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와 더 잘 지내기 위해서
생각이 많다고 해서 무조건 내향인은 아니다. 반대로 내향인이라고 생각이 많은 것은 아닐 것이다.
그렇지만 나는 스스로를 생각이 많은 내향인으로 규정하곤 한다. 생각 많은 내향인으로서, 다가오는 30대에도 잘 살아가기 위해 몇 가지 생각과 믿음을 적어 보고자 한다.
어린 시절부터 생각이 많았다. 어릴 적에는 만화 영화 속 주인공들의 번외 편 이야기를 생각하며 공상을 많이 했다. 머리가 커져감에 따라 생각의 주제는 공상에서 벗어나 ‘자아’로 옮겨갔다. 나는 누구인지, 어떤 가치관을 가지고 살아야 하는지, 세상에서 어떤 의미를 찾아야 하는지 오래 생각하곤 했다.
고민을 하던 중, 고등학교 시절 배운 ‘윤리와 사상’에서 철학자들의 이론을 흥미롭게 공부했던 것을 떠올렸고, 철학이 자아 찾기의 답을 줄 수 있을 거라는 생각에 철학을 복수 전공했다. 철학가들이 인간을 어떻게 정의하고, 어떤 가치관을 중시했는지 알고 싶었다.
철학 수업 중에서는 그리스 고대 철학과 중국 고대 철학을 재밌게 공부했다. 기원전 몇 천년 전 사람들이 나누었던 덜 다듬어진 날 것의(raw) 논의도 재미있었고, 사람들이 고민하던 것은 먼 옛날이나 지금이나 크게 다르지 않은 것도 흥미로웠다.
비록 취업 준비 등으로 인해 심도 있는 철학적 토론을 요구하는 수업을 많이 듣지는 못했지만, 철학을 통해 나의 관심사가 사람들을 관찰하고, 사람들에 대해 생각하는 일임을 알게 되었다. 또한 철학자들의 이론이 상충하는 과정에서 사고의 저변을 풍성하게 넓히듯(정반합), 하나의 사실에만 매몰되지 말고 유연하게 살며 다양한 생각들을 이해하자는 마음가짐이 생겼다. 생각이 많았던 덕분에 얻게 된 귀한 배움이었다.
이렇듯 철학을 공부하며 나의 관심사와 가치관을 알게 되고 숨을 고를 수 있었다. 그렇지만 넓어진 외연에 비해서 아직 내실은 빈약한 부분들이 많았다.
스테디셀러가 된 ‘나는 생각이 너무 많아’라는 책을 보면 생각이 많은 사람들이 남들과 다르다는 이유로 고통받는 이야기가 나온다. 그들은 스스로를 유난스럽다고 생각하고, 남들과 잘 어울리지 못하는 경우들이 많다.
나의 미숙했던 20대도 위와 별반 다르지 않았다. 생각이 많았던 탓인지 타인과 비교하며 흔들리고, 자기 자신에게만 유독 엄격했다. 좋은 스펙을 가져야 한다는 압박감이 있었고, 남들의 부탁은 거절하지 못하고 착한 사람인 척했으나 정작 나를 과소평가하는 긴 밤도 있었다.
이제는 남들은 내게 크게 관심이 없다는 점을 알게 되고, 쓸데없는 고민을 할 바에 당장 내가 할 수 있는 일을 하자는 나만의 현실주의가 익숙해져서, 나와도 사이좋게 잘 지내고 있다. 이는 명상을 꾸준히 하며, 현재를 살고 내향적인 나를 수용하려는 노력들이 유효했던 것 같다. 나의 중심을 잡아 주고, 현재의 나를 관통하는 생각들을 적어본다. (명상에 대한 자세한 이야기는 여기에서 확인할 수 있다)
첫 번째 중심 잡기 :
과거와 미래가 아닌, 현재에 살기
과거는 후회로 가득하고, 미래는 불확실 투성이다. 과거와 미래에 잠식되고 고민하기 보다는 현재에 살며, 당장 내가 할 수 있는 것에 집중해야 한다. 거창하지 않아도 된다. 현재를 충분히 느끼는 것으로 충분하다. 지금 내게 불어오는 바람을 느끼고, 내 주변에 얼마나 다양한 색깔들이 있는지 생각해보는 것만으로도 현재에 집중하게 된다. 또 물을 마시고, 샤워를 하고, 운동을 하며 땀을 흘린다. 감정은 수용성이라는 인상적인 표현이 있는데, 정말로 땀을 흘리고 샤워를 하면 우울한 감정은 어느새 조금씩 개선되어 있다.
최근 브로콜리 너마저의 신곡을 들으며 무릎을 쳤다. ‘바른생활’이라는 제목인데, 현재에 집중하자는 가사가 정말 마음에 들었다. 좋은 가사를 공유한다.
아무것도 하지 못하고 방안에만 있었지. 정확히 말하자면 모든 것을 피해 도망가는 마음으로. 입이 차마 떨어지지 않던 날들 답답했던 긴 시간 동안. 나는 나를 돌보지 않음으로 무언가를 말하려 했지. (중략)
"밥을 잘 먹고 잠을 잘 자자. 생각을 하지 말고 생활을 하자. 물을 마시고 청소를 하자.
그냥 걸어가다 보면 잊혀지는 것도 있어 아름다운 풍경도 또다시 나타날 거야"
브로콜리 너마저 - 바른생활 가사 中-
두 번째 중심 잡기:
완벽하지 않은 나를 수용하기
무조건 잘하려고 했고, 모두에게 인정받고 싶던 20대의 마음은 내려놓았다. 나는 슈퍼맨이 아니기에 한계를 인정하고 내가 노력한 작은 성과들을 인정하려고 한다.
재미있게도 이는 브랜딩/마케팅과 유사한 부분이 있다. 사랑받는 제품을 만들기 위해서는 타깃이 명확하고 촘촘해야 한다. 모두에게 사랑받는 완벽한 제품이 있다면 사실 아무에게도 필요하지 않은 제품일 것이다. 이처럼 모두의 호감을 받는 것은 불가능할 뿐더러, 이는 결국 아무에게도 호감을 받지 않겠다는 것과 동일하다.
또한 브랜딩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앞단의 ‘기획’이다. 기획을 잘 못하면 아무리 실행을 열심히 해도 한계에 봉착한다. 컨셉을 잘 잡아야 하고 내가 전달하려는 메시지를 충분히 디벨롭하고, 타깃에 대해서도 충분히 숙지해야 한다. 나는 내가 생각이 많은 것을 앞단의 ‘기획’을 잘 하기 위한 과정으로 생각하기로 했다. 직접 우당탕탕 많은 경험을 해보면서 방향을 찾아가는 외향형의 에너지는 부족하기 때문에, 신중하고 전략적으로 기획하여, 올바르게 방향을 잡아가려 한다.
앞으로도 생각이 많은 내향인으로서 잘 살아가기 위해 노력을 기울일 것이다. 지난 30년 간의 경험들이 31살의 나를 만들었듯, 다가올 경험을 통해 나를 발견하는 쪽에 가까울 것이다.
이 모든 이야기들은 결국 나를 더 잘 알기 위함이다. 아직도 새로운 나의 모습을 발견하거나, 내가 확신하던 고정관념이 깨지는 순간이 오면 성장하는 느낌을 받는다. 다가오는 30대에도 더 성장할 수 있을까? 유연하지만 단단한 어른이 되고 싶다.
image by @robineggpi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