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언가를 배운다는 건
그래도 쓸모없진 않은 거랍니다.
곰곰이 생각해 보면
물건을 잃어버리는 것,
할 일을 잊어버리는 건
주어진 환경에 집중을
잘하는 것 같기도 합니다.
새로운 것에 대한 호기심 때문에
기존 것을 잊고 새로운 것에
열정을 가졌던 건 아닐까?
스스로를 미화해 보기도 합니다.
중학교에 진학하면서
다른 사람보다 조금은
잘한다고 느꼈던 부분은
언어, 외국어영역이었는데요.
영어는 중학교에서 처음 배웠는데
생각보다 빠른 습득을 했거든요.
초등학교에서 부진한 것들을
바로잡고 나서는
따로 학원을 다니진 않았음에도
학교에선 친구들이 영어만 잘하는
커다란 고양이라는 소리를 들었습니다.
그 말은 즉슨 다른 건
그다지 별 볼 일 없다는 얘기지만요.
어쩌다 보니
2006년 수능영어에서
세 문제만 틀렸는데요.
막판에 고민하다
고친 문제가 모두 맞아서
얼마나 다행이게요.
영어에서만 상위 4퍼센트
안에 들었을 정도였으니 말이죠.
곰곰이 돌이켜보면
나는 영어공부만 했기에
영어만 잘했던 것 같다는 생각도 들어요.
다른 공부할 시간에 영어 공부만 했으니...
다른 걸 잘 할 수는 없는 게 정답인데 말이죠.
수학 과학 같은 관심 없는 과목들의
한번 본 문제집은
웬만해선 다시 보진 않았고요.
영어는 한번 본 문제집도
두 번, 세 번 보고 나서야 버렸거든요.
그러한 습관이 몸에 배었는지
전공인 일본어도,
교양으로 들었던 중국어도
교재를 두 번 세 번 보면서 익히면서
나름 도움이 되었던 것 같네요.
사실 외우기보다는
이해가 안 되어도
그냥 보고 보고 또 본 게
도움이 되었건 것 같기도
하지만 말입니다.
그러다 보니 언어를
배우는 게 재밌어서 그랬을까요?
아주 다양한 언어를 배웠었네요.
그것은 마치 언어 콜렉터 느낌이 아닐까요.
물론, 그 열정은 갑자기 타오르고
급격히 식곤 했습니다.
이걸 했었나 하는 생각이 들 정도로요.
영어 공부하다 질려서 일본어를,
일본어 공부하다 질려서 중국어를,
그리고 하다 하다
독일어도 공부를 했는데요.
하지만 독일어는
어려워서 잠시 멈춘 상태입니다.
독일어 공부하다 보니
영어가 쉬울 정도였거든요.
그 와중 잠깐 러시아어
한번 배워 본 적도 있거든요?
그건 정말 헬난이도였어요.
울면서 알파벳 외우고,
토하면서 몇 과 나갔다가
깔끔하게 책을 덮고
안녕을 고했어요.
무슨 부귀영화를 얻자고
안 외워지는 러시아어를
배우냐면서 말이죠.
이런저런 외국어에 관심을 갖다 보니
외국인에게 한국어를 가르치는
한국어교원자격증에도
관심을 갖게 되었는데요.
어느새 결제를 하고
어느새 실습과 학위를 마치고,
어쩌다 보니 자격증이
손에 들려 있었던 마법이 펼쳐졌어요.
그 과정 동안 한국어 교사가
되겠다는 생각은
다른 관심사로 옮겨 가게 되면서
그냥 자격증만 소유한 사람이
되었다는 슬픈 전설이 생겼어요.
그래도 지나고 보면
이것저것 배웠던 외국어가
마냥 머릿속에만 있는 건 아니었어요.
취업에 어느 정도
도움을 받긴 한 것 같더라고요.
2학년 때인가?
일문과 동기들 열댓 명이
갑자기 교양으로 초급중국어를
듣는다길래 얼결에
저도 교양으로 수강을 하게 되었습니다.
저는 이왕 시작했으니
그냥 하자는 주의자였던 저는
의외로 진도를 차근차근
따라가곤 했습니다.
같이 듣고 있던 동기들이
하나둘씩 포기하면서
본의 아니게 전
초급중국어에서 A+를 받게 되었어요.
같이 초급중국어를 듣자던 동기는
기말고사에 일본어로
스미마셍이라고 적고
제일 먼저 퇴장한 기억이 있어요.
잘 지내나 모르겠네요.
그렇게 수업을 들으면서
중국어에 관심이 생기게 되었습니다.
학교 프로그램을 찾아보니
전공에 상관없이 학교에서 보내주는
4주 어학연수를 다녀올 수 있었습니다.
인터뷰를 마치고 선정이 되어
처음으로 어학연수란 걸
다녀오게 되었습니다.
솔직히 모든 수업 프로그램에
열심히 참여한 건 아니었어요.
이미 거기서 짜게 관심이
식어가는 중이었거든요.
그래도 강제적으로
공부를 하고 노출이 되다 보니
중국어를 약간이나마
말할 수 있게 되었어요.
역시 언어는 반복과 노출이란 걸
알게 되는 순간이었습니다.
덕분에 인천공항 면세품인도장에서
몇 개월간 일을 할 수 있었어요.
꾸준히 공부했던 중국어가
현업에서 쓰일 줄은 몰랐거든요.
평생 전공을 살려 일할 수 있을까?
라는 생각 저만 하는 건 아니죠?
그런 생각을 하다가
어쩌다 보니 어학원에서
잠시 일할 수 있었어요.
짧은 기간이었지만
누군가를 가르친다는
경험을 할 수 있다는 게
꽤 값진 일이란 것을 느꼈습니다.
그때 만들어 놓은 자료를 통해
약 1년 정도?
일본어 입문 무료 강의를 했던 적이 있어요.
그 과정에서 많은 좋은 사람들을
만날 수 있었어요.
마지막 수업에 고마웠다는
장문의 문자와 선물에
감동을 받았으니까요.
이런 걸 보면 가끔은,
아주 가끔은 나의 선택이
후회나, 실패로
끝나지 않은 적도 있다는
생각이 듭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