헤일 - 8%
요즘 내가 깨달은 건, 아침에 자고 일어났다 하여 내 에너지가 100% 풀충전이 되지는 않는다는 점이다. 내 머리맡 휴대폰도 부팅시켜보면 94%로 시작한다. 분명히 초록색 불이 들어온 걸 내가 봤는데 말이다. 참, 얘나 나나 그 주인에 그 물건이다.
햄스터처럼 바쁘게 쳇바퀴를 돌리며 지냈다. 우습게도 한때는 이런 삶을 동경하기도 했다. 학생 때는 하늘을 바라보면서 얼른 사회인이 되고 싶다 생각했었다. 별 다른 이유는 없었다. 그저 심심한 것보다는 차라리 바쁜 게 바람직해 보여서. 그뿐이었다. 그래서 누군가 나에게 돈 많은 백수냐, 그래도 일은 하는 직장인이 되고 싶냐고 물었을 때에도 나는 당당하게 직장인을 선택했다. 노는 것도 하루 이틀이면 충분하고 그 이상의 삶은 딱 질색이라고 단호하게 말하면서 말이다.
근데, 지금 와서 생각해보니 돈 많은 백수가 최고인 것 같다. 보조배터리를 달고 있는 삶일 것 같다. 돈 많은 백수가 되지 못한 나는 하루하루 피곤에 찌들어서 집에 돌아온다. 그러고 나면 아무것도 하기가 싫다. 아무것도 안 할 예정이지만 정말 격렬하게 아무것도 하기 싫어진다. 술은 이제 반 병만 마셔도 취기가 올라오고 대학생 때 밤새 하던 게임도 한 두 판만 하면 금방 피곤해진다. 대학생 때는 내가 무슨 보약이라도 먹었었나 싶다.
아, 노곤하다. 정말 노곤하다.
방전되기 전 나머지 8%의 배터리로 몇 문장 끄적인다. 퇴근 후 남은 8%를 어떻게 쓰면 좋을까 하며 곰곰이 생각했었다. 그런데 사실 이렇다 할만한 건 생각나지 않는다. 그나마 노래 들으면서 하루 정리하는 게 나에겐 최선인 것 같다. 사실 이렇게라도 끄적거리면 좀 뿌듯한 감도 있으니까, 조금이라도 의미 있게 써야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