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수업
어제, 길고 긴 두 달간의 여정을 마무리했다. 단 두 곡의 선율로 무사히 막을 내렸다. 떨리는 무대 위에서 비로소 깨달았다. 이 단 하나의 '결실'을 맺기 위해 얼마나 많은 땀과 손길이 필요했는지, 그리고 그 과정 자체가 얼마나 소중한 배움이었는지 깊이 새겼다. 그렇다면 난 왜 이토록 낯선 무대 위에 섰을까? 이 질문에 대한 답을 세 가지 이유로 풀어본다.
첫 번째, 고마운 아내
떨리는 무대에서 내려와 숨을 고르자, 가장 먼저 눈앞에 아내가 선명하게 떠올랐다. 내게 주어진 이 가곡 교실의 '호사'는 오롯이 아내의 헌신적인 노력 덕분이다. 아내가 열심히 가족을 위해 뛰어주었기에 내가 여유를 부려 좋아하는 일을 할 수 있었다.
내가 원하는 걸 해낼 수 있었던 것처럼, 아내 역시 그동안 미뤄뒀던 꿈과 시간을 누릴 자격이 있다. 나는 그저 고맙다는 노래를 부르는 것에 멈추지 않을 것이다. 앞으로 2년 안에, 아내가 현재 일하는 시간을 절반으로 줄이고도 행복하게 생활할 수 있는 단단한 구조를 만들겠다고 무대 뒤에서 다짐했다. 이제 그녀의 꿈을 펼칠 시간이다.
두 번째, 귀여운 딸
내가 가곡 교실의 문을 두드린 지 벌써 1년 정도 되었다. 성가대나 합창단에서 노래를 불러본 사람도 아닌데 말이다. 선생님도 수강생들도 '노래 부를 자리가 없는데 왜 배울까?' 의아해했지만, 난 딸아이에게 보여주고 싶었다. 아빠도 좋아하는 걸 해내기 위해 노력한다는 걸. 그리고 그 노력을 통해 무언가를 이루어내는 아빠의 모습을 보여줌으로써, 딸에게 더 크고 넓은 세상을 경험하게 해주고 싶었다.
세 번째, 소중한 나 자신
나라는 몸뚱이를 품고 50년 넘게 살아왔는데, 너무 함부로 대한 건 아닌지 돌아본다. 노래는 나 자신을 위로해 준 소중한 친구였다. 수많은 삶의 갈등 속에서 노래가 기쁨과 눈물을 안겨주었듯, 나 역시 '나 하나 꽃 피어'라는 노래를 통해 누군가에게 위로를 전하고 싶었다.
세상을 바꾸겠다는 젊은 날의 허무맹랑한 꿈을 접고 이제야 깨닫는다. 나 하나가 소중하듯, 타인 역시 소중하다는 진리를. 결국 글이든 노래든 '나'를 가장 투명하게 표현하는 것이다. 그리고 그 아름다운 '나'를 가꾸는 것이 곧 세상을 아름답게 표현하는 가장 확실한 방법임을 깨닫는다.
이제 노래에 내 마음을, 글에 내 생각을 담아 진심을 전하며 살아야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