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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지수연 Oct 24. 2021

개를 두고 결혼이라니

온 가족이 함께 반려동물을 키우다가 자녀가 집을 떠나는 경우가 흔해졌다. 반려동물 양육 가구 1500만 시대이니 필연적인 일이다. 곁가지를 제외한다면 반려동물을 본가에 일임하는 자녀들의 비율이 상대적으로 높다. 나 역시 그랬다. 본가에 남은 가족으로부터 개를 빼앗아갈 수 없음이 첫 번째 이유였고 남편과 내가 집을 비우는 시간이 너무 길다는 것이 두 번째 이유였고 남편이 먼저 키우고 있던 고양이와의 합사 걱정이 세 번째 이유였다. 모든 것을 차치하고 개의 행복을 최우선으로 두었을 때 선택해야 할 답이 너무도 명확했다.


신혼집에 들어온 직후 며칠, 나는 개가 보고 싶어 훌쩍훌쩍 울었다. 남들은 부모님 생각에 눈물이 난다는 데 나는 조막만한 치와와가 너무 보고 싶어 허구한 날 핸드폰 갤러리를 들여다봤다. 그것만으로는 마음에 차지 않아 화장대와 냉장고에 사진까지 덕지덕지 붙여두었다.

결혼 생활은 넉넉히 편안하다.

고양이는 두말할 것 없이 사랑스럽다.

하지만 나는 나의 치와와를 만질 수 없다. 촵촵촥촥 요란하게 물 먹는 소리를 들을 수 없고 옆구리에 복실한 것을 뜨뜻하게 끼운 채 잠을 잘 수 없다. 이건 확신컨대 개와 고양이를 두고 시집 장가간 이들의 가장 큰 고통일 것이다.


나는 결국 그리움의 패자가 되었다. 본가와 신혼집과의 거리 약 15km. 얼마 가지 않아 일주일에 한두 번씩 본가에 들락거리기 시작했다. 개의 간식을 바리바리 사들고 문을 열고 들어가 짐을 놓자마자 목줄을 메고 공원으로 내달리면 내 새끼의 커다란 귀가 팔락이고 조막만한 몸이 가볍게 공기를 가른다. 그렇게 배드민턴 코트를 지나고 살랑바람이 부는 벤치를 지나고 산책 나온 다른 개들을 지나고 개천가를 지나 한껏 내달리고 나면 바람을 가르던 개의 기분처럼 내 마음도 사르륵 녹아내려 '아 행복하다' 들뜬 마음을 감추지 못하고 개와 마주 보며 웃게 된다.


나의 개, 열매입니다.


사람의 시간은 24시간을 기준으로, 개의 시간은 7시간을 기준으로 돌아간다고 한다. 개의 수명이 인간의 1/4 안팎인 것도 같은 이유에서 비롯된다. 간단하게 사람의 하루가 개의 3-4일이라는 의미다. 내가 만약 4일에 한 번 개를 보러 간다면, 나의 개는 2주 만에 나를 만나는 것이다. 일주일에 한 번 간다면, 자그마치 한 달을 기다린 것이다. 그런 생각을 하면 가슴이 쓰려 살 수가 없다.




'나 이번 토요일에 열매 보러 다녀올게' 말하면 H는 '그럼 그럼. 다녀와야지.' 대답한다. H와 나의 개 사이가 돈독한 것도 있지만 덧붙여지는 말이 좀 더 비중 있는 이유다. '그 마음 충분히 이해해. 나는 하루라도 내 고양이 안 보고는 살 수 없거든.' 아니, 그렇게 말하면 내가 뭐가 되냐고. 구시렁 소리가 절로 나오지만 속 깊은 곳, 고마운 것이 한가득이라 말을 삼킨다.


개가 보고 싶어 자꾸만 본가에 가는 아내를 아니꼽게 보는 남편도 있을 수 있다. 오래 돌본 재개발 지역 길고양이들을 먹여 살리려 매주 사료 포대를 날라대는 아내를 한심하게 보는 남편도 있을 수 있다. 하지만 H는 그러지 않는다. 이해하고 격려하며 함께 행동한다. 그런 H의 닮은 마음 덕분에 나는 조금 더 편안한 마음으로 나의 개를 그리워할 수 있다.


사람들이 함부로 드러내지 않는 것들이 있다. 종교에 대한 신념. 그리고 정치 성향이다. 결국 가치관이 일치하지 않을 시 사회적 관계까지 무너질 수 있다는 뜻이다. 그럴 수밖에 없다. 그건 손톱을 깎는 습관이나 설거지 후 그릇을 포개어 놓는 습관과는 다른 것이다. 말 몇 마디로 조정하기에는 역사가 있고 깊숙하다. 그리고 이제는 그러한 가치관에 환경과 동물권에 대한 신념도 포함되는 세상이 되었다.


H와 나도 처음부터 그런 것들이 일치하지는 않았다. 하지만 5년간의 연애 기간을 거치며 대부분의 것들이 긍정적인 방향으로 협의되었다. 그렇게 협의가 되는 과정 속에서 나는 실시간으로 깨달았다. 이건 흡사 오디션이다. 1차를 붙고 2차도 붙고 3차까지 붙은 후 대표와의 최종 미팅에서 긍정적인 반응을 얻어야만 계약서에 사인을 할 수 있는 오디션. 각 회의 합격 여부를 결정한 심사위원도 최종 미팅을 진행한 대표도 결국은 서로였다. 우리는 그 모든 조정에 성공하여 기어코 부부가 된 것이다. 그 까마득한 조정이 성공할 수 있었던 이유는 뭐였을까. 솔직히 말하자면 그냥 본능의 고장이라고 밖에 볼 없다.


상대가 나의 신념을 따라 주었으면 하는 마음은 본능이다. 인간은 쉽게 변하고 싶어 하지 않는다. 변화란 생각보다 귀찮은 일이다. 가치관에 대한 것들은 더더욱 그렇다. 깊숙한 곳에 있을수록 뒤집어엎어야 하는 땅의 면적이 넓어진다. 대부분의 연애는 이 부분이 타협이 되지 않아 종지부를 찍는다. 하지만 우리는 운이 좋게 적절한 타이밍에 본능이 고장 났다. 그래서 반대의 생각이 두 사람 마음에 둥실, 떠올랐다. '내가 너의 신념을 한번 따라가 볼게.'


나도 그를 만나 많은 것들이 바뀌었지만 신념에 관하여 더 많이 따라와 준 쪽은 H다. 그는 나를 만난 후 종교가 바뀌었으며 장애묘를 키우는 유기견 결연자가 되었다. 그에 대해 나는 마음의 빚이 있다. 떠오르면 애정이 견고해지는 빚이며 채권자 없는 채무다. 언젠가 그가 닮은 도움 요청한다면 나는 백지수표를 내밀어 그것을 갚을 것이다.



 

본가에 다다르면 베란다 창문으로 열매의 작은 머리가 빼꼼히 올려다 보인다. 그것이 콩콩 뛰어 위아래로 왔다 갔다 하는 것도 보인다. 문을 열고 들어가면 엄마는 말한다. '다음부터는 언니 온다고 미리 말하지 말아야겠어. 아침 일찍 말하면 너 올 때까지 베란다랑 현관문을 번갈아 왔다 갔다 기다리니, 엄마가 정신이 하나도 없어.' 나는 '우리 열매 구래떠 구래떠' 하며 쪽쪽쪽 머리통에 뽀뽀를 한다. 그리곤 산책을 하는 열매의 모습이나 배를 뒤집고 애교를 부리는 열매의 모습을 찍어 H에게 보낸다. 그러면 얼마 지나지 않아 답장이 온다. '열매야 오빠는 안 보고싶어?' 그런 메시지를 보면 정말로 H가 보고 싶어 진다. 열매가 아니라 내가.


공존하는 가치관 덕분에 나는 조금 덜 그리운 마음으로 신혼을 산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것이 당연하게 느껴지지 않아 마음에 기분 좋은 채무를 쌓으며. 나도 그에게 변제받을 것들이 넉넉해지면 좋을 텐데, 아내로서의 내 모습이 어찌 가닿고 있는지 알 길이 없어 금은 걱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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