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파사나 명상 센터 체험기 9
열흘 째 마지막 날 오전에는 타인을 위해 기도하는 메타(Metta)명상을 배운다. 어떤 단어나 형체 등을 떠올리지 않고 감각에만 집중하여 명상하였던 기존의 명상법과는 달리 자기의 염원 특히 다른 이를 위한 기도를 하는 명상이다. 그리고 이 날 오전 명상 시간이 끝나면 성스러운 침묵(noble silence)이 해제된다. 이 때부터 명상실 안과 그 주변을 제외하고는 수련생들 사이에 대화가 가능해지고 식사 시간 외의 시간에 식당(dining room)에서 남자 수련생가 여자 수련생이 만나 이야기를 나눌 수도 있다. 열흘을 한 곳에서 생활하면서 일부러 눈도 마주치지 않던 사람들이 갑자기 대화를 나누는 일은 무척이나 어색한 일이다. 열흘 밤낮을 마치 없는 듯이 지내던 옆자리 침대의 사람의 목소리을 처음 들을 수 있었다. 서로 전혀 아는 바가 없으니 상대방에게 어디에서 왔는 지부터 묻게 된다.
옆 자리 침대에서 생활 하던 앳된 얼굴의 청년은 독일에 온 컴퓨터 전공자로 동경대에 교환 학생으로 왔다고 한다. 모바라(茂原)역에서 센터로 가는 버스를 기다리며 만났던 태국 친구, 스웨덴 친구, 버지니아와 켈리포니아에서 온 친구들과도 열흘 만에 다시 이야기를 나누었다. 말문이 터진 사람들은 자기가 편한 대화 상대를 찾아 수다를 떨기 시작했다. 그리고 오랫만의 수다가 재미있는 지 곧 아무것도 아닌 이야기로 낄낄거리기 시작했다. 다른 사람의 눈에 비친 나 자신의 모습 또한 그러했을 지도 모르지만, 사람들은 입을 다물고 있을 때보다 말을 하고 있을 때 대체로 더 '가벼워' 보인다. 침묵(silence)은 사람들을 성스럽게(noble) 만드는 힘이 있는 모양이다. 나는 몇몇과 이야기를 나누다 문득 나의 말버릇 속에 과장하여 말하거나 상대방을재미있게 하기 위하여 이야기를 꾸며내는 버릇이 있는 것을 발견했다. 이야기 도중에 자연스럽게 이 습관들이 나오는 것을 알아차리고는 스스로 놀라 중간 중간 입을 다물었다. 명상은 자기를 객관적으로 보는 데 도움을 준다.
매일 저녁 그룹명상이 끝나면 명상실에서 위파사나 명상 센터의 설립자인 고엥카 선생의 명상에 관한 가르침(discourse)을 듣는 시간이 있었다. 이 시간에 영어 혹은 일본어가 모국어가 아닌 사람들은 식당으로 모이는 데 자신의 모국어로 번역된 강연을 듣기 위해서이다. 센터에서는 이들을 위하여 당일 강연 내용이 실린 아이팟을 준비해 주었다. 식당에 모인 사람들 중에는 네팔에서 온 두 명의 청년이 있었다. 우리는 매일 저녁 같은 곳에서 만났지만 센터의 규칙대로 서로 인사를 하거나 말을 건낼 수는 없었다.
프로그램이 시작하고 얼마 안지나 비가 오는 날이었다. 그 중 한 명은 식당으로 오는 길에 미끄러져 발목을 크게 삐었다. 프로그램 내내 왼쪽 발목을 붕대로 감고 절뚝 거리며 숙소에서 식당, 명상실을 오갔는데 그 모습을 볼 때 마다 도와줄 수 없는 것이 많이 안타까웠다. 마지막 날, 서로 말을 할 수 있게 되고 나서야 가지고 갔던 파스를 그에게 건내 줄 수 있었다.
두 네팔 청년들은 네팔 정부에서 동경대에 연구원으로 보낸 이들이었다. 이들은 나에게 낯선 나라 네팔에 대하여 여러 가지를 이야기 해 주었다. 네팔이 부처님이 태어나신 곳이라는 것, 네팔 사람 중 구(九)할은 불교가 아닌 흰두교를 믿는다는 것, 네팔사람들은 언덕과 산을 나누는 기준이 있는 데 솟아 오른 땅에 눈이 있으면 산이고, 눈이 없으면 언덕이라 부른다는 것, 네팔 사람들은 산 위의 쌓인 눈을 항상 보고 살지만 실재 사는 곳에 눈이 내리는 경우는 거의 없어 눈을 만져본 사람은 아주 드물다는 것 등등. 이야기를 듣고 있자니 신비에 싸여 있던 네팔이 더욱 신비롭게 느껴졌다.
몇 일째부터인가 식사를 하고 식당을 나올 때면 멀리 여자 숙소 앞에서 식당 쪽을 바라보고 있는 한 여인이 눈에 들어왔다. 그녀는 인도식 전통 복장을 하고 언제나 식당 쪽을 물끄러미 바라보며 서 있었다. 코스 중에 남자와 여자는 모든 생활 구역이 구분되어 전혀 서로 접촉하지 못한다. 명상실을 중심으로 왼쪽은 남자들의 생활구역, 오른쪽은 여자들의 생활구역으로 명상실과 식당의 출입구도 따로 나 있고 식사 시간에도 같은 식당에서 식사를 하지만 가운데 커튼이 쳐져 있어 서로의 모습을 볼 수가 없다. 마지막 날 듣고 보니 그녀는 발목이 삐어 절뚝 거리던 다니던 네팔 청년의 아내였다. 그녀는 남편을 보러 일본으로 들어왔다고 일년만에 만난 부부가 함께 명상 프로그램에 참가하였다고 한다. 서로 이야기도 못하고 멀찌감치 버라보아야만 하는 데, 남편이 어느 날부터인가 절뚝거리며 오가니 놀라고 안타까운 마음에 밖에 서서 남편이 오가는 숙소와 식당 사이를 바라보고 있었던 것이다.
네팔서 온 다른 한 친구는 일본에 온 지 이년째가 되었다고 했다. 그의 아내는 그보다 먼저 일본에 와 일을 하고 있었단다. 부부는 일본으로 왔지만 사정이 여의치 않아 데리고 오지 못한 세 살 짜리 딸아이는 네팔에서 조부모가 돌보고 있다고. 그는 이야기의 끝에 넔두리를 하듯 두고 온 딸이 너무 보고 싶다고 했다.
우리는 연락처를 나누고 다시 만날 기약 없이 헤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