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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올리비아 킴 Jul 17. 2023

잊혀진 시간들



 장마다. 종일 비가 내리던 금요일 오후. 베란다 비가 치고 들어오길래 화분을 슬쩍 밀어두었다. 노지에서 자라야 할 남천나무를 집 안에서 키우고 있으니, 이런 식으로 나마 바깥세상을 누렸으면 했다. 바람을 타고 들어오는 빗방울에 남천 나무가 조금씩 흔들리는 모습을 보고 있으니 시간이 느리게 흐르는 것 같았다. 때마침 라디오에서 흘러나오는 잊혀진 시간들(피유망적시광)을 들으며, 오랜만에 온전히 여기에 존재하는 느낌을 받았다. 묘하게도 비가 오는 계절이면 오래된 홍콩 영화의 OST가 반갑다. 노래 가사처럼 비가 그리운 마음을 두드리듯 오래전 감성이 떠오르고, 그리운 지난날과, 사람들을 추억하게 되는 시간이 참 좋다.


 그날은 모처럼 연차를 내고 오랜만에 친구를 만난 날이었다. 친구의 어린 아들이 유치원에서 돌아오기 전까지 많은 이야기를 쏟아냈다. 같은 지역에 사는데도 보기가 쉽지 않다. 나이가 들 수록 연락하는 친구들의 수가 점점 줄어만 간다. 서로에게 영영 잊히지 않을까 내심 걱정되면서도, 오랜만에 만났는데도 마치 어제도 봤던 사람인 양 이야기를 나눌 수 있어서 참으로 다행이다. 연락처에는 서로 연락하지 않다가 아마 앞으로 평생토록 보지 못하진 않을까 싶은 친구들도 있다. 작은 바람은, 그래도 우리가 죽기 전에 단 한 번이라도 더 만나서 지난날을 추억해 보고 싶다.




 어느 순간부터 조만간 보자,라는 지키지도 못할 약속을 하지 않게 됐다. 내 시대에 함께하는 당신을 언제까지 볼 수 있을까. 영원토록 내가 당신과 세상에 존재할 것처럼 살아가는 착각에서 벗어나야 할 것이다. 사람의 생은 너무도 찰나 같다. 영원 같지만, 너무도 짧은 시간. 이런 것들을 실감하게 된 건 내 곁에 있는 사람들과 나 자신이 이제 늙어간다는 걸 알아채고, 어제는 있었던 것이 오늘은 사라진 것을 알게 되면 서다. 나와 가장 가까운 많은 것들과 이별할 시기가 머지않았음을 알아가고 있다. 그런 시기를 생각하면 정말 가슴 아플 것 같지만 그것이 생의 순리라는 사실이 조금은 위안이 된다.


 연일 뉴스에서는 폭우로 인한 사건사고가 끊이질 않는다. 누군들 그렇게 생을 마감할 줄 알았을까. 주어진 하루를 더욱 감사하게 살아야 하고, 함께 하는 사람들에게 더 많은 사랑을 주고, 존재하는 많은 것들을 사랑하는 마음으로 살아가야 하는데 어제도 사소한 것들로 토라지고 화를 낸 자신이 부끄럽다. 어지간해선 한번 더 참아보려고 하고, 어지간해선 화내는 상태로 헤어지지 않으려고 노력하자. 서로의 마음에 상처를 남기는 것이 당신과 나 사이의 마지막이 되진 않았으면 한다.  어떤 시인의 말처럼 마지막 말이 서로의 유언이 될 수밖에 없다면, 최대한 따뜻한 말로 인사를 나누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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