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파사나 명상 센터 체험기 3
명상센터에 도착하면 우선 귀중품과 헨드폰을 맡기고 숙소를 배정 받는다. 오후 다섯 시에 생활 수칙 등을 알려주는 오리엔테이션이 있고 여섯 시에는 코스 중 처음이자 마지막인 저녁 식사가 나온다. 그리고 저녁 여덟 시, 첫 번째 명상을 시작으로 열흘 간의 프로그램이 시작된다.
이 열흘 간의 기간 동안 수련생들은 남녀로 나위어진 숙소동에서 함께 지낸다. 모든 식사는 채식으로만 제공되며 저녁에는 간단한 차와 과일로 식사를 대신한다. 나는 안내문을 보고 프로그램이 시작되기 전부터 이러한 불편함과 배고픔을 상상하며 내가 잘 버틸 수 있을 지 걱정했다. 나는 이런 나의 마음을 바꾸어 보려 프로그램에 참가하면 “무엇이든 주는 데로 받겠다” 혹은 “받는 데로 먹겠다”는 각오를 했다. 예상되는 불편함에 대하여 '겉옷을 달라면 속옷까지 내어주겠다'는 적극적인 마음을 낸 셈이었다. 명상센터에 들어온 목적대로 환경과 음식 등 대상에 대한 호와 불호를 없애고 불평, 불만이라는 마음 속의 잡음을 일으키지 않겠다고 결심했다. 이 결심은 첫 날부터, 너무 쉽게 부서져 내렸지만.
누구나 그렇겠지만 나 또한 잘 모르는 사람과 함께 생활하는 것, 특히 왠만큼 친한 사람들과도 한 방에서 잔다는 것에 익숙하지 않다. 이곳에 온 사람들은 모두 자발적으로 명상을 하러 온 사람들이니 최소한 서로를 배려하는 자세를 가지고 있을 것이고 또 이곳에 머무는 열흘 간은 각자 자기의 명상을 하는 외에 함께 어떤 작업을 하거나 이야기를 할 일도 없으니 서로 간섭할 일도, 시비가 생길 일도 없겠지. 이렇게 생각였지만 동시에 마음 한구석에서는 여전히 사람들과 함께 하는 불편과 그 사이에 벌어질지 모르는 갈등에 대해 불안해 하고 있었다. 만약 이들 중에 누구 하나라도 단체 생활에 맞지 않는 메너를 가지고 있다면 그가 나와 모두의 명상을 방해하는 행동을 한다면? 그의 행동이 나에게 불편함을 넘어 불쾌한 마음을 들게 한다면? 나는 누군가로 인해 나의 평정심을 깨지는 상황이 벌어질까, 모처럼 마음을 내어 온 명상센터에서 유쾌하지 않은 추억을 가지고 나가지나 않을까 걱정하였다.
숙소동에 도착하니 나의 침대가 미리 배정되어 있었다. 여럿이 한 방에서 지내야 한다기에 나는 경험적으로 군대의 내무반처럼 길다란 마루에 각자의 매트를 깔고 자는 것을 상상했지만 다행히 숙소동에는 가운데 통로를 사이로 침대들이 두 줄로 나란히 마주하여 놓여 있었다. 나의 자리는 가장 끝자리여서 침대의 긴 한 면이 출입구 쪽 벽에 붙어 있었다. 나는 주위에 신경 쓰이는 사람이 하나 줄어 다행이라 생각했다.
열흘이란 시간이지만 가지고 올 수 있는 짐은 중간 중간 빨아 입을 속옷과 명상 때 입을 편한 옷, 수건, 세면 도구가 전부이다. 숙소동에 들어 온 사람들은 저마다 자기 침대를 찾아 머리 맡 창가와 침대 밑에 짐을 풀었다. 어떤 사람들이 이런 곳(?)에 왔을까란 호기심으로 사람들의 얼굴을 둘러보는 데 반대 쪽 끝에 놓인 침대들이 눈에 들어왔다. 나의 자리 반대 쪽 출구의 마지막 두 세개의 침대에는 병원 입원실처럼 침대와 침대 사이에 커튼이 설치되어 있었다. 독실은 아니어도 침대 주위에 커튼을 둘러 칠 수 있다면 훨씬 더 편하게 지낼 수 있겠네. 나는 옆 사람과 프라이버시가 확보된 침대 커튼이 부러워 누가 그 침대들을 쓰게 되었는 지 궁금해졌다. 프로그램에 두번 이상 프로그램에 참가하는 수련생들은 처음 참가한 수련생들보다 편한 숙소를 받는다는 데 저 침대 자리를 받은 사람들은 그런 사람들일까. 아님 혹시 각 숙소마다 군대의 조교같은 사람들이 사람들의 생활을 지도하는 사람들이 두어명씩 배정되어 숙소 안에서 규율을 감시하고, 저 자리들은 그들을 위한 자리일까? 아니면 나이? 알 수 없는 일이었다. 내가 알 수 있는 것은 그 커튼 한장에 내 마음이 그 건물의 끝과 끝만큼 널찍이 오갔다는 사실이었다.
마음은 한 바퀴를 돌아 제자리로 돌아왔다. 처음에 개인마다 하나씩 주어진 침상을 보았을 때에는 군대처럼 하나로 이어진 마루가 아니라 다행이구나 하고 생각했고, 내 침대는 구석자리라 한쪽 면이 벽에 붙어 있으니 남들보다 저 편하겠구나 라고 좋아했는 데 이제 다른 자리에 커튼이 달려 있는 것을 보니 내 침대 옆에도 커튼을 칠 수 있으면 좋겠다는 욕심이 생기고 곧 불만이 시작되었다.
있으면 있는 데로 없으면 없는 데로 남들과 비교하고 그로 인해 출렁이는 감정, 이것이 마음이다. 대상에 대한 분별심을 내려 놓고 명상을 하겠다고 제 발로 찾아온 곳이 아닌가.자리가 바뀐다고 사람이 바뀌는 것이 아니다. 나는 생각과 감정의 움직임을 보며 이것이 지금 내 마음의 수준이로구나를 알 수 있었다. 비교하는 마음이 불만을 부른다. 그것이 무어라고, 나는 없고 그는 있는 침대커튼에 욕심이 났다. 하지만 내 마음을 어찌하기 이전에 내 의지로 어찌 할 수 없는 일은 아니었기에 나는 다시 “주는 대로 받자”라는 처음의 각오로 돌아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