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파사나 명상 센터 체험기 8
열흘 간의 명상 센터 생활 중 아침 식사와 점심 식사는 채식 식단으로, 저녁은 차와 간단한 과일(바나나 하나 혹은 사과 반쪽)만 제공된다. 나는 채식을 하는 것에 대하여 미리부터 큰 두려움을 가지고 있었다. 고기를 좋아하여 평소에도 고기 반찬 위주의 식사를 하던 내가 고기가 전혀 들어가지 않은 식사를 하며 몸을 유지할 수 있을지 걱정이 되었고 무엇보다 맛있는 채식이란 상상할 수 없는 일이었기 때문이다.
몇 해 전 살을 빼려는 목적으로 일부러 밥, 야채 등은 먹지 않고 주로 고기 만으로 세 끼 식사를 한 적이 있다. 그때는 매 끼니마다 돈은 훨씬 더 많이 들었지만 그래도 먹을 수 있는 메뉴가 많이 있었고 워낙 고기를 좋아하니 한 동안 질리지 않고 이 식단을 유지할 수 있었다. 불편하지만 만족스런 식단이었다. 하지만 채식은 다르다. 나에게 채식이란 맛있는 음식들을 피하여 끌리지 않은 재료들로 배를 체워야 하는 일이었다.
나의 우려와는 달리 코스 중의 채식 식단은 기대 이상으로 맛이 있었다. 매 끼에 나오는 반찬의 가짓수는 많지 않았지만 끼니마다 여러 가지 다양한 채식 메뉴가 나왔고 원한다면 충분한 양을 먹을 수 있었다. 고기가 없어서 ‘무언가 빠진 느낌’이나‘허전한 느낌’도 느낄 수 없었고 고기를 못 먹어 체력이 떨어진거나 힘이 없다는 느낌도 들지 않았다. 하루도 채 지나기 전에 오랫동안 지녀 온 채식에 대한 편견과 두려움이 사라졌다.
나는 이곳 명상센터에 들어오며 내가 선택하여 자발적으로 들어왔으니 '주는 데로 받겠다', '주는 데로 먹겠다', '시키는 데로 하겠다'라고 생각을 하였다. 물론 그런 각오가 생각만큼 쉽지는 않았다. 그렇게 하기 위해서는 '내가 옳다'라는 생각과 '이것이 내게 편하다'라는 생각을 내려 놓아야 하는 데 막상 낯설은 상황에 처하면 그 동안 살아온 습관 탓에 불편과 불만이 생기기 때문이다. 나는 이러한 오래된 편향(집착)과 고정된 생각(분별)을 벗어나는 데 명상은 분명 큰 역할을 한다고 생각한다. 내가 채식 식단을 무리 없이 받아 들일 수 있었던 것 또한 명상의 작용이 아니었을까.
또 하나 놀라운 일은 그 동안 먹지 않았던 나또, 오이,우메보시 등을 먹을 수 있게 된 것이다. 프로그램을 마치고 집에 돌아온 나는 이 사실을 와이프와 두 딸들에게 자랑하였다. 믿지 못하는 세 여자 덕분에 집에 돌아온 날 저녁, 나는 식탁에 올라온 오이와 나또를 먹는 모습을 보여주어야 했다. 코스 중에 내가 먹은 오이는 셀러드 안에 얇게 썰려 나온 오이였다. 하지만 그날 우리집 셀러드 안의 오이는 성큼성큼 썰려 전보다도 큼직하였다. 나는 잠시 주춤거렸지만 곧 두 딸의 재촉에 두어개를 입에 집어 넣었다. 앗. 명상의 효과는 그리 오래 가지 않는 지 커다란 생오이를 씹는 느낌, 오이 특유의 그 지나치게 신선한 냄새는 여전히 몹씁 맛이었다. 하지만 이미 한껏 자랑을 한 터라 억지로 티를 내지 않고 오이를 씹어 삼킬 수 밖에. 세 여자는 크게 놀라며 커다란 나또 팩을 열어 나에게 들이 밀었다.
명상을 다녀온 후에 오이랑 나또를 먹을 수 있게 되었지만 좋아하게 된 것은 아니랍니다. 나는 우리집의 평화로운 식단을 위하여 오이, 우메보시 그리고 나또에 대한 나의 입장을 확실히 밝혀야 했다. 무엇이든 단계적으로 조금 씩 익숙해 지는 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