존과 이니고 아저씨와 함께 걷는다. 두 아저씨는 걸음이 굉장히 빠른 편이라 내가 아저씨들을 따라가기에는 숨이 차오르고 가랑이가 찢어질것 같았다. 아저씨들은 'You are strong' 할 수 있다며 용기를 불어넣어 주셨지만 알베르게에서 보자며 '아스따 루에고' 로 서로의 하루를 응원해주었다. 다시 혼자가 된 나는 처음 카미노를 시작할 때처럼 누구의 속도도 아닌 나만의 속도로 걷기 시작한다.
걷다가 새로운 스페인 중년 커플을 만났다. 부르고스에서 시작한 중년커플은 스페인 발렌시아 근처 알리깐떼 출신이었다. 아저씨는 밀짚모자에 카고 반바지를 입고 한 손에는 나무 지팡이를 들고 있었고 아주머니는 곱게 빗은 단발머리에 체크 남방을 입고 계셨다. 아주머니의 엉거주춤한 걸음걸이로 볼 때 카미노 순례자가 갖고 있는 고질병 중 하나를 갖고 있음을 알아차렸다.
"올라! 부에노스 띠아스(안녕하세요. 좋은 아침이에요.) 피에 OK?(발 괜찮아요?)" 아주머니는 손바닥을 양쪽으로 흔들었고 입꼬리를 가까스로 올리며 말했다.
"아시 아시.(그럭저럭).
"암포야?(물집인가요?)"
나는 가방 앞주머니에서 '콤피드(물집방지밴드)'를 꺼내어 아주머니께 건넸다.
두 분은 검은 머리 동양여자의 입에서 나온 '암포야'라는 단어에 흠칫 놀랐고 못하는 스페인어로 도움을 주고 싶어 하는 내 모습에 꽤 감동하며 말했다.
"무차스 그라시아스.(정말 고마워.)"
"데 나다. 카미노데산티아고 에스 우나 그란 파밀리아.(별말씀을요. 길 위에서 우리는 모두 가족이잖아요.)"
가족..이라는 말을 하는 순간, 큰 돌덩이가 듯 가슴에 걸리는 것 같았다. 며칠 전 인사도 없이 그들을 떠난 것에 대한 미안함과 내 입에서 말과 행동이 모순덩어리였다. 잠시 얼이 빠져있는 나에게 아저씨는 물어보셨다.
"데 돈데 에레스?(어느 나라 출신이니?)"
"소이 꼬레아나. 메 야모 아란(한국에서 온 아란이에요.) 미 에스파뇰 뽀끼또.(스페인어 아주 조금 할 줄 알아요.)"
스페인에 온 지 며칠 되지 않았지만 들리는 대로 말하고, 자주 들리는 단어는 무슨 뜻이냐고 물어보며 스페인어를 하나씩 습득할 수 있었다. 간단한 인사를 제외하고는 카미노 생존에 필요한 피에(발), 꼬체(차), 카페콘레체(카페라테), 포터블레아구아(마실 수 있는 물), 말(나빠요), 깔로르(덥다)를 돌려 막기 하듯이 순례자들과 대화를 했다. 중년부부와도 스페인어 단어 돌려 막기로 대화를 하였는데 두 분은 나의 스페인어 실력을 향상을 위한 자신들만의 싸움을 시작했다.
"아란, 스페인어로 숫자 셀 수 있어?"
"씨, 우노, 도스, 뜨레스, 꽈뜨로.. (네, 1,2,3,4..)"
온따나스 할아버지가 알려주셨만 기억을 하고 있는 건 고작 숫자 '4'까지였다. 아저씨는 본인이 나설 때가 되었다는 듯 흐뭇한 미소를 짓고 손에 잡고 있던 지팡이 끝으로 모래바람을 일으키며 바닥에 숫자 '5'를 쓰시고는 '씬코'라고 말씀하셨다.
"cinco(씬코)" 그다음엔 6을.. 7, 8, 9, 10... 함께 걸어가는 1시간 내내 30까지 셀 수 있게 되었다.
두 분은 나의 스페인어를 업그레이드시켜주기 위해 하늘에서 성야고보가 내려준 것이라는 생각이 들 정도로 열정적으로 스페인어를 알려주셨다.
스페인어로 숫자 공부를 하다 보니 어느새 스페인 작은 마을 '엘 부르고 라네로'에 도착했다. 인구가 천 명도 되지 않는 스페인의 작은 마을이지만 산티아고 순례자들이라면 반드시 지나가야 하는 마을이다. 알베르게 안으로 들어가니 드넓은 잔디가 펼쳐져있었고, 순례자들이 편히 쉴 수 있도록 파라솔과 선베드가 놓여있었다.
알베르게에 들어섰을 때 몇몇 순례자는 빨래를 하고, 몇몇은 삼삼오오 맥주를 마시며 이른 하루를 마무리하고 있었다. 한동안 보지 못했던 오비에도 출신 아나와 마리아도 만날 수 있었다.
"Hola~~~~~~아란! " 아나와 마리아와 반가운 인사를 하며 안부를 물었다. 그런 후 크레덴시알에 도장을 쾅! 받고 침대를 배정받았다. 침낭을 꺼내 배정받은 침대 위에 올려두었다.
샤워를 하고 침낭 속에서 굼벵이처럼 몸을 말고 시에스타를 즐기려고 눈을 감았지만 눈만 끔뻑 끔뻑.. 잠이 오지 않았다. 말없이 혼자만의 이별을 한 미안함과 죄책감이 들었다.
자아를 찾겠다고 스페인에 와서 많은 사람들을 만났고 함께 걸었다. 처음에는 모든 것이 좋았지만 시간이 지나 한걸음 떨어져 나를 바라보니 '나'는 없고 '우리'만 남았다. 계획했던 자유여행이 패키지여행으로 바뀌어 맨 앞에 노란 우산을 위로 들고 걸어가는 가이드만 따라가기만 하면 되는 여행을 하는 기분이었다. 길을 잃을 염려는 없지만 원하는 곳에 갈 수 없을지도 모르는 여행. 그래서 다시 혼자가 되는 것을 선택했지만 나와 다른 사람을 속이는 이기적인 거짓말을 한 것이 후회스러웠다. 스스로에게도 설명할 수 없는 여러 가지 복잡한 감정들이 머릿속에서 소용돌이치며 눈물이 났다.
같이 걸었던 순례자들을 만나 사과를 하고 싶었다. 진짜 까르보나라 파스타가 무엇인지 알려준 로쵸와, 하나 남은 소염제를 쿨하게 건네준 이탈리아 캡틴 장까를로가 보고 싶었다. 만날 수 없을지도 모르지만, 내가 조금만 더 속도를 내어 걸으면 만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희망을 갖고 가방을 챙겨 알베르게를 나왔다.
마당에서 빨래를 하고 있던 아나와 마리아가 내 배낭을 보고 눈이 휘둥그레지며 어디 가냐고 물었다. 나는 침묵 그리고 배낭으로 대답했다.
미안함에 동공이 흔들렸고, 용기 내어 말했다.
"나는 '그냥' 더 걷고 싶어."
미안함과 그리움이라는 단어만으로는 미묘하고 복잡한 감정을 설명하기는 어려웠다. 친구들에 대한 그리움과 미안함. 여러 감정들이 교차되면서 눈물이 왈칵 쏟아질 것 같아 '그냥'이라고 말했다. 정말 납득이 되지 않지만, 모든 이유가 되는 단어. 그냥. 마리아는 내 부은 발등만 바라보았고 아나는 방으로 들어가 구급약과 붕대를 갖고 나와 나에게 내밀었다.
"혹시 발에 물집이 잡히면 터트리고 이걸 발라. 콤피드를 붙이고 있는 것보다 나을 거야. 그리고 우리가 다시 만날 수 있도록 조금만 천천히 걸어줄래? "
우리는 아쉬움의 이별의 포옹을 했고, 그녀들은 고집불통인 나를 격려해주며 내가 사라질 때까지 멀리서 손을 흔들어주었다.
공항 활주로 같은 그늘 한 점 없는 길을 4시간을 걷고 또 걸어 오후 7시가 되어 알베르게에 도착했다. 알베르게 문을 열고 들어가니 로쵸, 장까를로, 마리, 기가 늘 그랬던 것처럼 집 나간 똥강아지가 들어온 듯 웃으며 맞이해 주었다.
"아란, 걱정했어. 발은 괜찮아?"
"네. 오늘 좀 많이 걸어서 그런지 조금 아픈데 괜찮아요."
"꼴이 말이 아니네... 얼마나 걸은 거야?"
"45km요."
그 말에 알베르게에 있던 사람들은 놀라며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고 로쵸와 장까를로는 그냥 나를 쳐다보며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