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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상 중 떠오른 망상들, 회상&

위파사나 명상 센터 체험기 11

by 박종호

명상을 통하여 미세한 감각을 알아차리는 것에 익숙해지면 어떤 감정이 일어나느냐에 따라 나의 몸에도 서로 다른 부위에서 감각이 일어나는 것을 알 수 있게 된다. 감정과 육체는 연결되어 있다. 긴장을 하면 식은땀이 흐르고 심장이 빠르게 뛰는 것처럼. 화가 나면 가슴이 '뜨거워'지고, 공포를 느끼면 간담이 '서늘해'지는 것은 우리 몸이 다양한 감각으로 감정에 반응하는 것을 표현한 말들이다. 이런 반응을 알아차리는 것에 익숙해지면 평소에도 자신에게 어떤 감정이 일어나고 있다는 것을 금새 알아차릴 수 있고 그 감정을 타자화하여 객관적으로 바라볼 수 있게 된다. 지금 내가 화가 났구나, 지금 나는 즐겁다, 지금 나는 슬프다처럼 말이다.


명상 중에 몸에서 느껴지는 감각을 가만히 바라보면 그 감각이 얼마 지나지 않아 사라지는 것을 경험한다. 이처럼 감정도 알아차리고 가만히 바라보면 오래 지속되지 못하고 이내 사라지기 나름이다. 이렇게 알아차리는 방법으로 우리는 스스로의 감정을 제어할 수도 있다. 예를 들면 어떤 일로 인해 화가 났다면 그 즉시 내가 지금 화가 났구나 하고 알아차려 그 화가 스스로 점점 더 커져 가는 것을 막을 수 있다. 작은 불씨을 알아차리면 큰 불로 번지는 것을 막을 수 있는 것처럼. 명상이 동요가 없는 평상심의 상태이면서 동시에 평상심을 유지하는 방법인 이유가 여기에 있다.


명상을 하는 중에 과거의 잊혀져 있던 기억들이 떠올랐다. 명상 중에 떠오르는 생각들을 이른바 망상 혹은 잡념이라 부르지만 나는 잊혀졌다고 생각한 그 기억들이 내 속에 생생하게 남아있음에 놀라며 그 기억들을 찬찬히 되짚어 볼 수 있었다. 물론 믿을 수 없는 일이라 생각하지만 소문에 의하면 명상을 할 때 간혹 전생의 기억이 떠오르는 경우도 있다고 하는 데 나의 경우에는 전생까지는 아니지만 아주 오래된 일까지, 마치 그때로 돌아간 것처럼 생생하게 떠올랐다.


우리가 마음대로 꺼내어 보지는 못해도 우리가 살아온 기억들은 우리의 머릿속에 모두 저장되어 있다고 한다. 그렇다면 우리의 감정과 그 감정에 연관된 몸의 감각들도 함께 저장되어 있는 것이 아닐까. 명상으로 잊혀졌던 감각들이 떠오르고, 그 감각들은 감각을 일으켰던 감정들을 부르고, 그 감정들이 감정을 일으켰던 과거의 일을 떠오르게 한 것은 아니었을까.


프로이트는 환자가 자유롭게 이야기하는 중에 무의식 속에 세겨진 자신의 트라우마를 끄집어 낼 수 있고 그 트라우마의 발단을 알아차림으로써 이를 치유할 수 있다고 주장했다. 이른바 자유연상법 (Free association)이다. 나 또한 명상 중에 떠오르는 나의 과거의 일들을 바라보며 왠지 나의 트라우마들이 치유되고 있다는 느낌이 들었다. 명상을 시작하고 끊임 없이 떠오르던 잊혀졌던 기억들은 사오일 째에 접어들며 점점 약해지고 이후로는 간혹 떠올랐다도 곧 사라져버렸다. 마음이 한결 가벼워졌다. 깊은 곳에 가라 앉아 있던 묵은 찌꺼기들이 씯겨 나간 듯이.


추기) 나는 지도 선생에게 이 기억들이 혹시 내가 명상 중에 느끼는 몸의 감각과 관련이 있는 지 물었다. 선생은 그것이 마음에서 시작되었는 지 몸에서 시작되었는 지는 알 수 없는 일이고 또 그것이 어디서 시작되었든 그 또한 잡념일 뿐이라고, 과거의 기억이 떠오르는 것이 나쁜 것은 아니지만 그것을 알아차린다면 다시 명상으로 돌아와 집중하면 된다고 말해 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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