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째 아이 학교에서 영재반 교육 설명회를 주최했다. 퇴근 후 저녁시간, 전체 학부모를 대상으로 직접 학교로 갈 수도 있고, 온라인으로도 참여가 가능했다.
이런 건 원래 영재반 학부모 대상으로 하는 거 아닌가. 아직 1학년이기도 하고, 굳이 듣는다면 온라인으로 참여하는 쪽이 있는 듯 없는 듯 집에서 듣기 딱 좋을 것만 같은데, 남편의 의견은 달랐다. 학교에 직접 가서 듣는 게 더 나을 것 같다고. 그럼 당신이 가라니 그건 또 아니란다. 아직 6살인 아들은 뭔지도 모르면서 마냥 엄마가 학교에 갔으면 좋겠단다.
학교에 갔다가 혹시라도 누구 엄마를 마주칠 것이며, 어떤 스몰토크를 해야 할 것인지. 생각만으로도 어색하여 눈이 질끈 감겼다. 무엇보다 아이에게서 [영재]라는 타이틀을 기대하는 김칫국 마시는 엄마로 보일까 봐 내심 걱정도 앞섰고(물론 타인의 시선 따위 신경 쓰지 않으면 그만일 걱정이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남편과 아이의 등쌀에 못 이겨 저녁만 후딱 먹고 학교로 향했다. 사실 저녁 뒤처리와 아이들 저녁 루틴을 남편이 책임진다는 조건이 매우 매력적이라 갔다는 편이 더 맞겠다.
학교에 들어서니 교장 선생님이 교문에서 학부모들을 맞이해 주었다. 영재반 선생님이 직접 준비하신 프레젠테이션은, 호주에서 교육받아본 적이 없던 내게 꽤 신선했다. 각 학년이 어떤 시험을 치르는지, 어떤 기준으로 영재를 선정하는지, 영재반 운영은 어떻게 되고 그 외 학교에서 어떤 프로그램을 운영하는지에 대한 설명으로 1시간은 빈틈없이 채워졌다.
처음 들어보는 시험 이름들로 잠시 혼미했으나, 이내 정신을 차리고 듣는다. 얼마 전 아이가 학교에서 아이패드로 문제 푸는 걸 했다고 하는데, 아마도 그게 테스트였을 수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초등학교 1학년이면 나 때는(?) 받아쓰기 정도로 쪽지 시험을 쳤지, 복합적인 테스트를 본 적은 없었던 것 같은데. 시대가 변했나? 아니 그것보다 호주 애들은 그냥 노는 거 아니었어?
마치 영재반 아이들의 학부모만 모아두고 할 법한 영재반에 대한 이야기를, 어쩐 일인지 학교는 전체 학부모에게 오픈하였다. 아무래도 소수에게만 정보를 공유한다는 점이 불공평하다고 생각했을 수도 있고, 모든 학부모에게 유익하다고 판단해서였는지도 모른다. 감사하게도 외국에서 온, 아는 사람 없고 정보 얻을 곳을 모르는 나 같은 초보 엄마에게는 학교 시스템에 대해 배우는 의미 있는 시간이 되었다.
프레젠테이션이 끝나고 학부모 질의응답시간이 있었다. 왜 호주 학부모들은 아이들 교육에 느슨할 것이라 생각했을까. 교육열은 조금 과장하여 한국 대치동(?) 못지않았다 (참고로 대치동 교육열을 실감해 본 적은 없다). 어떤 학부모는 엄마아빠가 모두 참석하였고, 어떤 아빠는 선생님의 프레젠테이션을 빠짐없이 핸드폰으로 녹음하고 있었다. 아이 교육과 직접 관련된 만큼 그들의 질문은 날카로웠고, 때로는 저런 걸 요구해도 될까 싶은 것들까지도 거리낌 없이 이야기하였다.
그중 아이들이 본 시험 성적을 알고 싶다는 한 학부모의 건의가 이목을 이끌었다.
그래. 그러고 보니 테스트 날짜도 언제 본다 만다 미리 공지도 해주지 않고, 이후 결과 역시 아무도 알지 못했다. 일 년에 두 번, 아이에 관한 리포트를 받고, 그 리포트를 바탕으로 담임 선생님과 상담하지만, 그때도 여전히 아이의 성적/점수를 알 수는 없었다.
내심 이 건의가 받아질 것인가? 나도 아이의 점수가 궁금한데 하는 마음으로 영재반 선생님의 대답을 기다리는데 교장 선생님이 나섰다.
점수는 학부모에게 알려드리지 않을 겁니다.
중요한 건 테스트를 통해
"우리가 아이들에 대해 무엇을 배웠느냐"죠.
아이들에 대해 알게 된 것들은
앞으로도 계속해서 공유하겠지만
아이가 몇 점 만점에 몇 점을 맞았느냐는
알려드릴 계획이 없습니다.
무엇보다 단호한 목소리였다.
점수를 알려주지 않을 거라고? 머리에 뿅망치를 맞은 것 같은 순간도 잠시, 아이가 시험을 보았다는 걸 알아차린 순간 아이의 점수가 어느 정도일까 가늠해 보려던 스스로가 부끄러워졌다.
나에게 점수란, 으레 공개되는 것이었다. 교실 뒤에 점수가 좌르르 나열되어 붙어 있기도 했고, 대학 때는 학번과 함께 시험 점수가 정경대 복도에 붙어 있기도 했다. 성적표는 점수와 함께 내 자리가 어디인지를 알려주는 손쉬운 지표였으며, 그 지표에 의지하여 높은 숫자와 낮을 숫자를, 너의 자리와 나의 자리를 끊임없이 비교했다. 시험을 보고 비교하는 일이 맨밥만 꾸역꾸역 먹는 일처럼 지겨웠으면서도, 익숙했다.
미리부터 아이에게 [점수]라는 개념을 알게 할 필요가 있을까.
물론 지금은 초등학교라 그럴 수도 있고, 고등학교에 가면 점수가 나온 성적표를 나눠줄 수도 있다(그건 그때 가서 배우는 걸로).
정말 부끄럽지만, 영재반을 뽑는다는 공지를 읽고 얼마 되지 않아 모지리 같은 남편과 나는, 저녁 식탁에서 아이에게 캐주얼한 척을 하며 '너네 반에서 누가 더 잘하는 것 같아?'라는 질문을 했다. 아이는 대수롭지 않듯 고민 없이 대답했다.
다들 잘하는데요?
다들 잘 읽고, 잘 쓰고, 잘 대답한다고. 도대체 누가 [더] 잘하는 걸 어떻게 아느냐는 듯, 아기 사슴 같은 눈빛으로 무슨 말이냐는 듯한 얼굴을 하고 우리를 쳐다본다.
비교 속에서 항상 스스로를 부족하다 느끼고, 좌절했다. 불행했고, 어두웠다. 비교하는 순간 인간은 불행해진다는 걸 잘 알면서도, 왜 아이에게 [비교]를 가장한 질문을 하였을까.
자칫하다간 사회나 시스템보다도, 아이가 온 세상이라 믿고 의지하는 우리 부부의 얄팍한 욕심이 아이를 비교의 늪으로 밀어버리는 힘찬 손이 될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아찔해졌다.
부모로서 아이의 성적과 행복에 대한 양가적 감정 사이를 왔다 갔다 하는 동안, 점수를 적은 성적표 같은 건 만들지 않을 것이라는 교장선생님의 단호한 신념이 고마웠다. 당분간은 내 아이에게 나도 어쩌지 못했던 보호막이 생긴 것만 같았다.
중요한 건
시험 점수가 아니라, 시험을 통해 우리가 아이에 대해 무엇을 알아가느냐 이니까.
오랜만에 다시 부모수업 밑줄 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