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런치북 텃밭일기 12화

텃밭일기 #12. 20190807

by 전영웅

심어놓고 가만 두어도 잘 자라는 텃밭 작물 중 하나가 가지이다. 음력 3월이 시작된 이후, 진자줏빛 줄기에 솜털이 부숭한 푸른 이파리 몇 달린 모종을 이랑에 심고 지주대를 옆에 꽂아 매어 주었다. 땅만 너무 메마르지 않는다면 알아서 뿌리내리고 알아서 쑥쑥 자란다. 사실, 모종 줄기가 굵어서 바람 많은 제주에서도 처음부터 지주대에 묶어주지 않아도 된다. 오히려 나중에 더 유용해진다. 매달린 가지가 너무 무거우니 줄기들이 땅으로 축축 늘어진다. 지주대는 그럴 때 더 필요하다. 어떤 때엔 매달린 가지가 너무 무거워 지주대마저 기울게 한다. 손을 많이 필요로 하지 않으면서 소득은 쏠쏠한 것이 가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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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도 곁순은 잘라주어야 한다. 모종을 심은 초반에 뿌리를 내린 가지는 줄기 곳곳에서 곁순을 낸다. 굵은 줄기만큼 곁순도 굵고 질겨서 손으로 힘들면 가위로 잘라주기도 한다. 그러다 연보라 꽃이 하나 둘 피기 시작하면 알아서 자라겠거니 하며 관심에서 멀어진다. 비가 많이 내리고 잡초가 텃밭을 뒤덮은 어느 날, 호미를 들고 텃밭에 들어가 쪼그리고 앉으면 그때서야 가지가 관심 안으로 들어온다. 어느새 훌쩍 자라 곁줄기들을 내고 반주먹만 한 가지들이 주렁주렁 매달려 있기 때문이다. 고추가 먹기 좋을 만큼 커지고 하나 둘 거두기 시작할 때면, 가지는 좀 더 기다려야 할 것 같은 크기가 되어 있다. 가지가 매달린 옆줄기가 휘청이고 늘어져 가지 끝이 땅에 닿을 즈음이면 가위를 가져다가 가지 꼭지를 잘라 수확한다. 길고 매끈하며 진자줏빛 윤기가 찬란하다. 가지를 거두기 시작하면, 여름은 본격적으로 더워진다.


가지를 거두기 시작하면 토마토도 왕성하게 열리고 익어간다. 그렇지만 토마토만큼 실망스러운 텃밭작물도 없다. 손은 정말 많이 가면서, 거두는 양은 정말 작다. 녀석들은 지주대부터 달라야 한다. 다른 모종들은 가느다란 철심 하나 땅에 박고 묶어주면 그만이지만, 토마토는 지주대 높이가 다른 것들보다 3배는 높아야 한다. 애써 박은 지주대를 마주 보게 하고 끈으로 묶어 서로 지지하도록 고정한다. 살짝 엇갈리게 마주한 지주대를 다시 가운데에 막대를 걸터놓아 일일이 묶어서 제각각 쓰러지지 않게 고정한다. 그러면 이제 막 심은 토마토 모종은 마치 제 세상인 양 줄기를 뻗어나간다. 물론, 지주대에 묶어 고정하는 일은 사람의 몫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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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제를 잘해주면 토마토도 텃밭에서 좋은 수확을 얻을 수 있을 것이다. 그렇지만, 방제를 거의 하지 않는 내 텃밭에서 토마토는 언제나 벌레들이 먼저 먹는다. 그러기에 모종 선택부터 잘해야 그나마 토마토 맛을 경험할 수 있다. 방제를 하지 않는 텃밭이라면, 우리가 생각하는 보통의 토마토는 절대 금기나 다름없다. 열리는 양도 많지 않거니와, 익기 시작하면 어디선가 벌레들이 달려와 먼저 주둥이를 대기 시작한다. 따라서 양으로 승부해서 사람의 입에도 닿을 수 있게 해야 하는데, 이럴 땐 방울토마토가 제격이다. 작지만 열리는 양도 많고, 익기 시작할 즈음 벌레들이 몰려든 사이로 멀쩡한 토마토를 만날 수 있기 때문이다. 첫 몇 해엔 알이 굵은 토마토 좀 맛보겠다고 시도했다가, 몇 년간 제대로 먹은 토마토는 단 하나였다. 이후로 방울토마토, 체리토마토를 심어보았고, 나름 재미가 쏠쏠했다. 올해는 좀 더 변화를 주어보자 싶어 흑방울토마토를 심었다.


토마토 모종은 무섭게 자란다. 덩굴도 아니면서 덩굴처럼 자라 오르는데, 곁순은 수시로 따 주어야 했고, 줄기는 수시로 묶어 고정해 주어야 했다. 조금만 한 눈을 팔면 곁순이 자라 굵직한 줄기가 되어서 옆으로 늘어지곤 했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올해 흑방울토마토는 실패했다. 방울토마토같이 많이 열리기는 했지만, 생각보다 많지는 않았고, 익기가 무섭게 껍질이 갈라져 터져 나갔다. 그 틈을 벌레들이 놓칠 리가 없었다. 색이 변할라치면 득달같이 달려들어 구멍을 냈고, 멀쩡한 것들도 수확이 조금 늦어 껍질이 갈라지면 그 틈새로 우르르 모여들었다. 노린재들도 많이 달려들었지만, 문제는 풍뎅이들이었다. 풍뎅이들은 억센 주둥이로 토마토를 무참하게 갉아놓았다. 식탐도 엄청나서, 사람이 다가가 손으로 털어내기 전에는 꿈쩍도 하지 않고 열심히 과육을 먹어댔다. 토마토 줄기의 성장도 문제였다. 너무 빨리 자랐고, 대책 없이 무성해졌다. 품종의 특성인지, 날이 너무 더워져 그런 것인지 알 수 없었다. 토마토는 지주대를 주변으로 석 달은 감지 않은 헝클어진 머리칼마냥 덤불이 되어 바람이 부는 대로 휘청거렸다. 벌레들이 달라붙고 상해서 물러진 토마토들 사이에서 겨우 몇 알 건진 토마토로, 올해 토마토는 이런 맛이구나 겨우 경험하고 있는 중이다.


비가 오지 않고 구름 없이 햇볕이 강렬한, 무더운 나날이 이어지고 있다. 시기가 지나 열매를 맺고 말라죽은 것들이 생기고, 뜨거운 햇볕에 갈증을 이기고 열심히 열매를 맺는 것들이 보인다. 이 와중에도 호미 날을 겨우 피한 잡초들은 재빨리 몸집을 불리고 있고, 마당의 반려견 녀석은 좀처럼 들어가지 않던 제 집으로 들어가 그늘 안에 종일 늘어져 있다. 뜨거운 여름은 움직이기 힘든 만큼 노동보다는 이 시기의 결실을 즐기는 시간이다. 약간의 노동을 피할 수는 없지만, 나는 지금 텃밭의 결실들로 뜨거운 여름을 즐기고 있다. 멀리 매미 소리가 끈질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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