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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라온제나 Oct 16. 2023

08. 가만히 있어도 둥둥 떠요, 사람 몸은

08. 가만히 있어도 둥둥 떠요, 사람 몸은


수영을 하러 갔다. 누군가를 만나지 않는 순간을 견딜 수 없다는 내 이야기를 듣고 열렬히 추천해 준 윤경이 덕분이다. 나는 중학생 때 수영장에서 수영을 배운 적이 있다. 나는 얕은 곳에서 다리를 휘젓는 연습도 하였으나 언제나 내게 500m 구간은 힘들었다. 일자로 되어있는 여러 개의 레인에서 우리는 숨을 쉴 때만 잠깐씩 물 위로 고개를 들었다. 선생님의 목소리가 수영장에 울려 퍼졌다. 혜영아, 서면 안돼. 쉬면 안 되지 옆 사람들처럼 다리에 힘주고 저어! 그 소리에 나는 자주 내 양쪽 레일에서 수영하는 사람들을 레인에 서서 구경하곤 했다. 양쪽 레일에서 수영하는 사람들도 나와 같은 수준의 반을 수강하고 있었다. 음... 파! 음... 파! 다리와 동시에 선생님께 배운 호흡법을 사용하여 열심히 물 밑과 위를 오가고 있는 사람들을 보자면 뭐랄까. 애처로웠다. 저렇게 보이나? 나도? 내 오른쪽에 놓인 친구는 멈춘 나를 한 번도 돌아보지 않았다. 쉬어가면 안 되는 걸까. 어린 생각을 하곤 했으나, 지금은 알고 있다. 자신의 벅찬 호흡법과 헤쳐나간 물의 마찰소리가 너무 커서 선생님이 나를 재촉하는 소리를 못 들었겠지. 하지만 그 소리는 계속해서 공간을 울려 채워나갔다.


그 이후 나는 특별관리 하에 놓이게 되었는데, 수영장의 양 끝 레인에서만 수영을 할 수 있었다. 그래야 선생님이 딛는 바닥에서도 내가 있는 쪽을 향해 따라 걸으며 재촉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럼 나는 선생님과 최대한 멀리 수영하다 레일을 구분하기 위해 놓인 부표에 기대 쉬곤 했다. 정말 잠깐이었다. 그걸 보면 이내 선생님이 걸어와 나를 보며 소리쳤기 때문이다.


나는 “호흡법이 내게 맞지 않은 것 같아요. 너무 벅차요”라고 말했다. 그제야 선생님은 주위를 둘러보라고 했다. 내가 본다고 할 때는 그렇게 앞만 보라더니... 모두 잘하고 있는데 왜 나만 힘드냐고. 너만 힘든 거 아니라고. 하다 보면 익숙해진다고, 재밌을 때가 온다고... 그 소리가 들려서야 아이들은 나를 봐줬다. 나는 아이들의 눈빛이, 선생님이 너무 슬펐다. 억지로 계속해서 수영을 배웠다. 호흡법은 더 거칠어져만 갔는데, 음... 파! 가 아니라 읍... 흐파!로 들렸다. 내가 다녀간 뒤 수영장은 내 눈물로 바다가 되었을 거다.


지금은 선생님 말을 안 듣는, 아니 선생님 말을 못 따라가는 몸을 가진 성인 수강생이 되었다. 오늘도 수영 선생님 말대로 발길질을 열심히 했는데, 이상하게 자꾸 가라앉았다. 


“발에 힘을 빼세요.”

“가만히 있어도 둥둥 떠요, 사람 몸은.”


수영 선생님이 말씀하셨다. 발에 힘을 빼면 가라앉을 것 같은 불안감에 힘을 빼기가 어려웠다. 

나는 힘 조절을 잘 못한다. 불안한 마음 때문이다. 


수영을 하고 돌아와 집안일을 마친 나는 퇴근하고 오지 않는 엄마를 기다리며 인스타그램을 켰다. 인스타그램에 친구들의 근황이 이것저것 올라와 있다. 놀러 간 게시글, 맛있는 걸 먹은 게시글, 염색이나 파마 같은 새로운 시도를 한 게시글. 여러 가지를 구경하다. 전혀 다른 게시글 형태에 멈췄다. 엄마의 인스타그램에 뭐가 올라왔다. 


#맛집 #모여동맛집 #회식 아마 같이 강의를 하는 선생님들과 점심을 먹는 식당인 것 같다. 눈에 띄었던 이유는 친구들의 게시글과 전혀 다르기 때문이었다. 우리 세대는 인스타그램에 진심이기 때문에, ‘피드를 꾸민다’고 하는, 게시글의 형식을 통일한다. 예를 들면, A 인스타는 먹스타그램이라고 하며 음식 사진만 올리거나 B 인스타는 OOTD라고 하며 오늘 입은 옷 사진만 올리는 거다. 그렇게 하지 않더라도, 태그를 올릴 때 댓글에 이모티콘을 하여 태그를 숨기는 게 기본이다. 엄마의 게시글은 글은 올리지 않고 사진 밑에 태그만 이어서 올렸다. 태그를 보니 아마 서비스를 받기 위해 올린 것 같다. 


인스타그램은 가끔 누군가의 근황을 연락하지 않고 알 수 있어 좋단다. 사는데 바빠 챙기기 어려운 누군가의 생일, 결혼, 출산을 알게 되어 간단하게 축하할 수도 있다. 나는 인스타그램을 자주 사용하진 않지만, 그 순기능이 주는 요소를 잘 활용한다.


학교를 다닐 때, 서로 카카오톡을 통해 연락을 주고받을 만큼 친하진 않지만 반가운 친구들이 많았다. 나는 그들을 ‘복도에서 만나면 반가운 친구들’이라고 표현했다. 복도에 지나치다 마주치면, 한참 서서 이야기하다 종소리가 들리면 각자의 반으로 뛰어들어가며 헤어지던 친구들이다. 그런 친구들은 연락처를 모르는 사이일 때도 있고, 알더라도 친한 친구들처럼 사적인 이야기를 한 적은 없어 연락하기에 어색하기도 하다. 그럴 때, 인스타그램을 활용하곤 한다. 


그런 의미에서 친구가 물은 적이 있다. 엄마와 어떻게 인스타그램 팔로우를 할 수 있냐는 거다. 내가 올리는 인스타그램 게시글 같은 내 일상들을 엄마에게 보여줄 수 있냐는 질문이었다. 기껏해야 올리는 건 내가 먹은 음식, 여행 사진뿐이지만…. 


난 엄마에게 숨기고 싶은 모습은 없지만, 그래도 가끔 거짓말이 나오는 순간들이 있다. 예를 들면 엄마의 자랑스러운 딸이 되고 싶어 거짓말을 하기도 한다. 운이 좋게 나는 나가 노는 걸 별로 좋아하지 않고, 게임에 흥미가 없었기 때문에 크게 속일 일은 없었다. 하지만, 내 욕심으로 신청한 여름학기 수업을 듣기 싫다고 올리거나, 하고 싶은 게 없다, 다시 태어나면 돌로 태어나고 싶다는 등의 당시 대학생 때 느낄 수 있는 솔직한 감정들을 엄마가 본다고 생각하면 올리기 주춤하게 되는 순간들이 있었다. (지금은 친한 친구에게만 보여주는 기능이 생겨, 특정 친구에게 숨기거나 특정 친구들에게만 보여줄 수 있다. 엄마는… 모르겠지만 말이다.)


그 감각이 가장 크게 드러난 순간이 있었다. 당시 예능에 연예인이 공인중개사처럼 사연을 받아 사연자에게 알맞은 집을 소개해주는 프로그램이 있었다. 여름 방학이라 그 예능을 보며, 누워있던 엄마와 나는 서울 집값에 놀라고 있었다.


엄마는 웃으며 내게 “저런 집 혜영이가 사주려나!”하고 물었다. 사실 이 이야기는 나에게 부담을 주고자 하는 이야기가 아니었을 거다. 어렸을 적, 진품명품 같은 걸 보며 누군가가 창고에서 찾았다는 책이 3억 원의 가치가 있다는 판정을 받으면 3억이 얼만데! 내가 돈 벌면 엄마 10억 줄게! 하던 순간들이 스쳐 지나갔다. 근데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갑작스러운 정적에 어색함이 느껴졌지만 그 또한 외면했다.


그 순간이 시간이 지날수록 자주 떠올랐다. 그 어색함이 말이다. 사실 엄마는 그 집이나, 10억이 가지고 싶었던 게 아니라 나의 귀여운 허세가 보고 싶었을 거다. 그 허세는 내 자존감에서 나오는 거니까. 근데 그런 가벼운 농담하지 못하는, 내 작고 작아진 자존감이, 그 자존감이 주는 불안한 마음이 자주 생각났다.


사람의 마음이란 참 이상해서, 어느 순간에는 너무 솔직해서 문제가 되기도 하고 어느 순간에선 모든 걸 숨기고 싶어 문제가 되기도 한다.


다음날 다시 간 수영 수업에서 선생님이 다시 말씀하셨다.


“발에 힘을 빼세요.”


선생님의 반복되는 말에도 나는 발에 힘을 빼면 가라앉을 것 같은 불안감에 휩싸인다. 가라앉으면 어때. 내가 가라앉아도, 10억짜리 집을 못 사도, 우리 엄마는 내 곁에 있어줄 것이다. 그런 생각에 힘이 쭉 빠진다. 그러자 내 몸이 물 위에 둥둥 뜬다. 둥둥 뜬 내 몸과 반대로 동동 떠다니던 불안한 마음은 가라앉는다. 마치, 몸과 마음이 교차하는 것 같다.


나는 수영이 끝나고 수영장에서 나와, 인스타그램에 하늘을 찍어 올린다. 그럼 몇 분 뒤, 좋아요 알림이 울린다. 안 봐도 알 수 있다. 엄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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