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모두 예뻐지고 싶지
올해 4학년이 된 우리 꼬물이는 요즘 부쩍 외모에 관심을 두기 시작했다.
"입을 옷이 없어!"
투덜대는 모습이 어쩜 그리 어른스러울까.
흔한 '여자사람'의 볼멘소리를 그대로 따라 하는 꼬물이를 보고 있노라면, 웃음이 나오면서도 묘한 감상에 빠진다. 결국 옷을 사러 가자며 신나게 노래를 부르는 그녀 앞에서, 하는 수 없이 함께 발걸음을 옮겼다.
지금은 계절의 경계선에 선 애매한 시기다. 겨울옷은 막바지 세일에 들어가고, 봄옷은 겨우 매장 한편에 모습을 드러내기 시작했을 뿐.
출발 전 미리 "마음에 드는 게 없으면 그냥 돌아오자"라고 약속하며 나섰다.
사실 해마다 쑥쑥 자라나는 아이에게는 같은 옷을 두 해 연속 입는 일이 드물다. 키가 잘 크니 감사할 일이지만, 그와 함께 취향도 성장해 이제는 알록달록하고 반짝이는 옷을 보며 고개를 절레절레 흔든다.
"네가 작년에 엄청 좋아했었잖아?"라고 하면 단호하게 "아니야, 그건 너무 어린애 옷이잖아"라고 답한다. 꾸미고 싶고, 조금 더 어른스러운 옷을 입고 싶은 마음이 커지는 시기인가 보다.
외출하기 전, 꼬물이는 화장대 앞에서 머리를 묶었다가 땋았다가 풀었다가 하며 시간 가는 줄 모른다. 거울 앞에서 진지하게 고민하는 모습이 어찌나 절실한지, 나도 문득 그런 때가 있었을까 싶어 아득한 기억 속을 더듬어본다. 티 안 나게 한다고 살짝 바른 화장이 어른들 눈에는 다 보였을 텐데, 어린 나에게는 그게 멋지고 자연스럽게 보였던 순간들.
한껏 꾸몄지만 아무렇지 않은 척, 요즘 말로 '꾸안꾸'라도 되는 듯 능청스럽게 행동했던 그 시절. 모르는 사이 꼬물이를 빤히 바라보며 그런 생각에 빠져 있자니,
"아! 왜에에에!!!" 하며 민망해하며 소리친다.
어릴 적 내 모습도 어른들 눈에는 다 보였겠지, 생각하니 웃음이 절로 나온다.
"너 옷 사주느라 엄마 허리 휜다~"며 농담 섞인 한탄을 했더니, 정작 중요한 메시지는 놓친 채 다음번엔 자기가 엄마 옷을 골라주겠다고 당차게 호언장담한다. 그러고는 갑자기 내가 입을 외출복까지 골라주겠다며 드레스룸으로 뛰어들어갔다.
"그냥 나와. 엄마는 어제 입었던 거 또 입을 거야." 한참을 뒤적이던 꼬물이는 "왜에, 예쁘게 입고 나가자!" 라며 버티지만, 이미 내 옷장이 그리 풍요롭지 않다는 사실을 깨달았을 것이다.
나는 언제부터였을까. 마지막으로 설레는 마음으로 옷을 고르던 날이 언제였는지 기억도 나지 않는다. 꾸미고 가꾸고 싶은 그 욕망이 사라진 게 도대체 언제부터였을까. 나도 이제 점점 늙어가는 걸까.
꼬물이를 보며 '나도 저런 때가 있었는데'라고 회상하는 나 자신이 문득 서글퍼졌다. 세월이 흐르면서 나는 서서히 굳어지고 있었다. 아름다움을 향한 열망에 소홀했던 게 언제부터였을까.
꼬물이에게는 "엄마는 옷을 고르는 시간과 에너지를 아껴서 정말 중요한 데 쓰려고 하는 거야"라고 개똥철학을 늘어놓았지만, 지금 생각해 보면 그 말이 조금은 웃프게 느껴진다. 꾸미고 예뻐지고 싶은 건 결국 여자의 영원한 숙원이 아니던가.
가끔은 단꿈을 꾸듯, 예쁜 옷을 입고 거울 앞에서 설레던 그때를 떠올리며, 나도 다시 한번 나를 가꿀 여유를 가져볼까 생각한다. 아주 조금이라도.
딸의 성장을 지켜보는 동안, 잊고 있던, 아니 일부러 모른 척했던 나의 욕망도 다시 꿈틀거리기 시작한다.
매일의 일상 속에서 가려진 나의 여자로서의 모습을, 어쩌면 꼬물이가 다시 일깨워주고 있는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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