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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지수연 Dec 20. 2021

관습의 합사

주민등록등본을 출력하니 한 주소지에 두 사람의 이름이 찍혔다. 동행은 더 이상 은유적 표현이 아니었다. 타인과 함께 하는 삶이 물리적으로 시작된 것이다. 평생을 함께 하기로 서약한 타인과.


누구와 사귈 때, 사람만 달랑 올 수가 없다. 어린 시절부터 축적된 문화가 따라오고 관계를 맺은 사람들과 관습이 따라온다. 특정한 지역성이라고 할 수 있는 요소가 함께 온다. 그러한 성향은 민족성으로만 만들어지는 게 아니라, 계층과 지역과 집안의 특성이 뒤섞여 구성된다. 본인은 이 무의식적인 요소들의 집합을 정상 상태로 여긴다.


무어라 표현하기 애매한 것들을 콕 집어 표현해주는 문장에서 느껴지는 열감 같은 것이 있다. 알랭 드 보통이 '우리는 사랑일까'에서 말한 이 단락의 열감을, 나는 아주 오래전부터 좋아했다. 그의 말은 옳았다. 서울시 마포구의 한 주거지에는 온갖 가구와 옷가지에 더불어 두 사람의 삶이 널브러졌다. 몇 시간을 함께 지내다가 각자의 집으로 되돌아가던 시절이 사전 준비 기간이 되었을 거라 생각했던 우리의 예상은 완벽히 엇나갔다. 모든 것이 제로 투 원 0 to 1이었다.


퇴근이 늦어 자주 야식을 먹는 나의 생활 패턴 때문에 H는 역류성 식도염에 걸렸다. 나는 그대로인데 H만 4kg이 늘었다. 청소는 하지 않으면서 청소용품을 대량으로 사는 게 취미인 H덕에 나는 싱크대 하부 수납함에 소유 물품 목록과 경고문을 붙였다. 먹고 난 군것질 껍데기는 제발 쓰레기통에 버려달라는 문구까지 경고문에 추가할까 고민하다가 그만두었다. 집 안에는 너저분한 물건과 고양이 털이 나뒹굴었다. 나의 저녁과 H의 아침이 각자의 방식대로 피로해졌다.


서로가 생각하는 '깔끔함' 역시 달랐다. 나의 관점은 거시적이었으며 H의 관점은 미시적이었다. 패션에 관심이 많은 H의 최우선은 옷가지 관리에 있었으나 나는 그의 옷이 버거웠다. 몇 벌 되지 않는 나의 옷에 비해 H의 옷은 너무 다양하고 많았으며 (세탁법도 전부 달라야 했고) 나는 그것을 구분해내기 어려웠다. 나는 그런 것보다는 집안의 전반적인 정리가 최우선이었다. 물건들은 제자리에 있어야 했고 식탁 위나 싱크대 위에 먹고 남은 접시와 택배 상자 등의 무엇이 없어야 하며 알러지 관리를 위해 청소기를 아침저녁 두 번 이상 돌려야 했다.


쓸모없어진 물건들을 버리고 공간을 비워두고 싶은 나와 추억이 담긴 물건들을 간직하고 필요한 물건을 늘 구비해 두고 싶은 H의 간극은 어떻게 줄여나가야 하는 걸까. 지극히 정상적이었던 서로의 나날에 적응할 수 없는 두 사람이 눈을 마주 보며 서 있다.



'5가지 사랑의 언어'의 저자 개리 채프먼의 이야기는 단순한 듯 인상 깊다. 그는 중고등학생 시절 집안 청소를 끝내지 않으면 농구를 할 수 없었고, 독립을 하기만 하면 결단코 청소 따위는 하지 않으리라 결심했다고 한다. 그리고 몇십 년이 흘러 그는 한 가정의 남편이 되었다. 이후의 고백은 이렇다.


나는 지금 집안 청소를 정기적으로 하고 있다. 내가 청소를 하는 이유는 단 하나 바로 사랑 때문이다. 아무리 돈을 많이 주어도 나는 청소하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사랑을 위해서 한다. 자연스럽게 되지 않는 행동을 하는 것이 더 대단한 사랑이다. 내가 집안 청소를 하는 것은 100% 순수하고 완전한 사랑의 표현이며, 그것 때문에 나는 모든 면에서 아내로부터 신임을 얻는다.


백 명의 인간이 있다는 것은 백 가지 유형의 인간이 있다는 의미다. 그들을 가장 닮은 순서대로 줄을 세도 1번 인간과 2번 인간은 절대 같은 사람이 될 수 없다. 조율 없이 딱 맞아떨어지는 인간을, 우리는 평생 만날 수 없다. 결국 누구를 만나더라도 상대의 신임을 얻기 위해 자연스럽지 않은 행동을 해야만 한는 의미다.


대부분의 자식들에게 부모는 교사이자 반면교사다. 자식은 부모로부터 받은 상처와 사랑을 뒤섞어 먹으며 자신의 자아를 만들어간다. 비율은 가정 나름이다. 하지만 비율이 극단적인 부모의 자식들, 상식적으로 이해할 수 없는 행동을 하는 부모의 자식도, 가슴 깊숙한 곳에는 '내 부모를 이해하고 용서하고 싶은 마음'이 있다. 이해할 수 없지만 이해하고 싶은 마음. 대화하고 싶지 않지만 대화하고 싶은 마음. 싫은 것을 하게 하는 원동력. 상식적으로 이해할 수 없는 것을 본능이 하게 하는 일. 그 깊숙한 마음은 '사랑'이라는 단어를 제외하고는 설명할 수 없다. 사랑은 상식을 파괴하는 힘이 있다. 자연스럽지 않은 일을 하게 하는 힘이 있다. 고리타분하고도 올곧게, 사랑은 늘 그래 왔다.


솔직히 말하자면 H와 나는 닮은 구석이 거의 없다. 연애를 하는 5년 동안에도 서로의 다름에 번번이 놀랐다. 나는 나 같은 딸은 낳고 싶었지만 나 같은 배우자는 만나고 싶지 않았다. 그래서 H에게 물었다. 왜 나랑 결혼했느냐고. 그는 나의 날뛰는 정서를 버거워한다. 나도 그 사실을 잘 알고 있다. 왜 굳이 그 버거움을 감당하기로 했느냐, 물었을 때 H는 몸을 요상하게 반절 접은 채 침대에 누워 말했다.

'그냥, 사랑하니까. 같이 있으면 최고로 재밌으니까.'

그의 옆구리에 붙은 고양이가 하품을 쩌억 했다. 하나도 로맨틱하지 않은 풍경이었다. 하지만 흐흐 바보 같은 웃음이 났다. 그의 대답이 우리의 유일한 닮은 구석이기에 그랬다. 나 역시 같은 이유로 그와 결혼했으니.


나와 H는 법적으로도 사회적으로도 온전한 부부이지만 그것이 실질적것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우리가 온전한 부부가 되는 데에는 더 많은 시간이 필요할 것이다. 사실 그건 남은 평생의 과제다. 인간은 성장하지 않는 순간부터 우울해진다는 누군가의 말처럼, 배움을 멈추는 순간부터 노인이 된다는 다른 이의 말처럼, 부부 관계 역시 서로를 위한 성장을 멈추는 순간부터 무너질 것이다. 화려한 이벤트가 끝나면 노래 '오르막길'의 가삿말처럼 웃음기를 사라지게 하는 가파른 길이 펼쳐질 것이고 그 길을 걸으며 서로의 손을 놓치는 순간도 올 것이다. 그리고 그 모든 순간에 나와 H는 기억해야 할 테다. 개리 채프먼이 말한 '자연스럽게 되지 않는 행동'을 하는 일. 뜨겁지는 않지만 식지 않는 온기를 위하여 익숙치 않은 행동을 습관으로 만드는 일. 결국은 '지는 사람'이 되는 일. 사랑을 위하여. 오직 사랑을 위하여.


우리를 묶어두고 있는 것이 법이 아니고, 아이가 아니고, 세상의 선입견에 대한 불안이 아니고, 오직 서로의 마음이기를 바라며 우리는 기꺼이 같은 방향을 선택한다.






함께 먹는 야식을 주 1회로 줄였다.

청소의 합의점도 찾았다. 아주 간단했다.

- 나는 H에게 해야 할 일을 디테일하게 요청한다.

- H는 그 즉시 행동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가 스스로 성에 차지 않아 집안일의 칠 할을 하게 되지만 딱히 불편한 생각은 들지 않는다. 그것만으로 평화다. 평화가 별건가. 내 마음이 평안하면 그게 바로 평화인걸. 남은 세월의 꾸준한 평화를 위해, 얼마나 더 많은 합의점이 필요할지 기대가 된다. 사실은 걱정도 조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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