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웹진 무구' 6월 호 ' 어떤 것의 기초' 기고
“다음 주 월요일에는 서핑이 얼마나 즐거웠는지 들을 수 있었다. 파도를 타려면 근력이 필요하다고도 했다. 어떤 월요일에는, 드디어 내 보드를 샀어요, 하고 그가 웃었다.” -6월 어떤 것의 기초 / 첫 파도 글 / Blanc
“이거 봐요, 와 진짜 멋지다.”
조용히 들떠있는 옆자리의 목소리가 나를 불렀다. 파티션 너머 모니터에는 새파란 바다와 하늘이 있었다. 긴 보드 위에 올라 파도를 타고 있는 사람들. 약간 노란 기가 도는 오후 네 시의 사무실에 툭 던져진 이질적인 선명함.
“어, 서핑이네요. 저도 요즘 관심 있는데.”
“네, 재밌겠죠? 다음 주에 가려고요.”
주말 계획에 대해 이야기하는 A의 눈에 모니터 안에 있던 푸른 반짝임이 언뜻 비치는 것 같았다. 나는 그 때 어떤 패션 브랜드를 통해 서핑을 좋아하게 되어 타히티의 에메랄드빛 바다가 나오는 영상을 백 번은 본 참이었다. 이미 먼 곳의 파도와 사랑에 빠져 있던 내게, 파도를 사랑하려 하는 동료의 이야기는 무척 재미있었다.
다음 주 월요일에는 서핑이 얼마나 즐거웠는지 들을 수 있었다. 파도를 타려면 근력이 필요하다고도 했다. 어떤 월요일에는, 드디어 내 보드를 샀어요, 하고 그가 웃었다.
많은 주말이 지나고 A가 일주일에 한 번씩 바다에 다녀올 때 나는 여전히 화면 너머를 보고 있었다. 혼자 어디를 제대로 갈 수 있는 상황이 아니었던 그 해 나의 여름은, A의 후일담을 통해 강원도의 풍경을 상상만 하다 끝이 났다. 그 후로 계절은 여러 번 돌고 돌았다.
이제 다시 여름의 초입을 맞아 A와의 수다를 떠올린다. 침대 위에 가만히 누워 계절이 반복되듯 반복 재생되는 화면을 하염없이 본 지난 기억을 꺼내 본다. 그렇다면, 바라만 보던 그 시간은 그저 허무하게 흘러만 간 걸까?
거대한 파도를 타기 위해 기초 체력을 기르는 일을 떠올려 본다. 거대한 파도가 되기 위해 작은 물방울이 모여드는 모습을 떠올려 본다. 고통을 견디고 오늘이 되도록 상상 속의 바다를 잘 품어오던 오랜 세월이 내겐 마음의 기초 체력을 기르는 시간이었다.
그러니 지금의 이 파도는 이미 오래 전에 처음 탄생한 것이다. 약하고 힘이 모자라 멀리 가지 못했던 작은 포말 같은 날들이 모이고 모여 그 때의 파티션보다 훨씬 높은 벽을 넘었다. 이제 정말로 발을 적실 시간이고, 나는 곧 먼 바다에 갈 것이다. 큰 파도를 타고 오를 준비가 됐다.
*이 글은 '웹진 무구' 6월 호 [어떤 것의 기초] 에 실렸습니다. 아래 링크에서도 글을 읽으실 수 있으며, 7월 호 발매되어 브런치에 전문을 게재했습니다. 프리뷰는 웹진 무구 담당자님의 발췌를 가져온 것입니다. 편집진의 노고에 감사드립니다.
Soyeon Na, Blanc
노마드미술기자/아티스트
일간지 미술기자로 재직 후 퇴사, 세상 어디든지 사무실 삼는 '노마드미술기자' 로, 신문 디자이너이자 호기심 많은 미디어 콘텐츠 관찰자로 산 지 십 년 째. 일러스트레이션 아티스트로서 파리에서의 국제 아티스트 레지던시를 마치고 서울에 머물며 그림과 글을 만든다. 최근 영감의 원천은 여행과 케이팝, 좋아하는 단어는 '사랑'과 '아름다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