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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kyleap Apr 05. 2021

홀로서기에 대하여

마녀 배달부 키키를 보고

넷플릭스로 마녀 배달부 키키를 보았다. 나름 믿고 보는 지브리 스튜디오 작품이라 별 생각 없이 봤는데, 의외로 홀로서기/자립에 대한 심도 있는 이야기들이 많아 집중하며 감상했다.



1. 홀로서기는 어렵다. (사회 초년생 잔혹사)

마녀 배달부 키키는 13살이 되면 독립해야 하는 마녀의 룰에 따라 키키가 새로운 마을에 정착하게 되는 과정을 다룬 애니메이션이다.

키키는 빗자루를 타고 나는 재능을 통해 배달부(요즘으로 치면 택배 기사님/퀵서비스 기사님 정도일 것이다)로서 새 마을에 정착하게 되는데, 영화는 홀로서기/자립이 얼마나 어려운지를 여실하게 보여준다. 특히 잔혹한 사회초년생 적응기 같은 부분들이 많았는데, 키키가 처음으로 받게 되는 배달 미션 3가지는 초심자에게는 난도가 높은 미션들이라 보면서 안쓰럽기도 했다.


 - 첫 배달 중 배달물 파손 사고
 - 본인 몸무게만큼 무거운 짐 배달
 - 고객의 문제로 배달 일정 지연 및 배달 중 폭풍우


또한 성장 영화답게 얄궂게도 키키의 유일한 자존감 포인트인 마법 능력도 사라져 가는 위기를 만들어 키키의 자존감을 바닥으로 떨어뜨리고 슬럼프에 빠뜨린다. (영화에서 키키는 마법을 하지 못하게 되면 자기는 쓸모없는 존재가 된다고 직접 언급한다.) 그리고는 키키가 가장 자존감이 낮고 힘이 없을 때 하필 이야기는 절정에 다다르고, 직접 키키에게 문제를 해결하도록 코너로 몰아세운다. 키키는 나름 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 주인공 치히로와는 다른 결이지만 거친 모험을 겪으며 성장해간다.


키키가 마주치는 문제들은 키키의 지혜로운 대처 능력과 함께, 주변 사람들의 도움 덕에 수월하게 해결하고 홀로서기를 한다. 영화를 보며 가장 크게 들었던 생각은 홀로서기라는 거창한 말 뒤에 사실 얼마나 많은 주변 사람들의 이해와 용인이 있었는가 하는 것이었다. 나 혼자 끙끙대며 그럴싸하게 홀로서기를 하며 헤쳐왔겠거니 생각하지만 사실은 수많은 조력자들이 있었다는 걸 기억해야겠다.


2. 슬럼프를 극복하기 위하여

이 영화에서 가장 유명한 부분 중 하나는 슬럼프에 대한 장면일 것이다. 키키는 어린 시절부터 두려움 1도 없이 잘 날았는데, 새로운 마을에 적응하는 과정에서 스트레스를 많이 받아(?) 잘 날지 못하게 되고 자존감이 매우 낮아진다. 이런 상황에서 화가이자 배달 손님이었던 조력자 우르슬라와의 대화를 통해 문제의 해결 방향을 찾는다.


우르슬라: 마법하고 그림은 비슷하네. 나도 안 그려질 때가 종종 있어.
키키: 정말요? 그럴 땐 어떻게 해요? 사실 전에는 아무 생각을 안 해도 날았는데 어떻게 해야 날았는지 지금은 전혀 모르겠어요.
우르슬라: 그럴 때는 미친 듯이 그릴 수밖에 없어. 계속 그리고 또 그려야지.
키키: 그래도 날 수 없으면 어떡하죠?
우르슬라: 그리는 걸 포기해, 산책이나 경치 구경, 아니면 낮잠 자거나 아무것도 하지 마.
그러다가 갑자기 그림이 그리고 싶어지지.



자존감이 낮아지고 슬럼프가 올 때 쉽게 할 수 있는 2가지의 해결책을 우르슬라는 제시한다. 우선 단기적으로는 자기를 몰아세우고 열심히 더 해보라는 것. 하지만 그 방법이 잘 통하지 않을 때에는, 아예 휴식을 취하고 내려놓으라는 것. 특히 이 방법은 슬럼프가 올 때면 차라리 열정이 차오르고 마음이 다시 말랑말랑해질 때까지 자기를 돌보는 시간을 가지라는 것으로 들린다. 22년 전에 나온 애니메이션이지만 요즘도 적용될 탁월한 솔루션인 것 같다. 열심히 하라는 말보다는 가끔 하지 말라는 말이 더 위로가 되듯이 말이다.


3. 괜찮아 지나가는 바람이니까

조력자인 이웃 할머니의 대사. 듣는 순간 너무 좋았다.


나 역시 삼십 년을 살면서 홀로 서는 순간들을 많이 겪었고, 앞으로도 계속 겪을 예정이다. 사회 초년생 시절을 지나면서 좀 더 성숙하게 사회 생활을 하는 법을 배웠고, 자취방을 구해 작게나마 자립을 하고 내 공간을 챙기는 법을 배웠다.

 

하지만 다가올 삼심 대를 생각하면 이 정도는 준비 운동처럼 느껴진다. 앞으로도 홀로서기가 필요한 순간에서 흔들리는 순간들이 많을 것이고, 그 순간들은 아마 언제나 그랬듯 잔혹하고 쉽지 않을 예정이다. 슬럼프도 올 테고 우왕좌왕할 것이다.


하지만 그동안 습득해온 경험과 지식들, 거기에 좋은 조력자들의 도움들이 있을 테니, 힘든 것은 언젠가 언젠가 지나갈 것임을 믿는 내가 되길 바란다. 마녀 배달부 키키에 등장하는 대사처럼, 힘든 순간들은 ‘모두 지나가는 바람 같을 것일 테니’


홀로서기란 혼자 어두운 터널을 지나는 것 같지만, 사실 앞 뒤 옆에 조력자들의 도움이 있음을.

image by @robineggpi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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