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부지런하다. 4시에서 5시 사이에 일어나 글쓰기, 책 읽기, 명상, 108배하기 등 시기에 따라 종류를 달리하며 아침 루틴을 이어간다. 일단 루틴이 정해지면 최소한 주중에는 하루도 빠지지 않고 하는 것이 원칙이다. 하지만 나의 부지런함은 내가 하고 싶은 일, 하겠다고 마음 먹은 일에만 적용된다. 나는 귀찮은 일, 하기 싫어 하는 것에는 손가락 하나 까딱하려 하지 않는다. 의욕이 없으니 행동이 따르지 않는 것이다.
그런데 사업을 하는 데는 시작부터 귀찮은 일 투성이이다. 돈을 벌기 위한 직접적인 일 뿐만 아니라 설립부터 서류적인 절차와 직원 뽑기, 세무와 회계 관리까지. 그러니 사업이란 귀찮은 일들을 스스로 떠 안겠다고 시작하는 일이다. 귀찮은 일 절대 하지 않으려는 내가 수 많은 귀찮은 일들이 시작되는 사업을 시작하려고 하니 쉽게 몸이 움직여질 리가 없었다. 나는 이 귀찮음에 대한 감정을 이기고 사업을 시작하기 위하여 수행의 원리를 적용하기로 하였다.
불교에서 말하는 수행이란 무엇인가? 나의 이해에 의하면 불교에서의 수행이란 깨어있는 것이다. 깨어있음은 곧 나와 사물을 있는 그대로 알아차릴 수 있는 것이고 있는 그대로 알아차림은 내가 그동안 살아온 생각과 감정의 습관에 얽메이지 않고 지금 여기에 있는 나와 사물을 그 자체의 모습으로 바라볼 수 있는 것이다. 즉 내가 좋아하고 싫어하는 대상과 그 감정은 내가 지나온 과거로부터 축적된 경험에서 나온 감정의 반응이니 그것이 잠재의식에 세겨진 편견, 즉 집착을 버리면 나와 모든 사물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일 수 있게 된다.
수행의 방법 중에 108배라는 것이 있다. 나는 불교대학에 다니는 기간 중 도반들과 함께 200일 간 매일 새벽 5시에 일어나 108배를 하였다. 108배 수행의 목적은 자기를 내려 놓는 것이다. 108배를 하는 동안 기존의 생각에서 벗어나 새로운 시각, 즉 깨우침을 얻는 경우도 있지만, 나의 경우 108배는 나를 철저하게 내려 놓는 것, 즉 귀찮다는 마음을 이기고 꾸준히 하는 자체를 익히는 수행이었다.
귀찮음은 어떤 행위에 대한 우리 자아의 반발이다. 그 행위가 하기 싫을 수도 있지만 계속함 혹은 꾸준함 자체에 대한 마음의 반발이기도 하다. ‘이 정도면 되지 않아? 이걸 왜 계속 해야 하지? 혹은 어젯밤 늦게 자서 피곤하니 오늘은 좀 쉬는 것이 좋지 않겠어?’라는 등의 마음의 목소리를 이겨내는 그 자체가 수행이 되는 것이다. 나는 이 수행법을 사업에 적용하기로 하였다. 내가 귀찮아 하는 많은 일들을 수행의 기회로 삼기로 마음 먹었다. 하기 싫은 것을 어떻게 하냐고? 법륜 스님은 이렇게 말한다. ‘그냥 하는 거다. 지금 바로.’
정토불교대학
2020년 2월 21일 두바이 출장을 마치고 인천공항에서 후쿠오카행 비행기로 환승하여 집에 돌아온 나는 그 후 2021년 10월 20일 한국에 돌아올 때까지 근 1년 8개월을 후쿠오카에 지냈다. 당시 코로나는 전세계로 급속도로 번지고 있었고 나는 왕래가 불가한 팬데믹 정국이 상당 기간 오래 갈 것이라는 것을 직감했다. 문득 신영복 선생이 감옥을 학교로 여겼다는 말이 떠올랐다. 나는 이 시기를 배움을 위한 절호의 기회라고 여겼다. 이 시기 동안에 글쓰기, 그림 그리기, 글쓰기와 투자 등에 관한 온라인 수업 듣기 등 내가 좋아하고 하고 싶었던 공부를 부지런히 이어갔는 데 세간에 즉문즉설로 유명한 법륜스님이 지도 법사로 계시는 정토회의 불교대학을 수료한 것도 그 중 하나였다.
원래 1년 과정이던 정토불교대학은 팬데믹으로 인해 6개월 간의 온라인 방식으로 바뀌게 되었고 나처럼 해외에 있는 사람도 참가가 가능해졌다. 불교대학은 일주일간 정해진 수업을 온라인으로 듣고 정해진 시간에 같은 반의 도반(함께 수행하는 사람)들과 온라인 화상으로 모여 약 2시간 동안 수업 내용에 대한 감상과 생각을 나누는 시간을 가지는 방식으로 진행된다. 마음의 작용에 중점을 둔 불교 원론과 부처님의 생애를 중심으로 진행되는 데 나는 이 과정을 마친 후 불교의 대표 경전에 대한 수업 과정인 정토경전대학까지 마치어 총 12 개월의 과정을 마쳤다. 해외에서 수업을 참가할 수 있었던 것도, 긴 과정을 마칠 수 있었던 것도 긴 팬데믹 기간이 있었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었다.
여담이지만 법륜스님이 시작한 정토회는 종교(교리)나 철학(이론)으로서의 불교가 아닌 삶에 직접적인 관련이 있는 수행으로서의 불교를 지향하고 있다. 교리나 의식을 벗어나 삶의 행복도를 높이는 정신적인 수행에 집중하고, 함께 수행하는 도반 혹은 신도들이 절이나 교회 등 특정 장소가 아닌 온라인으로 연결되는 이러한 시도가 앞으로 모든 종교의 새로운 모델이 되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