷 꿈꾸며 기다림을 즐기기로 했다. 여행 자체보다 기다리며 꿈꾸는 시간에 더욱 열을 낸 것 같다. 한 차례 열병에 들뜬 마음으로 행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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