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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북극곰 Sep 08. 2024

실바와 사리야끄

오지랖

 숙소에서 나와 소박함 속 평온함이 깃들어있는 마을을 둘러보는데는 30분이 채 걸리지 않았다. 마을 입구에 있는 작은 성당에 들어가 더위도 식힐겸 구경하기로 했다. 소담한 성당을 한바퀴 휘휘 돌고 제단 앞에 있는 나무 의자에 앉았다. 세월의 흔적과 내 체중을 고스란히 받은 나무 의자가 삐그덕 소리를 낸다. 고개를 돌리니 검은색과 자주색 대리석 기둥에 비친 울퉁불퉁한 못난 내 얼굴이 보였다. 로쵸와 글로리아의 호의를 받으면서도 순례의 가치관과 맞지 않는다며 불만을 품고 있는 이중적이고 가식적인 내 마음과 많이 닮아있었다.


 다시 한번 삐그덕 소리를 내며 성모마리아 앞에 자세를 고쳐 무릎을 꿇고 눈을 감았다. 손을 모아 미움과 부정적인 생각을 없애고 산티아고 처음 시작할 때 초심을 잃지 않고 길을 잘 마칠 수 있도록 해달라고 기도 했다. 


 조금 가벼워진 마음으로 성당에서 나와 다시 알베르게로 향하는데 누군가 뒤에서 내 이름을 부른다.


"아란~~~"

"사리야끄!! 실바!! 이게 얼마만이야. "  


 고작 며칠 만나지 못했던 것뿐이었는데 몇 년 동안 만나지 못한 고등학교 때 단짝 친구를 다시 만난 것처럼 너무 반가웠다. 나는 두 사람의 손을 덥석 잡고 말했다.


"실바, 샤리아끄. 발은 괜찮아? 아픈 데는 없고?" 대답할 틈을 주지 않는 나의 질문 공세가 이어지기 전에 실바가 말했다.


"무릎이 살짝 안 좋기는 하지만 괜찮아. 너는 어때? 아픈 데는 없어?" 그의 물음에 선생님과 헤어진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만남과 이별을 반복하는 게 카미노인데 부끄럽게 눈시울이 또 붉어졌고 샤리아끄가 어깨를 토닥여주며 위로해 준다. 가까스로 눈물을 삼키고 민망함에 화제를 돌려 다른 순례자의 안부를 전해주었다.  


"나는 마리와 기아저씨, 로쵸, 장까를로, 글로리아와 같이 걷고 있어. 다들 알베르게에서 쉬고 계실 텐데 인사하러 갈래? 인사하고 여기에서 같이 저녁 먹자." 나는 바로 앞에 있는 식당을 가리켰다.


"... 좋아!"


 다른 사람들과도 엎치락뒤치락하며 같이 걸었고, 함께 저녁을 먹은 적도 있어 다시 만난다면 반갑게 맞이해 줄 것 같아 두 사람의 손을 잡고 성당에서 멀지 않은 알베르게로 안내했다. 커다란 나무로 된 대문을 열고 빼꼼 고개를 내밀자 마당에서 다들 휴식을 취하고 있었다. 로쵸는 돋보기안경을 쓰고 책을 읽고 있었고, 마리와 기는 빨래를 널고 있었다. 글로리아와 장까를로는 파라솔에 앉아 맥주를 마시며 더위를 식히고 있었다. 나는 들뜬 목소리로 말했다.


 "여러분~! 누가 왔는지 좀 보세요. 우연히 마을에 갔다가 실바와 샤리야끄를 만났어요. 오늘은 여기서 조금 떨어진 알베르게에 묵는데요."


"안녕하세요! 오랜만이에요. 잘 지내셨죠?" 내 말이 끝나자마자 실바가 다른 순례자들에게 인사를 했다.


 알베르게를 쩌렁쩌렁하게 울리는 내 목소리에 사람들은 잠시 멈추고 우리 셋을 쳐다보았다. 마리와 기는 빨래를 널다가 실바와 샤리야끄를 와락 안으며 프랑스어로 인사를 나누었다. 하지만 마리와 기를 제외한 다른 사람들은 그들을 처음 보는 순례자에게 인사하듯이 인사를 했다.


"안녕하세요. 부엔까미노."


  장까를로와 글로리아는 표정 없는 얼굴로 짧은 한마디를 한 뒤 시선을 거두었고 로쵸는 힐끔 쳐다만 볼 뿐 인사조차 건네지 않았다. 며칠 전 스페인어를 알려주신 할아버지는 '산티아고는 하나의 큰 가족'이라고 했는데 실바와 샤리야끄를 가족은 커녕 동료로도 대하지 않는 그들의 모습에 충격을 받았다. 사리야끄와 실바를 보니 눈에는 실망감이 가득 서려있었지만 웃음지으려 노력하고 있었다. 같이 걷던 순례자분들은 너무 똘똘 뭉쳐 다른 순례들이 비집고 들어올 일말의 틈조차 허락해주지 않는 것 같았다.  


'쓸데없는 오지랖으로 모두를 불편하게 만들었다.'


저녁 먹기에는 이른 시간이었지만 나의 잘못된 판단으로 벌어진 이 가시방석 같은 불편한 상황을 빨리 벗어나고 싶었다. 


"사리야끄, 나 배고파. 밥 먹으러 가자."

"Hasta Luego(아스따 루에고)"


 실바와 사리야 끄는 그들에게 인사를 하고 나와 함께 식당으로 향했다. 우리는 아까 본 식당에 들어가 순례자 메뉴를 주문했다. 아무렇지 않은 척했지만 실망한 표정까지는 숨길 수 없었다. 내가 그들의 하루를 망친건 아닐까?


"미안해..  내가 오버했나 봐. "

"무슨 말이야!! 나도 마리와 기를 만나고 싶었는 걸?" 사리야끄 위로 덕분에 마음의 짐이 살짝 가벼워진다. 미안함과 고마움에 그녀를 향해 애써 미소 짓고 그녀도 미소로 화답한다.


"그런데.. 아란..." 실바가 무거운 표정을 하고 말을 시작한다.


"마리와 기는 모르겠는데 로쵸나 장까를로는 우리를 별로 좋아하지 않아.. 우리도 그 이유를 모르겠고." 사리야끄도 그의 말에 공감하며 고개를 끄덕였다.


"에이~ 무슨 말이야.. " 놀란 눈을 하고 손사래를 치며 그의 말을 부정 했지만 머리를 망치로 한 대 맞은 듯 띵했다. 그리고 로쵸 패밀리와 실바와 함께 했던 온따나스에서의 저녁식사를 되짚어 보았다. 늘 환하게 웃어주던 로쵸는 그날따라 웃지 않았고, 함께 있으면 한시도 입을 쉬지 않는 수다쟁이 실바도 말없이 밥만 먹었던 기억이 난다. 눈치가 없었던 나는 다들 오랜 시간 걸어 컨디션이 좋지 않은 걸로 생각했었지만 실바의 말을 듣고보니 퍼즐의 조각이 맞춰지는 듯 하면서 마음이 또 불편해졌다.

  

  미움과 부정적인 마음을 없애달라는 나의 기도가 짧았던 것이었을까?



  

"부에나스 노체스(안녕히 주무세요.)"


 굿나잇 인사를 하고 아늑하고 폭신한 침대에 몸을 묻었다. 육중한 몸을 이끌고 침대로 올라가지 않아도 되고, 많은 사람들의 코골이 불협화음을 듣지 않아도 되는 조용하고 편안한 밤이다. 늘 침대에 머리만 닿으면 곯아떨어졌었는데 고요한 밤과는 달리 마음이 시끄럽고 뒤숭숭하여 어쩐지 잠이 오지 않는다.  


  '말똥말똥' 눈을 감고 잠을 청하려 노력하였지만 잠이 오지 않아 다시 눈을 뜬다. 땀냄새로 가득한 침낭 대신 잘 다려진 빳빳한 하얀색 이불을 머리끝까지 뒤집어쓰고 자꾸만 바스락거리며 뒤척인다.


 그동안 걸어왔던 길을 잠시나마 되짚어 보기로 했다. 파울로코엘료작가처럼 기적을 기대하며 산티아고 도보순례를 시작한 지 꼬박 열흘. '생각하고 행동하는' 나는 없고 목적지도 모르고 뒤꽁무니만 따라다니는 것은 아닐까? 피부색 다른 동생처럼 챙겨주고, 딸처럼 예뻐해 주시지만 실바와 사리야끄에게 하는 행동을 보며 굉장히 실망했다. 그룹으로 움직이며 다른 순례자를 배척하는 느낌이라 순례의 의미를 상실한 기분이다.  


다시 혼자가 되는 일, 내가 잘할 수 있겠지?

실바와 사리야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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