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슬로 공항의 활주로는 비에 젖어 있었다. 잿빛 하늘 아래 서 있는 비행기들은 마치 바다 위에 떠 있는 배처럼 조용히 숨을 고르고 있었다. 베르겐으로 향하는 작은 국내선 항공기에 몸을 싣고 창가에 앉았다. 노르웨이의 깊은 숲을 내려다보고 싶었다. 빙하가 깎아 만든 피오르와 호수, 침엽수림의 짙은 녹색을 눈에 담고 싶었다.
그러나 이륙한 지 얼마 되지 않아 비행기는 곧장 구름 속으로 들어갔다. 창밖은 순식간에 하얀 안개로 가득 찼고,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숲도, 강도, 마을도 사라졌다. 마치 세상이 통째로 지워진 듯했다.
잠시 뒤, 기체가 한 번 더 고도를 올리자 갑자기 눈앞이 환해졌다. 구름 위로 올라선 것이다. 그곳에는 눈부신 태양이 떠 있었다. 아래에서는 분명 비가 내리고 있었을 텐데, 이곳은 한낮처럼 밝았다.
그 순간 깨달았다. 흐리고 음습한 날씨의 원인은 태양의 부재가 아니라, 태양을 가리는 구름이라는 사실을. 구름은 실체가 아니다. 머물지 않는다. 바람을 타고 이동하고, 생겼다가 흩어지고, 어느새 다른 형상을 취한다. 그러나 태양은 늘 같은 자리에서 빛난다.
우리 삶도 그러하지 않을까. 우리는 늘 축복받은 존재로 이 세상에 놓여 있는 것은 아닐까. 다만 그 축복을 가리는 구름을 ‘현실’이라 부르고, ‘불행’이라 부르고, ‘좌절’이라 부르는 것은 아닐까.
딸의 대학 합격 소식에 하루 종일 기뻐하던 날이 있었다. 기쁨이 가슴을 가득 채웠다. 그러나 그 기쁨 또한 오래 머물지는 않았다. 학교 근처 타지로 보내는 여러 새로운 걱정과 염려가 다시 구름처럼 하늘을 덮었다.
사랑과 사회생활 역시 그랬다. 청춘의 뜨겁고 불완전한 사랑, 헤어짐 뒤의 상실감, 누군가를 향한 질투, 인정받고 싶은 욕심과 과시욕, 이기고 싶은 승부욕. 그것들은 모두 우리를 크게 웃게 하고, 크게 흔들리게 만든다. 때로는 삶 전체를 규정하는 것처럼 느껴진다. 하지만 시간이 조금만 지나면, 그것들은 옅어지고 흩어진다.
가족 간의 오래된 관습과 오해도 그렇다. 작은 말 한마디가 마음을 어둡게 만들고, 기억은 자주 과장되며, 감정은 사실보다 더 무겁게 쌓인다. 그러나 어느 날 문득 돌아보면, 그 모든 감정 위에 여전히 관계라는 태양이 떠 있음을 알게 된다. 우리는 여전히 함께 숨 쉬고 있고, 여전히 서로의 삶 안에 있다.
감정은 중요하다. 그것이 우리를 인간답게 만든다. 비가 오지 않으면 숲은 더 깊어지지 않는다. 그러나 비가 내린다고 해서 태양이 사라진 것은 아니다. 구름은 하늘을 잠시 빌릴 뿐, 하늘의 주인은 아니다.
비행기가 베르겐 공항에 착륙했을 때, 아래는 여전히 젖어 있었다. 숲은 안갯속에 잠겨 있었고, 공기는 축축했다. 그러나 나는 알고 있었다. 저 두꺼운 구름 위 어딘가에 태양은 여전히 떠 있다는 사실을. 어쩌면 우리가 해야 할 일은 구름을 없애려 애쓰는 것이 아니라, 그것이 잠시 머무는 형상임을 기억하는 일일 것이다.
노르웨이의 비 내리는 숲 위에도 해는 떠 있다. 그리고 우리 또한, 구름 아래에서 흔들리며 살고 있을 뿐, 이미 찬란한 삶 한가운데에 서 있는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