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낭보다 여행, 배낭을 비우자
인도 여행자의 배낭
모든 결심은 산책에서 비롯되는 게 아닐까? 작년에는 산책을 하며 긴 여행을 떠나기로 마음먹고 올해는 암스테르담의 한 공원을 산책하며 배낭 없이 떠나는 가벼운 여행을 마음먹는다. 이것만큼은 부디 부끄러운 작심삼일로 끝내지 말자고 약속하며. 가장 먼저 할 일은 방 한 칸을 전부 차지하고 있는 커다란 배낭을 없애는 일이었다. 나는 조용히 배낭을 바라보며 내가 언제부터 저 커다란 물건에 짓눌려 살아왔는지 곰곰이 생각해보았다. 그건 아마 인도의 어느 기차역에서 시작되었던 것 같다.
여기저기 상처 입은 누런 개 몇 마리가 사람들이 남기고 간 음식을 찾아 하이에나처럼 돌아다녔다. 형형색색의 사리(sari) 자락이 오고 가는 발걸음에 흩날렸다. 그 모습이 꼭 어항 속 열대어의 비늘처럼 반짝반짝 빛났다. 어울리지 않는 장면들이 얼기설기 기워져 있는 그곳은 눈 깜짝할 새 길을 잃고 마는 인도의 기차역, 정확히는 뉴델리의 기차역이었다. 온갖 살림살이를 테트리스처럼 빈틈없이 쌓아놓고 매표소 옆에 각 잡고 이부자리를 편 이곳은 5시간 정도 열차가 지연되는 일이 밥 먹는 일처럼 필연적인 곳. 엉망진창이라는 말이다.
드넓은 인도 전역으로 뻗어나가는 이 기차역에서 제대로 된 기차를 타기 위해서는 정신을 바짝 차려야 한다. 기차 연착은 기본이고 잘못된 기차를 타는 일이 덤으로 발생하기 때문이다. 제이슨 본처럼 날을 바짝 세우지 않으면 엉뚱한 열차를 타고 사막 한가운데 내려야 할지도 모른다.
'나의 목적지 블루시티 조드푸르, 좌석 SL(Sleeper Class), A3, 21, UB'
생사가 달린 암호를 외우는 본처럼 나는 기차 코드를 중얼거리며 열차에 오르기 위한 기나긴 대열에 합류했다. 긴 줄 끄트머리에 서서 열차에 오르길 기다리지만 시간이 지나도 줄은 절대 줄지 않는다. 현지인들의 세련된 새치기 기술에 넋 놓고 뒤통수만 쳐다보고 있으니 곧 제복을 입은 사람들이 다가와 긴 막대기로 사람들을 세차게 내려친다. 순간 내가 기차를 타는 건지 동물원 우리에 갇히는 건지 혼란스러운 기분이 들었다.
한참을 헤매다 도착한 내 침대 위에는 먼지가 눈처럼 쌓인 선풍기가 나를 노려보고 있었다. 축축하고 기분 나쁜 땀냄새가 나는 내 몸을 확인하며 여긴 동물원이 확실하다고 생각하는 찰나, 내 앞자리에 커다란 배낭 하나가 놓였다.
_ 앞으로 최소 12시간은 함께 하겠네? 난 스위스에서 왔어, 반가워.
인도를 6개월째 여행 중이고 아직 언제 집으로 돌아갈지 모르겠다는 스위스의 방랑자, 필립이었다. 180cm의 장신인 필립은 자신보다 큰 어마어마한 배낭에 긴 다리를 척 올리며 웃었다. 인도 시장에서 산 500원짜리 바지와 아무렇게나 길렀지만 왠지 멋져 보이는 수염, 팔목을 휘감는 가죽 팔찌와 여러 색의 반지까지 나는 단숨에 그가 여행의 고수임을 알아보았다.
그의 배낭에는 작은 스테인리스 컵과 침낭, 팔뚝 만한 크기의 텐트와 온갖 물건들이 대롱대롱 매달려 있었고 배낭의 옆주머니에는 1.5리터 생수와 쪼리가 꽂혀 있었다. 가끔 멍하니 창밖을 보다가 다 찢어진 종이에 몽당연필로 그날의 영감을 휘갈기는 그의 모습은 세계를 자기 집처럼 방랑하는 진정한 여행자처럼 보였다. 그래! 이게 배낭여행이지!
여행보다 배낭?
그날 이후로 내게 배낭여행은 언제나 여행보다 배낭이 앞서는 단어였다. 두 개의 단어가 균형을 이루며 공존하기보다 언제나 배낭이 여행을 압도하는 시소 놀이였다. 커다란 배낭을 바닥에 아무렇게나 깔고 앉아 길거리 국수를 사 먹고 치렁거리는 바지와 감지 않은 머리를 걷어올리며 여행을 잔뜩 무시하는 태도가 그렇게 멋져 보일 수 없었다.
어떤 짐을 싸고 어떤 물건들을 매달고 얼마나 무겁고 힘들게 여행하는지가 어디를 가는지 보다 중요했다. 필립처럼 자유롭게 여행하는 이들을 흉내 내려 애쓰며 캐리어를 끌고 다니는 관광객들을 얕잡아 보기도 했다. 그렇게 배낭의 무게에 짓눌리고 여행보다 배낭에 집중하는 허세로 이십 대 여행의 대부분을 흘려보냈다. 맙소사.
서른이 넘어 긴 여행을 마친 지금에 와서 생각해보면 그런 내가 귀엽기도 하고(그때 난 고작 스무 살이었다. 만으로 열아홉이니 조금은 봐주자 싶다가도) 참 못났다 싶어 부끄럽기도 하다. 자기 몸처럼 소중히 배낭을 다루고 누구보다 평화로운 방법으로 온 세계를 누비는 진짜 배낭여행자들에게 실로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 또 그들을 따라 한답시고 으스대는 마음으로 무시했던 여행자들에게도 사과하고 싶었다.
우리 모두, 각자에게 맞는 자기만의 여행을 해야 하지 않을까? 멋져 보이는 누군가의 배낭 말고 좋아요 많은 어느 여행지 말고 내게 맞는 나만의 여행을 떠나야 하지 않을까? 열 명의 사람에게 열 개의 인생이 있듯이 열 개의 여행 또한 있어야 한다. 남들이 정한 여행의 모양에서 벗어나 자기에게 맞는 길을 떠나는 게 제대로 된 여행이 아닐까 생각해본다. 그리고 내게는 그 길이 가벼운 여행 가방 하나에서 시작된다면 좋겠다.
나는 이제 배낭을 압도하는 여행을 하고 싶다. 누군가의 여행을 따라나서는 멋진 복제품보다 어디 하나 흠집이 났더라도 유일하고 낡은 진품이 되고 싶다. 겉멋에 치중하는 입만 가벼운 여행자보다 입은 묵직하되 몸은 가벼운 여행자가 되고 싶다. 그렇게 다시 짐을 줄이기로 굳게 마음 먹었다.
배낭보다 여행!
배낭보다 여행에 집중하기 위해서는 우선 짐으로 가득 찬 배낭부터 정리해야 했다. 하지만 그 많은 물건들 중에서 도대체 어떻게 필요한 것들만 남겨야 할지 감이 오질 않았다. 배낭을 없애는 완벽한 방법에 대해 알려주는 여행 수업이 있으면 당장이라도 등록하고 싶었다. 결국 우리는 문제집 맨 뒤에 해답을 훔쳐보는 심정으로 짐 없는 여행에 대한 사례들을 찾아보기 시작했다.
외국에서는 이미 많은 사람들이 짐 없이 여행하는 '미니멀 여행'을 실천 중이었다. 작은 가방 하나에 몇 가지 물건만 넣어 아시아를 여행한 독일 사람부터 주머니에 들어갈 만큼의 물건만으로 여행을 하는 포켓-트래블러, 그야말로 맨 몸으로 여행을 떠난 미국인 커플까지 다양한 여행자들이 있었다. 특히 맨 몸으로 한 달간 유럽을 여행한 커플의 이야기는 이미 전 세계 다양한 나라에 책으로 출판될 만큼 아주 유명했다.
대부분의 미니멀 여행자들은 모두 자기만의 기준과 분명한 목적을 가지고 스스로에게 적당한 양의 짐을 챙겼다. 산악지역을 중심으로 캠핑을 하는지, 도심을 주로 여행하는지, 얼마 동안의 기간인지, 누구와 함께 하는지, 평소 글을 쓰는 습관은 어떤지, 매번 요리를 만드는지, 자신의 여행 스타일에 맞춰 최소한의 짐만을 꾸렸다. '이건 무조건 필요해!'라던가 '그 짐은 절대 필요 없으니 과감히 삭제해!' 하는 명확한 해답은 어디에도 없었다.
생각해보니 당연한 일이었다. 꼭 필요한 짐이란 각자의 여행에 따라 달라지기 마련이니까. 우리 역시 우리만의 합리적인 미니멀리즘이 필요했다. 우리가 하고자 하는 여행, 우리가 가고자 하는 장소를 고민하며 짐을 추려나가야 했다. 그래서 어떤 물건을 남겨야 한다고?
각자의 미니멀리즘
_ 인간적으로 여벌 옷 하나쯤은 필요하지 않을까? 그 미국인들은 빨래하는 동안 어떻게 홀딱 벗고 있었던 거야? 난 절대 홀딱 벗고 빨래를 하고 싶지는 않은데 말이야. 그러니까 잠옷 정도는 반드시 필요하겠어.
_ 이 노트는 정말 안 가져갈 수 없어. 찢어버리는 한이 있어도 안돼. 내 영혼의 짝이란 말이야.
_ 그래. 정말 넓은 마음으로 인정할게. 그래도 이 우산을 가져가는 건 정말 아니지 않아? 이것도 영혼의 짝이라고 하진 않겠지.
_ 인간적으로 그 안대가 더 말이 안 되지 않니? (절레절레)
맨 몸으로 유럽을 여행 한 미국인 커플은 진정 짐이라곤 전혀 없었다. 짐 하나 없이 신용카드와 아이폰, 충전기와 여권만을 주머니에 대충 쑤셔 넣고 여행하던 사람들이었다. 전생의 업보라곤 절대 없는 것처럼, 주머니에 들어갈 간단한 소지품이 삶의 전부인 것처럼, 가볍다 못해 날아갈 듯한 차림으로 한 달 동안 유럽을 여행했다.
우리도 그렇게 맨 몸으로 떠나길 상상해보았지만, 이리 생각하고 저리 고민해봐도 도저히 불가능했다. 우리의 일정은 한 달보다 길었고, 유럽의 겨울과 아시아의 여름을 거치는 계절적 변수들이 꽤 컸기 때문이다. 그리고 무엇보다, 나는 입고 있는 옷을 매일 세탁하는 동안 홀딱 벗고 있을 만큼 개방적이지 못한 소심이고, (지금도 맥북을 보고 있는) 이 아이는 컴퓨터 없이는 살 수 없는 (애플) 정키다.
결국 우리는 각자에게 꼭 필요하다고 생각한 최소한의 짐을 꾸려 작은 가방 하나씩만 들기로 결정했다. 물건별로 사용 빈도와 대체 가능성을 기준으로 각자의 짐을 추려나가기로 한 것이다. 나는 과감하게 컴퓨터와 카메라를 빼기로 했다. 내가 가진 물건들 중 가장 큰 무게가 나가는 짐이었고 두 가지 기능 모두 핸드폰으로 대체할 수 있었다. 글을 쓸 때는 휴대폰을 활용하거나 작은 노트에 메모를 하기로 했다. 그 외에 빨래할 동안이나 잘 때 입을 티셔츠 하나와 반바지 하나, 여분의 속옷과 모자 한 개, 칫솔과 비누를 포함한 간단한 세면도구 몇 가지, 선글라스와 동전지갑, 립밤과 작은 용량의 로션, (도저히 포기할 수 없었던) 다이어리 한 권을 챙겼다. 기내 반입 시에 용량 제한이 있고 무게가 꽤 나가는 샴푸나 폼클렌징은 고체로 된 제품을 이용하여 부피를 줄였다. 마지막으로 넣은 손톱깎기까지 포함해서 하나하나 세어보니 총 25가지 물건, 무게 2kg의 짐이다.
그 사람 역시 집 안에서 입을 옷 한 벌과 양말, 속옷을 챙겼다. 그리고 무게가 꽤 나가는 맥북과 디지털카메라, 그에 필요한 각종 충전 용품과 어댑터를 더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정말 필요하다고 우기던) 안대를 더해 총 20가지의 물건, 4.5kg의 짐을 쌌다. (고집을 부려 들고 가려고 했던 사진 속의 외장하드는 마지막에 제외시켰다. 사진 속에 등장하지 않는 작은 디지털카메라가 그 자리를 대신했다.) 우리가 선택한 물건들은 각자의 일상에서 사용 빈도가 높고 다른 물건으로 대체가 불가능하다고 여긴 것들이다.
18킬로의 자유
몇 가지의 물건만 남기고 보니 한국에서 가져온 배낭에는 우리가 한 번도 쓰지 않은 물건도 있었고 자가 증식하듯 무럭무럭 스스로 늘어난 짐도 있었다. 각 나라에서 한 두 개씩 남았던 동전들이 모이고 모여 1kg이 되었고 5명이 누워도 거뜬한 퀸사이즈의 에어매트는 지난여름 페스티벌에서 챙겨 온 이후로 한 번도 사용한 적이 없었으며 예비로 챙겨 온 외장하드 중 하나는 한 번 꽂아 보지도 못한 채 배낭 속에 잠들어있었다. 그런 불필요한 짐들이 모여 20kg에 달했던 것이다.
부피가 큰 물건을 중심으로 나눠 절반은 한국으로 보내고 나머지 절반은 암스테르담에 사는 친구의 집에 양해를 구하고 보관을 부탁했다. 친구는 무언가 부족한 것이 있으면 언제든 연락하라는 흔쾌히 우리 짐을 맡아주기로 했다.
_ 와. 2kg이라니. 사실 필요한 건 이렇게나 적었는데, 여행이 그만큼 간단할 수 있었는데, 일상이 그렇게 단순할 수 있었는데! 허세가 이렇게 사람을 망쳐요. 반성해야지.
불필요한 짐들을 추려내고 보니 침낭이 주렁주렁 열매처럼 달린 커다란 배낭을 없애고 나니 여행도 일상도 몹시 간단해지는 기분이 들었다. 그리고 자유로웠다. 어디로든 이 작은 가방만 들고 떠나면 그만이었다. 20kg의 배낭이 2kg의 가방이 되었고 나머지 무게는 수증기처럼 훌쩍 허공으로 증발해 내 어깨 사이를 스치며 날아가 벼렸다. 18킬로그램만큼의 자유였다.
우리는 스무 가지로 줄인 짐을 작은 프라이탁 가방에 넣었다. 처음엔 이 가방을 사용하게 된 게, 그저 우연이라고만 여겼다. 지금 와 돌이켜보면 우리가 프라이탁을 들게 된 건 아주 운명적인 사건이었다. 프라하의 한 카페에서 만난 두 여행자 덕분에 배낭을 없애기로 마음먹은 그날처럼 아주 운명적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