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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빛날 Nov 04. 2024

지리산 트래킹 뒤풀이로 고구마 캐기

11월의 가을이라 찬바람이 며칠 이어졌는데 따뜻한 태양이 웃는 얼굴을 보여줍니다. 주말 지리산  트래킹을 다녀왔습니다. 지리산의 옛 이름이 두류산이었다네요. 지리산 중산리 계곡을 따라 설치된 탐방로가 중산두류생태탐방로입니다.

입구에 들어서니 색색의 바람개비가 돌아가고 있습니다.

사람마다 색이 있는데 세상에서 나는 어떤 색을 내며 살아가는가란 생각이 듭니다.

밝은 하늘은 품은 하늘색으로 살면 좋겠다는 소망을 품어 봅니다.

단풍이 들어가고 있습니다.

용소계곡으로 들어서니 계곡물소리가 맑습니다. 폭포의 세찬 소리에서 잔잔한 계곡을 지나면 맑고 깨끗합니다. 귀가 정화가 되고 뇌도 정화가 됩니다. 마음도 같이 자연 속에 함께 머뭅니다.

높고 청명한 가을 하늘입니다. 하늘 향해 뻗어있는 나뭇가지도 색색의 잎들도 가을의 시간에 흘러가고 있습니다.


 지리산 중산 산악관광센터에서 주차를 하고 올라갔습니다. 내려오면서 함께 간 분들과 탐방로 중간에 위치한 카페에 들러 아이스아메리카노로 땀을 식힙니다.

동행한 분 중에 한 분이 제게 물어봅니다.

"먼저 내려가서 할 일이 있는데 올라온 길 말고 빨리 내려가는 길이 있어?"

"저도 처음 와 봤는데요."

"이 동네 사니까 아는 줄 알았지."


지리산은 전라남도, 전라북도, 경산 남도 3개 도의 경계선을 역할을 하는 산인데요. 산청에 산다고 하니 넓은 지리산 자락 어딘가가 다 동네가 되었습니다.

바위 아래 작고 큰 돌들에 초록의 이끼가 소복합니다. 갑자기 겨울왕국의 트롤들이 떠오릅니다.

이 친구들이 밤이면 데구루루 굴러 트롤로 변신을 할까요?

상상이 현실이 된다면, 현실이 상상이 된다면 정말 재미있겠습니다.

점심을 먹고 올라갔는데 놀다가 저녁까지 먹고 왔습니다.

트래킹 소요 시간은 1시간 30분 정도밖에 되지 않았습니다.  

집으로 돌아오니 저녁 6시입니다. 깜깜합니다.

도시에서는 새로운 저녁의 시작이라면 시골은 하루를 마감하는 시간입니다.

지리산으로 가기 전, 아침에 고구마 캐는 방법을 펜션 사장님께 배웠습니다.

샘플로 하나의 뿌리를 찾아 캐어 보았습니다.

그냥 막 캐면 고구마가 상처 입을 수 있으니 뿌리 주변으로 살살 호미로 땅을 파야 한다고 합니다.

전투적인 기질이 좀 있습니다. 직진 본능에 심어놓은 고구마 훼손을 예상하셨는지 방법을 가르쳐주십니다.

바쁜 일이 있어 사장님은 가셨는데 가시기 전에 하신 말씀이 있습니다.

주변에 멧돼지를 본 적이 있는데 고구마 냄새를 맡고 올 수 있으니 오늘 고구마를 다 캐라고 당부를 하셨어요. 바쁘면 할 일을 내일로 미루는 게으른 입주자의 성향을 알고 계셨나 봅니다.

누가 보면 고구마 밭으로 생각할 수 있겠는데요. 죄송합니다. 5~6의 고구마 줄기 얻어 심었습니다.

농사라는 것을 옆에서 지켜본 적도, 지어 본 적도 없는 인생이라 땅에 심고 가꾸는 모든 행위가 새롭고 신선합니다. 고구마란 작물 역시 처음 심어 보고 거두는 겁니다.

멧돼지를 본 적도 없고 흔적도 보지 못했지만 잘 키운 고구마를 멧돼지 먹이로 줄 수 없다는 마음에 고구마를 캡니다. 다음날 할 일도 있기에 오늘이 지나기 전에 할 일 하기로 했습니다. 주변이 정말 깜깜합니다. 등산용 헤드라이트 머리에 끼고 플래시도 들고 뒷마당 작은 텃밭으로 갔습니다. 쪼그리고 앉아 호미질을 하는데 등뒤에 뭐가 나타날 것 같은 무서움이 스멀스멀 올라옵니다. 카페 뒷마당이라 카페에 불을 환하게 켜고 주변을 밝힙니다. 10분도 걸리지 않았습니다. 척박한 땅이라 고구마가 풍성할 줄 알았습니다. 고구마는 비료를 많이 주지 않고 척박한 땅에 더 잘 자란다고 이야기를 들었거든요. 심는 시기가 많이 늦기도 했습니다. 잎사귀가 아주 주렁주렁 많아서 대단한 수확을 생각했나 봅니다. 생각만큼 나오지 않았지만 낮에 이삭 줍기를 하면 더 나올 수도 있겠지요.

물 주러 갈 때마다 고맙고 사랑한다는 인사는 열심히 했습니다.

덕분에 이렇게 수확을 한 것 같습니다.

처음 경험하는 것들이 많은 시골살이가 참 재미있습니다.

 



 연재하는 날이라 아침 일찍 눈이 떠졌습니다. 벼락치기입니다. 잠옷 바람으로 글을 쓰면서 책상 옆 거울을 보는데 헝클어진 머리에 앞머리는 이마를 다 가리고 커다란 뿔테 안경(돋보기)을 쓴 여자가 살짝 웃고 있습니다. 외모는 영화 <인사이드아웃>의 '슬픔이'인데 눈과 입은 웃고 있으니 '기쁨이'가 한 얼굴에 있습니다.

 어제 하루가 그러합니다. 재미있는 하루를 마감하고 왔더니 해야 할 일이 있습니다. 깜깜한 밤 털모자를 눌러쓰고 헤드라이트를 머리에 끼고 호미질을 하는 여자. 호러와 공포를 경험하는 슬픔, 그리고 수확의 기쁨.

인생, 참 다양하고 재미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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