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geethink Sep 26. 2018

혼자 해보겠습니다.

나는, 어쩌면 여행이 아니라 용기를 내는 일이 필요했던 것 같다.

‘혼자 해보겠습니다’는 사실 책 제목이다. 처음 저 책 제목을 보았을 때는 독립에 대한 이야기인가 했다. 하지만 목차를 보니, 혼자 하는 것이 두려웠던 작가가 삼겹살 먹기 등 혼자 하기 어려웠던 일들에 도전하는 이야기였다.



이 책을 만난 건 바로 어제, 나 또한 혼자 여행을 하고있었다. 2016년 덴마크를 마지막으로 정말 오랜만에 혼자 떠난 여행이었다. 이런 저런 일들로 서울을 떠나 마음 편히 있고 싶다는 생각에, 서울에서 가깝지만 한 번도 가본 적 없던 춘천으로 떠나기로 했다.




하지만, 사실 떠나기 전에 이런 저런 이유로 많이 망설여졌다. ‘퇴사 후 거의 매일이 혼자만의 시간인데, 굳이 또 혼자만의 여행?’ 이런 생각도 들었고, 서울 여행은 (지나치게) 혼자 잘 다니지만서도 교외는 여행해 본 적이 없어 왠지 모르게 불안하기도 했다.



그런데 여행을 가기로 했던 아침, 일어나자마자 머릿속에 고은의 시가 떠올랐다. 


떠나라, 그대 하루 하루의 낡은 반복으로부터.
-고은, 낯선 곳


나는 생각했다. 하루 하루의 반복으로부터 떠나왔지만, 다시 지금이 낡은 반복이 되어있구나, 나에게 또 낯선 곳이 필요하구나. 그리고 나는 침대에서 몸을 일으켜 춘천으로 향했다.



춘천혼자여행을 검색하다 블로그에서 어떤 18살 여학생이 김유정역에서 찍은 브이로그를 보았다. 얼마나 발랄하던지! 그래서 나도 그 곳으로 향했고, 아무도 없는 기차역에서 신나서 행복해하며 마음껏 영상을 찍었다. 마치 나도 그 고등학생이 된 것 처럼.





물론 중간 중간, 다른 감정이 생기는 순간들도 있었다. 수학여행 온 중학생 무리를 마주쳤을 때, 그리고 식당에서 1인분을 시킬 때 아주머니의 물음이 그랬다. 오지 않는 버스 때문인지, 마음이 쭈그러든 탓인지 한 동안 다음 행선지를 정하지 못하고 방황하다, 문득 관광지가 아닌 책방으로 향했다.


춘천의 조용한 독립 서점 겸 카페, 서툰책방 / 유지혜 작가의 '조용한 흥분'


그 곳에서 나는 내가 왜 이 곳으로 떠나왔는지 그 이유를 다시 떠올렸다. 제제님의 글을 보며, 관광지가 아닌 이 곳으로 향하길 참 잘했다며 나 자신을 칭찬하고 다시 혼자만의 시간에 집중할 수 있었다.



서울을 떠나며 내가 진짜로 원했던 것은,
누구에게도 방해받지 않는 여유였다. (...)
누구를 위한 기쁨, 누구를 위한 여행인가.
우리 모두 각자에게 꼭 필요한 행복을 찾아야 한다.
그것이 세상의 기준과 전혀 다른 것이라 할 지라도.
- 유지혜, 조용한 흥분.


그리고 일기장에 이렇게 적었다. ‘오늘의 여행이 끝나고도 언제든, 어디서든 이런 시간을 가져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p.s. 글쓰면서 계속 혼자인게 자랑인가? 라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혼자 시간을 잘 보내는 사람이지만, 생존을 위한 인간의 본능이 발현되면 다시 외로움을 느끼는 그냥 사회적 동물이다. 


그렇지만 다시 생각해보니, ‘혼자가 되는 것’의 진짜 의미는 용기를 내는 데 있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가끔 남들이 뭐라고 하던, 자신의 마음에 귀 기울이고 하고 싶은 것을 해보는 용기라면, 나쁘지 않지 않을까?


그런 의미에서 어제의 나는, 어쩌면 여행이 아니라 용기를 내는 일이 필요했던 것 같다.



*2018년 9월 20일에 작성된 글입니다. 세 번째 목요일의글쓰기.

이전 03화 꿈을 향한 실천은 막연하지 않게.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