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러분 해피 썬데이!
모두들 햇살을 즐기며 fabulous 한 주말을 보내고 있길 바랄게요. 다름이 아니라 oo이의 생일 파티를(라스트 미닛이긴 하지만!) 하려고 정해서요.
x월 x칠 x시 장소 XX (알아요 우리가 좀 미친 거)
이 방에 있는 친구들이 oo이가 초대하고 싶은 친구들이었어요. 아이가 참석할 수 있는지 알려주세요. 여러분의 시간에 감사드리며 파티 날 볼 수 있으면 좋겠네요.
부부이름
Xoxo
얼마 전 첫째 아이 친구 생일 파티 초대 문자를 받았다.
단어와 문장, 심지어 행간에도 아이 엄마의 에너지가 넘실넘실 흘렀다. 참고로 생일 파티 장소는 두더지 잡기, 마리오카트, 농구공 넣기 등의 게임을 하는 아케이드 같은 곳으로 6살 또래의 아이들이라면 환장을 하는 곳이다. 고로, 알아요 우리가 좀 미친 거라는 말은 사실 찰떡같이 쓴 셈이다.
메시지 바로 뒤에는 참석여부를 투표처럼 하도록 올려두었는데, 투표 옵션도 재미있다.
완전 갑니다, 놓치지 않을 거예요 (파티 이모지)
슬프지만 못 가요. 이미 플랜이 있어요 (눈물 찔끔 이모지)
생일 파티날이 다가오기 며칠 전. 장소가 장소니만큼 시끄러워서 그곳에 머물고 싶지 않아 하는 부모들도 있을 거라는 점을 고려하였는지, 여자는 또 한 번의 투표를 실시했다.
난 다 내려놓고 도망간다 (peace out suckers!)
나는 함께 있으면서 아이들을 지켜보겠다 (도움이 많을수록 좋으니까요)
읽는 것만으로도 피식 웃음이 흘러나오는 대화방이었다. 나로서는 감히 적어보지도 못했을 단어들이 초대장에서 익살스러운 얼굴을 내밀었다. Happy Sunday! 까지는 쓸 수 있으려나.
아닐 수도 있다. 회사에서도 금요일이면 Happy Friday!로 시작하는 이메일을 받곤 하는데, 그때마다 너 정말 행복하니?라는 생각이 드니 말이다. 금요일이라 좋긴 한데 그게 해피까지 갈 일인가. 그나마 훈련된 사회성으로 동료가 메신저로 먼저 보내오면 그제야 정해진 답처럼 [해피 프라이데이]를 쓰곤 하니, 자연스레 쓸 수 있으려면 아직 더 훈련이 필요하다.
단톡방으로 초대되어 받은 매력적인 문자를 가만히 본다. 나라면 어땠을까. 어떻게 썼을까. 아이가 학교에 입학하고 나서 부쩍 느끼는 스스로의 찐따적인 성향 - 사람들 앞에서 곧잘 삐걱거려 고민인 나에겐, 우습지만 이런 문자가 연구의 대상이 되기도 한다.
주말 앞에 쓰인 fabulous. fab이라고 줄여 말하기도 하는 이 단어는 왠지 입에서 잘 떨어지지 않는다. 발음이 어려워서일까. 아무리 긍정적 표현이라지만 강하게 사용하면 존재 자체도 왠지 두드러지는 것 같아 꺼려진다. 그냥 없는 사람처럼, 물에 물탄 듯, 술에 술탄 듯한 단어가 적절할 것 같은데. 다들 주말 앞에는 꼭 어떤 형용사를 쓰고야 마니 필요하긴 하겠고, 굳이 쓴다면 아마 nice weekend? 정말 써도 그만, 안 써도 그만인 형용사다. 그렇다면 lovely weekend? 뭔가 애쓰는 느낌이지만, 이 정도는 쓸 수 있을지도 모르겠다.
Hugs and Kisses라는 뜻인 xoxo. 제일 처음 접한 건 미국 드라마 가십걸이었다. 당시에는 무슨 뜻인지도 모르겠는 알파벳의 조합을 치기 어린 십 대 여자아이들이 사춘기 냄새 폴폴 풍기며 문자를 끝내는 방식정도로 생각했다. 사실은 그게 아니라는 걸, 아이들이 신생아일적 만난 마더스그룹 사이에서 문자를 주고받으면서 알게 되었지만 말이다. 여리하고 예쁜 공주 같은 블레어가 아닌, 아줌마들도 문자를 맺을 때 쓸 수 있는 '마치는 인사' 같은 것이었다.
대망의 Peace out, Sucker! 사실 이 결정적인 한 문장에 영감을 받아 글을 쓰게 되었다. Sucker는 뭐라고 해야 하나. 이 봉들아? 이 어리석은 자들아? 짐작하자면 익살스러운 뜻으로, [난 간다 이것들아~] 정도로 쓰인 이 문장에 Sucker라는 단어를 쓸 생각을 추호도 하지 못했으며, 이 단어를 당당히, 그들의 정서에 맞게, 엄마들 단체 문자에 쓸 수 있는 그녀가 부러웠다.
유쾌한 성격을 가감 없이 드러내면서 밝은 에너지를 거리낌 없이 표출하는 모습이.
가끔 한국에서 아이를 낳고 키우는 엄마였다면. 하고 생각해 본다. 수다스럽고 오지랖 넓던 성격을 유지하며 다녔을까. 학생 때 많이 나대보았으니 단체문자 보내는 것을 두려워하지 않았을 수도 있고, 생일 파티 문자에 농담을 섞어 쓰는 일이야 식은 죽 먹기 정도인 푼수가 되어 있었을지도 모른다.
사람 사는 데가 다 같다고 하지만, 어쩐지 이방인으로 벽은 깨는 일이 어렵다. 물론 나이가 들어가며 변해버린 부분도 있지만, 영어를 한국어처럼 자연스레 하지 못하는 데에서 오는 한계가 나도 모르는 사이 성격에 적지 않은 영향을 미쳤다.
친구들과 xoxo를 쓰는 시간을 살았다면, 그걸 굳이 쓰거나, 쓰지 않는 결정에 대해 훨씬 편안하고 자연스러웠을지 모른다. 하지만 무슨 뜻인지 정확히 알고 있는 지금도, 사실은 그 진짜 뜻을 정확히 알고 있는 것이 아닌 것 같다. 친하지 않지만 어색하여 문자 끝에 별 의미 없이 붙일 수 있는 알파벳 조합, 써도 그만 안 써도 그만일 알파벳 조합을 아무 생각 없이 쓸 수 있는 의식의 흐름이 그들을 더 쉽고 단단하게 묶어주는 촉매제가 되는 것 같은 때.
머릿속에는 있지만 뼛속에는 없는 문화차이 앞에서 자연스럽지 않아 멈칫하고, 결국 멈추고, 삐걱거리기를 반복한다. 결국 혀끝에, 손가락 끝에 매달려 있던 단어를 차마 내뱉지 못하거나, 혹은 경황없이 무얼 말해야 할지 몰라 주절거리느라 내뱉어 버리는 실수가 싫어, 될 수 있으면 말을 섞으려 하지 않는다는 게 자꾸 뒤로 물러서는 사람이 된다. 어느새 좀 재미없고, 무뚝뚝하고, 데면데면한 사람이 되어버렸다.
아무리 내가 하고 싶은 말이 [나는 간다 이것들아~]라고 해도, 이렇게 문자를 분석한 덕에 Peace out, Sucker!라고 쓰는 걸 배웠다고 해도, 내가 정말 저 문장을 쓸 수 있을까는 다른 문제다. 쓰임이나 뉘앙스가 다를 확률도 높아 쓰고 지우고를 거듭하며 나만의 농담으로 바꿔볼 수도 있다. 그러다 고쳐 쓴 문장 또한 이들에게 농담으로 받아들여지기는 하는지, 의도한 대로 상대방에게 의미 전달이 되기는 할 것인지. 고민하다 결국은 [Yes] or [No]라는 심플한 선택지만 놓는 사람이 된다. 결국 우리가 알고 싶은 것은 [Yes][No]였으니까.
자꾸 애를 쓰다가, 인간적 여지를 주는 쪽을 결국 포기한다. 하려던 말을 다 삼켜버리고야 만다. 사실 위주의 소통으로, 성격이나 감정을 사사롭게 대화에 남기지 않으려는 건조함이 어떤 때는 편리했고, 어느 날은 문득 외로웠다.
사는 데 딱히 지장이 있는 건 아니지만 건조한 것보다는 좀 촉촉한 게 더 낫지 않나. 나이 먹다 보니 피부도 그렇고, 초코칩 쿠키도, 너와 내가 나누는 대화도, 그리고 우리의 관계도.
**[모국어는 차라리 침묵]은 목정원 작가님의 산문집 제목에서 가져왔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