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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고구마깡 Aug 13. 2019

밥상머리, 수저 소리

아침 일찍 집을 나서면서 듣는 소리 중 가장 날카롭게 나의 귀를 때리는 소리가 있다. 누군가의 등교, 출근을 준비하며 차리는 아침밥상의 수저 소리. 1인 가구도 많다지만 그래도 내 주변에는 가족단위의 구성체들이 참 많다.


멍 때리며 시작한 하루가 어느 주택가의 수저 소리에 흠칫한다. 누군가에겐 그저 일상의 소리이자 소음일 수도 있겠다. 어쩌면 그리운 소리일 수도 있겠구나. 단순한 수저 소리에 아침부터 많은 생각이 들었다. 어렸을 때 학교에 가기 위해 부산히 아침밥을 챙겨주시던 어머니 생각도 나고 출근 첫날, 아침 한 끼는 만들어 먹어보자며 새벽 4시에 일어나 밥을 지었던 때나 낯선 여행지에서의 아침을 비롯한 수많은 생각들이 떠올랐다.


어렸을 땐 수저 소리가 참 싫었다. 정해진 시간보다 5~6분 일찍 일어난다는 건 남녀노소를 불문하고 깨나 고달픈 일이다. 알람이나 어머니의 부름이 아닌, 쇠숟가락과 젓가락의 날카로운 소리에 곧 등교시간이 되었음을 항상 눈치채고는 했다. 일어나야 할 시간이구나. 좀만 더 눕고 싶은데. 곧 어머니가 날 깨우러 오시겠구나. 아 싫다.


그렇게 아침을 싫어하던 꼬마가 대학생이 되었다. 자취를 시작하면서 수저 소리는 점차 사그라들었다. 굳이 아침을 챙겨 먹는 스타일이 아니었던 터라, 내 방에 수저 소리가 들리던 경우는 학교 선후배나 동기들과 조촐하게 술잔을 기울이던 때가 대부분이었다. 대충 인터넷으로 레시피를 확인해서 뚝딱 만드는 안주와 차갑게 보관된 초록색 병들. 그리고 술자리의 시작을 알리는 수저 소리. 예전과는 다르게, 하루의 마무리에서 수저 소리가 들려오곤 했다.


'적어도 나 때는 통일이 되겠지' 라며 안일하게 생각했던 내가 군대를 갔다. 아침 구령에 맞추어 정렬을 하고 먹기 싫은 아침을 억지로 받으며 툭 내려놓는 수저 소리는 지금 생각해도 참 끔찍하다. 오늘은 어떤 일을 할까. 전역은 언제 하나. 오늘 이 아침을 받고 좀만 버티면 그래도 하루는 가는구나. 몇 년이 지났어도 생각해보면 그때의 수저 소리는 지겨움이었다.


대학을 졸업하고 취직을 한다. 여전히 아침은 거르는 나였기에 수저 소리는 잘 들리지 않는다. 그렇다고 내가 무언가를 직접 만들어서 챙겨 먹는 스타일도 아니기에 밥상머리의 소리들은 매번 지나가는 한 주택가에서나 듣곤 한다. 누군가에게 그 소리는 나의 과거일 수도 있고 언젠가 나의 미래일 수도 있겠구나. 시간이 흐르면 나는 수저 소리에서 어떤 감정을 느낄까.


아침 밥상의 수저 소리로 아직도 많은 사람들이 하루를 시작한다. 아침도 거르며 피곤할 하루를 시작하는 이에수저 소리는 그리움일 것이다. 시간이 흘러가면서 들어왔던 수저, 그 속에 담긴 그때만의 감정들. 오늘은 어째선지 지난 시간들이 짧은 회상씬처럼 지나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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