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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올리비아 킴 Jun 08. 2023

생일이라는 것.

존재가 수고스러움이 아닌, 아름다운 잔해로 남기를.



 감사하게도 어제는 생일이었다. 올해는 윤달이 끼어 있어서 음력 생일을 보내는 내게는 6월 생일이 낯설다. 달이 넘어갔기 때문일까. 작년까지만 해도 마냥 생일인 것이 좋아서, 몇 주 내내 사람들을 만나는 계획을 잡거나, 혼자 크고 작은 이벤트를 만들어 냈다. 그렇게 하고 나면 나라는 사람이 세상에서 특별한 존재가 된 것 같아서 기분이 좋기도 하고, 나를 특별하게 여겨주는 세상 모든 것이 사랑스러웠다. 하루하루 힘들게 보낼 때가 많지만, 그래도 태어나길 잘했다는 생각으로 충만했다. 사실 올해도 몇 주 전까지는 그런 생각들로 가득했는데 막상 생일이 되자 모든 게 시들해졌다. 남편이 생일 선물로 갖고 싶은 게 있냐고 물었을 때, 내게 특별히 필요한 것이 뭐가 있는지 한참을 궁리해도 생각나지 않았다. 비싼 스카프가 갖고 싶을 때가 분명히 있었는데, 동생이 막상 생일선물로 보내준 스카프는 부담스러워서 취소시켜 버렸다. 사람들이 보내주는 선물도 그냥 괜찮다며, 인사말로도 끝내자고 했다. 내 존재가, 내가 태어난 날이 누군가에게 수고스러운 일이  되는 것 같아서 슬퍼졌고, 그러지 않았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스무 살의 엄마는 나를 열 달간 품으며 엄청 고생했을 것이다. 임신중독까지 걸려서 힘들었다고 하셨다는 말이 떠오른다. 나는 아이를 갖고, 낳고, 키우는 것이 여전히 무서워서 감히 시도도 못하고 있는데, 엄마는 기꺼이 나를 낳고 자신의 인생에서 가장 좋은 시간을 양육에 쏟아부었다. 아빠도 그랬을 것이다. 하루를 책임지고 살아가는 것이 숨이 막힐법도 한데 가장이라는 이름으로 부양을 위해 애썼다. 일흔을 앞둔 아버지는 마흔이 다 되어 가는 딸이 여전히 챙길 게 투성이인지, 친정에 갈 때마다 이런저런 것들을 챙기신다. 다 컸다고 생각했는데 난 여전히 부모님께 기대고 있고, 투정과 응석을 부리며 두 분을 버겁게 하는 것 같아 마음 한편이 죄스럽다. 응당 태어나고 존재하는 것이 누군가에게 힘이 되고 세상에 기여해야 할 법한데, 나는 그러지 못하고, 특히나 나를 사랑해 주는 사람들에게 수고스러운 존재가 된 것은 아닌지 마음이 불안해졌다. 


 반대로 생각해 보면 누군가의 생일이나, 존재가 내겐 고마울 때가 있다. 무엇을 하지 않아도, 내게 무엇을 주지 않아도 그저 '존재'만으로도 소중하기에 그가 세상에 나타나게 된 날이 내겐 무척이나 특별하다. 무엇이든 해주고 싶고, 특별한 날로 여겨주길 바란다. 그런데 내게는 왜 이렇게 회의적인 생각만 드는 걸까. 가족들과 지인이 건네준 선물이 무척이나 부담스럽다. 어린 시절에는 많은 선물이나 비싼 선물을 받아야 내가 축하를 받는다는 바보 같은 생각도 했다. 그러나 내가 선물을 귀하게 여기지 못한다면 적어도 주는 사람에게는 아무런 부담도 주지 않았으면 좋겠다. 나를 아는 것이 기쁨으로 남았으면 좋겠다. 



 어젯밤, 고양이랑 단 둘이 거실에서 뒹굴거리며 이런저런 말을 걸었다. 17년을 나와 함께 한 이 친구를 볼 때마다 나는 존재만으로도 고맙고, 사랑으로 충만해진다. 무엇을 하지 않아도 건강하게 있어주는 것, 우리가 만났다는 사실, 십오 년 넘게 내 곁에 있어 주었다는 존재의 감사함, 언젠가 우리가 이 세상에서 작별해야 하고 다가올 미래가 두렵지만 겸허히 받아들일 수밖에 없다고 마음을 단단히 먹게 되는 것, 헤어진 이후 사무치게 그리워하면서도 그리움으로 나는 아파도 너는 아파하지 않았으면 좋겠다는 마음.

 너와 내가 말은 통하지 않아도 우리가 사랑하고 있다는 것을 함께 느낀다는 것. 




 나는 나의 존재가 누군가에게 그랬으면 한다. 내가 태어나고 존재하는 것이 고양이를 향해 온전히 느끼는 것처럼 사랑과 감사함과, 우리가 언젠가 헤어질 수밖에 없다는 그 사실이 슬프지만, 너에 대한 그리움이 아름다운 잔해가 되는 것이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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