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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빛날 Jul 08. 2024

눈 떠 보니 가드너(gardener)

가드너(gardener):원예사

잡초와 잔디를 구분 못합니다.

꽃인지 풀인지 알지 못합니다.

아는 꽃은 개나리, 장미, 국화....


펜션 마당이 있고 마당과 건물 주위 울타리가 있습니다.

울타리라고 말하기 어렵습니다. 꽃과 나무로 둘러싸여 있습니다.

강으로 내려가는 길에는 영산홍이 만 그루 넘게 있습니다.

작년 가을부터 올봄까지 전문가에 의뢰해서 꽃과 나무를 심으셨습니다.

물론 펜션 사장님께서 비용을 지불하신 겁니다.

겨울에 이사를 와서 잘 몰랐는데 봄이 되니 꽃들이 피기 시작합니다. 정말 이쁩니다.

구경 잘하고 지냈습니다. 감탄을 하며 지냈습니다.

사장님은 펜션에 거주하지 않으십니다.

주말에 오십니다. 오시면 꽃에 물을 주고, 많이 자란 나무에는 가지치기도 하십니다.

꽃밭 가장 가까이 거주하는 입주민인 제가 제일 많이 혜택을 누립니다.

by 빛날 (4월 그날의 사진. 실물이 나은데. 제대로 못 살려 미안.)


날이 더워지고 비가 많이 오면서 화단에 변화가 생깁니다.

펜션 전체가 울창해집니다. 초록의 빛으로.....

잡초가..... 잡초가.......

꽃도 많이 피고 집니다.

화단이 있으면 사랑과 관심. 정성이 필요하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비가 오지 않아 너무 더워 말라죽는 나무와 꽃을 보니 안타깝습니다.

가끔 제가 물을 주기도 했지만 새로운 직장 생활에 적응하기 바쁘고 주말에는 가족들을 만나러 가면서 주변에 관심을 많이 두지 못했습니다.

펜션 주위 대지가 넓습니다.

전체적으로 물을 주고 한 바퀴 돌고 나면 1시간 훌쩍 지나갑니다.

처음에는 사장님 탓을 했습니다.

'관리를 못하시구나. 관리가 어렵겠는데? 어떻게 감당하시려고. 돈이 아깝다......'

뭐 그런...


처음 집 보러 왔을 때 사장님께서 하신 말씀이 있습니다.

"영산홍 만 그루를 심었습니다. 이곳을 지나는 지역 주민. 혹은 지나는 차들. 사람들. 그리고 펜션 오시는 손님들이 보면 참 좋겠지요"

자랑스러움과 기쁨이 가득 묻어 있습니다.


한 달 전 꽃과 나무를 잘 아시고 사랑으로 가꾸시는 분이 펜션에 오신 적 있으십니다.

잡초가 풍성한 화단을 보고 깜짝 놀라시며 호미가 있냐고 하십니다.

저를 포함해서 세 명이 있었는데 우리 30분만 같이 잡초를 뽑자고 하십니다.

목적지와 제가 사는 곳이 가까워 잠시 들렀는데 갑자기 잡초 뽑기가 시작되었습니다.

가위도 가져오라고 하시면서 제가 무엇을 해야 할지 가르쳐 주십니다.

함께 따라온 지인은 영문도 모르고 그냥 호미를 들었습니다.

꽃밭이 다시 모양을 찾았습니다.


이 일로 정신이 들었습니다.

내가 살고 있는 곳. 가장 많이 꽃을 보고 혜택을 누린 사람이 접니다.

말라죽어 가고 있는 꽃과 나무를 모른 척 외면했습니다.

미안합니다.

화단을 잘 가꾸지 못하지만, 할 수 있는 부분을 하기로 합니다.


그때 잡초 뽑기를 하자고 하신 분이 하신 말씀이 있습니다.

"2년 차, 9년 차, 몇 연차 가드너라고 말들을 한다. 그만큼 준비하고 공부한 사람들인데 자기는 눈 떠 보니 가드너가 된 거야."

by 빛날 ( 눈 떠 보니 가드너라서. 이제라도...)


너무 부족하고 모르는 게 많지만 조금씩 알아갑니다.

수레국화, 낮달맞이, 수련. 닭벼슬패랭이, 매발톱, 백합, 데이지, 마편초, 바늘꽃 등등

참 아름답습니다.

꽃과 나무를 심은 분, 정신이 들게 말씀을 해주고 잡초를 함께 뽑은 분, 꽃과 나무.

모두의 마음이 꽃처럼 아름답습니다.

by 빛날 ( 오늘 마주한 마편초와 수련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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