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마 부치지 못해서
네게 부치지 못한 편지가 있다. 하나, 둘 쌓여버린 편지에는 그간 내가 얼마나 힘들었는지 네가 얼마나 보고 싶었는지, 푸념들이 먼지와 뒤엉켜 있다.
요즘 시대에 작은 휴대폰을 들기만 해도 네가 어찌 지내는지 알 수 있겠지만, 너도 나도 학창 시절에 쪽지로 주고받은 습관을 버리지 못한 채 아직도 손바닥만 한 엽서에 고작 몇 마디를 꾹꾹 눌러 담는다.
내가 편지를 부치지 못하는 것은 편지에 쓰인 글이 오직 나의 어줍잖은 푸념들로 가득하기 때문이다. 네가 건강한지, 밥은 잘 먹고 있는지, 사람들과 힘들지 않은지. 네 소소한 일상이 궁금하기보다 오로지 내가 밥을 잘 먹지 못하고, 건강하지 못하며, 사람들과 잘 지내지 못해 힘들다는 단어들이 너를 힘들게만 할 것 같다.
네가 보낸 엽서는 나에 대한 사랑과 내가 잘 지내길 바란다는 다정한 온기로 가득한데, 나는 왜 이리도 이기적인 마음으로 힘이 들다는 말로 네게 편지를 쓰고 싶은 것인지 알 수 없다.
오늘은 누군가 누군가 달의 끄트머리를 어둔 손으로 문질러 댔다. 달은 흐려지고, 붉은 빛이 얼러져 금세 눈물이라도 머금은 것 같은 내 눈시울처럼 보인다. 너는 한 번도 운 적이 없고, 나는 너무도 많이 울었다. 흐려진 경계선 너머로 내 힘든 삶이 스며들었을까 나는 오늘도 이런저런 말을 끄적인 글들을 고이 접어 서랍에 넣어둔 채 네게 편지를 부치지 못한다. 우표가 붙은 봉투는 금방이라도 네게 닿을 것만 같은데 내 이기심이 너를 힘들게 할까 망설이게 된다.
어느 젊은 날, 너는 내게 나의 힘듦이 버겁다 했고,
나는 나의 힘듦이 너를 괴로움에 몸부림치게 할 거라는 생각을 하지 못할 만큼 이기적이었다.
문드러진 달.
너는 달의 이름을 가져왔고, 내 소식을 받지 못해 눈물로 이렇게 충혈됐을까.
나는 너에게만큼은 억지로 잘 지내고 싶지 않아,
오늘도 부치지 못한 편지. 먼지가 한 톨, 눈물처럼 내려앉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