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파사나 명상 센터 체험기 13
#사족(蛇足)1, 인터스텔라
영화 인터스텔라에서 주인공은 인류가 더 이상 살 수 없게 된 지구를 대신할 행성을 찾아 긴 여행을 떠난다. 긴 비행 시간 동안 냉동 상태로 잠이 든 그는 몇 년만에 깨어나 그 동안 지구에서 가족들이 보내온 메시지들을 하나씩 열어 본다. 그는 단지 잠을 자고 일어난 것 뿐이지만 그가 탄 우주선은 그 사이에 수 년을 비행해 왔고 지구의 시간은 이 보다 훨씬 더 빨리 흘러 그가 떠날 때 어린 아이였던 그의 아들과 딸은 이미 중년에 접어 들었다. 떠나는 아빠를 용서하지 못했던 딸은 어른이 되어서도 여전히 그를 용서하지 못했고 아이들을 돌보던 장인도 오래전 세상을 떠났다.
나는 열흘이 지나 헨드폰을 켰을 때 이 영화에서처럼 그 동안 받지 못했던 수많은 메일과 연락이 한꺼번에 쏟아지리라 생각했다. 무엇보다 아주 급한 일들이, 누군가의 비보, 입원, 회사의 위기 같은 일들이 나와 연락이 닫지 못하는 사이에 벌어지고 나는 그것을 모른 채, 제대로 대처하지도 돕지도 위로하지도 못한 채 지나버렸으면 어쩌나하고 걱정했다.
사실 그런 일들이 일어난다면 최소한 나의 가족에게 그런 일이 벌어진다면 나는 그곳에서도 연락을 받을 수 있었다. 진행 메니저가 나를 아주 조용한 목소리로 불러 나에게 온 전화를 받게 할 때까지, 평소라면 헨드폰으로 바로 왔을 전화를 누군가를 통해 받게 될 때까지 시간이 조금은 더 걸리겠지만 연락이 아주 안되는 일은 아니었다. 하지만 외부와 단절된 나의 불안은 시간이 갈 수록 점점 더 심해지고 스스로 만들어 낸 상황들을 아주 구체적인 이미지로 머릿속에 떠올리기까지 했다.
“긴급, 연락바람”이라든가 “누가 누가 아파요, 연락이 안되니 이 메세지를 받으면 바로 연락 주세요.” 같은 문자들이 헨드폰에 뜨는 것이 생생하게 떠올랐다. 그래서 마지막 날 아침, 헨드폰을 돌려 받았을 때 헨드폰의 전원을 서둘러 켜면서도 이곳이 외진 곳이라 신호가 잡히지 않는 것에 왠지 안도감을 느꼈다. 헨드폰에 와 있을 지도 모르는 비운(悲運)의 소식을 잠시라도 더 나중에 들을 수 있겠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신호가 잡히지 않은 헨드폰을 주머니에 꽂은 채로 맞은 편에 앉은 중국인 수련생과 수다를 떨며 아침을 먹었다. 아침을 다 먹고 여느 때처럼 레몬즙을 넣은 생강차를 한 잔 마시고 식당 앞 넓은 공터로 나왔다. 여전히 신호가 잡히지 않았기 때문에 헨드폰의 전원을 한 번 껐다가 다시 켰다. 그제서야 미약하기는 했지만 신호가 잡히고 카카오톡과 문자 메세지 아이콘에 그간 온 메시지 숫자가 표시되었다.
판도라의 상자를 열 듯, 나는 무엇이 들어 있을 지 모를 문자 메시지들을 열었다. 그동안 이런 저런 상상을 하면서도 무슨 일이 혹시 있었더라도 평정심을 잃으면 안되겠다고 다짐하고 있었기에 마음을 단단히 먹고 단호하게 헨드폰을 바라 보았다. 그러나 나의 걱정과는 달리 헨드폰을 꺼 놓은 열흘 동안 나에게는 특별하다고 할 만한 연락은 아무 곳에서도 오지 않았다. 자주 연락이 없던 친구의 부재중 통화가 한 통 와 있었지만 그것으로 끝이었다. 카카오톡 메시지 또한 내가 생각했던 것 보다 아주 적게 도착해 있었다. 나는 사람들이 적어도 일주일에 한 번 쯤은 안부를 물어 주고, 내가 연락이 없으면 누군가가 왜 이리 연락이 없냐고 보고 싶다고 말해 주는 그런 인기인은 아니었던 것이다. 걱정은 안도로, 또 한편 살짝 섭섭함으로 이어졌다. 사람의 마음이 다 그런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