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을 따는 박스가 집마다 가득 쌓여있고 서울 대전 대구 부산 지역에 사는 자녀들이 감을 따기 위해 산청으로 모여들었습니다.
평소 출근하는 길에 사람을 구경하기 어렵습니다. 논이나 밭에 가끔 한 두 분을 만났습니다. 이번주는 마당이나 밭, 산, 감나무가 있는 곳에서 어렵지 않게 감을 따고 있는 분들을 봅니다. 앞치마를 두르고 빠른 속도로 손이 움직입니다. 주머니 속으로 속속 감이 들어갑니다. 집마다 트럭과 함께 노란 박스가 보입니다. 산청에 곶감이 유명한데 이 시즌에 감농사를 짓는 분들은 몸과 마음의 무장을 하는 것 같습니다. 서리가 내리기 전에 감을 따야 하기에 짧은 기간에 속도전입니다. 자세한 공정은 알지 못합니다. 출퇴근길에 매일 변화가 있는 것을 보고 있습니다. 풍성하게 주렁주렁 익어가는 감이 나무에서 조금씩 사라지더니 어느 날은 감 껍데기가 깎여서 고운 빛깔로 줄에 매달려 있습니다. 며칠 사이에 일어난 일입니다.
제가 보지 못한 과정에서 얼마나 많은 분들이 분주히 움직였을까요?
천천히 느긋하게 감을 따면 좋을 텐데 충분히 크고 잘 익을 때까지 기다림이 필요하고 서리가 내리기 전에 따야 하니 정말 온몸과 마음을 불사르는 것 같습니다. 때가 있는 거겠지요.
40이 넘어서도 해맑다는 소리를 듣던 저도 이제는 철이 들어야겠다는 생각을 합니다. 그렇다고 마냥 어린아이처럼 순수하지 않습니다. 분위기 파악을 전혀 못하는 사람도 아닌 것 같은데요. 죽을 때까지 해맑게 살고 싶다는 마음이 있었는데 정말 철없는 생각인 것 같습니다. 철이 없다는 것은 책임을 지고 싶지 않다는 의미도 있다고 합니다. 본인은 편할지 몰라도 주변분들이 피곤했을 겁니다. 분위기 메이커 역할을 할 때도 있으니 좋은 점도 있었습니다.
「철없다」의 국어사전의 뜻을 보니 <사리를 분별한 만한 지각이 없다>고 하고
「철들다」의 뜻도 같이 찾아보니 <사리를 분별하여 판단하는 힘이 생기다>입니다.
철들기 위한 방법을 알 수 있을까 해서 온라인으로 검색을 해봤더니 동영상이 뜹니다. 정말 없는 게 없는 세상입니다. 저처럼 철들고 싶어 하는 사람이 있나 봅니다.
「철」은 자연 현상에 따라 일 년을 구분하는 계절, 어떤 일을 하기에 좋은 시기나 때의 의미도 있는데요.
때가 되었을 때 각각의 색을 나타냅니다. 곶감을 준비하려고 껍질을 벗겨놓은 감의 빛깔이 참 아름답습니다.
50이라는 나이는 어떤 색이어야 할까요? 20대에 저를 만났던 친구들은 빨강이라고 표현하고 아주 가깝게 지낸 사람들은 연두, 노랑, 하늘색이 생각난다고 했는데요.
자연은 때에 따라 색이 달라집니다. 사람도 나이에 따라 장소에 따라 색이 다른 것 같습니다.
지금, 나는 어떤 때깔(눈에 선뜻 드러나 비치는 맵시나 빛깔)일까요?
50은 하늘의 뜻을 아는 나이, 지천명(知天命)라고 했는데 알듯 말듯합니다.
주황의 감을 보니 아름답습니다. 높은 가을 하늘의 하늘색과 흰색의 구름이 예쁘고 맑습니다. 연두와 초록의 나무와 잎, 백일홍, 달리아, 메리골드등 꽃들의 색이 찬란합니다. 아름다운 이 자연의 많은 색을 다 담을 수 있는 사람이 되고 싶습니다. 역시 철없는 사람다운 생각일까요?
이때까지 하늘, 연두, 초록, 빨강의 색을 냈었다면 지금부터는 모든 색을 다 담을 수 있는 빛나는 백지의 때깔이 되어보면 좋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