느리지만 짙은 기억을 남기는 여행의 방법
여행을 떠날 때면 늘 가방 가득 그림 도구를 채워간다. 작은 팔레트, 스케치북, 붓 몇 자루... 여행에서 만나는 잊지 못할 순간들을 그림 속으로 옮겨오기 위해서다. 남들보다 가방은 좀 더 무거워지지만 그만큼 더 묵직한 추억을 담아올 수 있다.
그림 그리는 이라면 누구나 욕심이 날 아름다운 풍경을 잔뜩 가지고 있는 제주는 그림여행자에게 최적의 여행지이다. 어떤 날은 바다 앞에 앉아 또 어떤 날은 마음에 드는 카페에 앉아 제주가 보여주는 그림보다 더 그림 같은 풍경들을 느릿느릿 담아낸다.
그림을 그리고부터는 최대한 많은 걸 보기 위해 빡빡하게 돌아다니는 여행과는 멀어졌고 천천히 내 속도대로 걷는 법을 배우게 되었다. 스치듯 많은 것들을 눈에 담는 것보다는 마음에 쏙 드는 풍경과 진득하게 마주하는 것이 좋고 여기저기 바삐 걷는 것보다는 찬찬히 제주가 가진 면면을 들여다보는 것이 더 좋다.
보통 사람들은 몇 군데를 둘러볼 시간에 나는 한 곳에 자리를 잡고 앉아 몇 시간이고 그림을 그리곤 한다.
때문에 남들만큼 많은 것을 보지는 못하지만 내가 머물렀던 순간과 장소를 더 촘촘하고 선명하게 기억한다.
내가 머물렀던 순간들을 종이 위로 옮겨 담고 나면 오래도록 마음속에 담아두고 싶은 제주에서의 기억이
더욱더 짙어지는 것 같아 기분이 좋다.
Book <열두 달 제주> 내가 사랑한 제주, 일러스트 다이어리북 글/그림 안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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