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파사나 명상 센터 체험기 7
어느 오후 명상 중에 살짝 눈을 뜨니 커다란 바퀴벌레가 내 앞을 천천히 지나가고 있었다. 후쿠오카의 바퀴벌레가 크다지만 대자연과 함께 자란 이 바퀴벌레는 후쿠오카의 것보다 훨씬 컸다. 중지만한 길이에 범상치 않은 크기였다. 평소 같으면 비명을 지르며 화들짝 놀일어나 멀리 달아나 살충제를 찾았겠지만 명상을 하던 나는 조금도 놀라지 않았다. 그저 ‘바퀴벌레가 오고 있구나’라고 생각했다. 그리고는 가만히 바라보며 이 바퀴벌레를 어떻게 하면 밖으로 내보낼 수 있을 지를 차분하게 고민했다. 마치 텔레비젼에 나오는 퀴즈를 풀 때처럼 차분한 반응이었다.
명상을 통하여 내 안에 기존의 마음의 습관, 즉 바퀴벌레를 혐오하는 마음이 사라졌기 때문이라 생각했다. 또 한편으로는 그동안 내가 바퀴벌레를 무서워했던 것이 아니고 바퀴벌레가 나타나면 그 바퀴벌레를 죽여야 하는 것이 싫었고 그 느낌이 공포와 같은 느낌으로 느껴졌던 것이 아니었나란 생각도 들었다. 수련생들은 명상 코스 중에 무엇이든 살아있는 생명을 해하거나 살생하는 것이 금지되어 있으니 나는 이 바퀴벌레를 죽일 수 없고 죽여서도 안된다. 죽이지 않아도 되니 무섭지 않았다.
두려움이나 혐오하는 마음이 일지는 않았지만 그렇다고 눈 앞의 바퀴벌레를 가만히 내버려 둘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내 방석 위에 깔고 있던 책받침만한 사각형 매트로 바퀴벌레가 방석 밑으로 들어가지 않게 막았다.바퀴벌레는 빙글빙글 돌며 매트를 피하다 아무도 앉아 있지 않던 내 앞 사람이 자리를 비운 빈 방석 밑으로 들어갔다. 방석을 들추니 바퀴벌레는 보이지 않았기에 나는 더 이상 바퀴벌레를 괴롭히지 않고 명상실을 나왔다. 처음 바퀴벌레를 보았을 때의 차분함과는 달리 조금씩 심장이 빨리 뛰고 있음을 느낄 수 있었다. 역시 마음은 습관이다.
다음 날 오후 명상 시간, 살짝 눈을 떴을 때 나는 그 바퀴벌레가 내 자리 옆 통로를 지나고 있었는 것을 보았다. 마치 나의 명상의 효과를 테스트하기 위하여 누군가 방금 풀어 놓은 것처럼. 또 때마침 내가 명상 중간에 눈을 뜰 때마다. 산에 사는 바퀴벌레는 아직 바깥으로 나가는 출구를 찾지 못한 모양이었다. 이를 어쩌지. 이 명상실 안의 누구도 이 바퀴벌레를 죽이려 하지는 않겠지만 이 바퀴벌레가 누군가의 방석 밑으로 들어간다면 그 누군가의 엉덩이에 압살 당할지도 모를 일이고 명상실 안의 사람들 사이에서 돌아다닌다면 여러 사람의 명상을 방해할지도 모를 일이다.
커다란 성냥곽같은 명상실의 앞 뒤에는 양 옆으로 출입문이 나 있다. 앞 출입문은 명상을 지도하는 지도선생이 드나드는 문이고 뒷 문은 수련생들이 오가는 문이다. 앞 쪽 창가 줄에 앉아 있던 나에게는 지도 선생 전용 출입문 가장 가까운 문이었지만 그 문까지 바퀴벌레를 어떻게 몰고 갈지는 딱히 방법이 떠오르지 않아다. 바퀴벌레를 메트로 몰고 가는 중에 바퀴벌레가 다른 사람 방석이나 옷 속으로 들어 가 명상을 방해하는 소동을 일으켜서는 안될 일이었다.
내 옆 통로에서 멈추어 긴 더듬이를 휘휘 두르고 있던 바퀴벌레를 보며 고민에 빠져있던 그 때, 내 옆에 앉아있던 아저씨가 벌떡 일어났다. 육십대 중반 즈음으로 보였다. 그는 맨 손으로 바퀴벌레를 덮쳤다. 손바닥 안에 가두어 밖으로 보내려는 모양이었다. 바퀴벌레는 빠르게 그의 손을 피해 달아나기 시작했다. 바퀴벌레에 놀라지 않은 나도 그의 행동에는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바퀴벌레를, 더구나 저 큰 바퀴벌레를 손으로?! 방금까지의 나의 고민 속에는 감히 떠올리지 못했던 방법이었다.
바퀴벌레를 향하여 뻗는 남자의 손은 망설임이 없었다. 아마도 그는 아주 어릴 적부터 바퀴벌레를 손으로 잡을 수 있었겠지. 나처럼 바퀴벌레를 보면 기겁을 하고 내뺐던 사람이 명상을 하여 바퀴벌레를 손으로 잡을 수 있게 되었다면, 그것은 아주 단적으로 수행의 효과를 보여주는 것이겠지만 내가 그 정도 경지에 이른다면 공중부양도 가능하리라.
그 아저씨에게 쫒기어 창가로 달아난 바퀴벌레는 벽 쪽으로 달아나 감쪽같이 사라졌다. 마루나 벽 틈으로 들어가 숨었을 터이다. 그 동안 꼼짝 없이 앉아있는 사람들 사이를 마음대로 드나들던 바퀴벌레에게 오랜만에 긴장되는 순간이었을 것이다. 나에게는 명상이 마음의 습관을 멈추고 대상을 혐오나 애착 없이 바라보게 할 수 있다는 점을 잠시나마 경험하는 순간이었다. 또 살아온 경험이 곧 생각의 한계가 된다는 것도 새삼 느낄 수 있었다. 명상실 안에서는 모든 것이 깨달음이고 수행이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