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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지수연 Jul 31. 2022

집주인의 이름이 PD수첩에


첫 번째 집 _ 서울시 동대문구에서 대학을 졸업한 H 학교 앞 원룸에서 4년의 시간을 보냈다. 5평 남짓한 공간에 개인 화장실이 딸려있었으며 세탁실과 주방이 공용이라는 점을 제외하면 큰 불편은 없는 집이었다. 우리는 그 공간에서 그의 대학 시절 마지막 일 년을 함께했다. 함께 살지는 않았지만 '누구의 공간'이라는 경계가 희미해질 만큼 친숙해졌다. 어찌 보면 청춘물의 도입부 같은 날들이었다.




두 번째 집 _ H의 첫 직장은 신용산역 부근이었다. 일찌감치 결혼을 염두에 두고 있었기에 혼자 살기에 무난하면서 신혼집으로도 나쁘지 않을 곳을 물색했다. 회사 인근의 주택가에도 예산에 맞는 매물은 있었다. 하지만 구옥이었다. 도배 장판만 깨끗하게 해서 살아도 나쁘지 않겠다 싶었던 나의 생각과는 달리 H는 구옥을 꺼렸고 우리의 고려 반경은 넓어졌다. 정해진 예산 안에 쏙 들어오면서도 신축이며 투룸인 곳. 그렇게 우리는 중구에서 용산구로, 영등포구에서 강서구로 시야를 옮겼다. 끝내 고른 집은 강서구 화곡동에 있는 준신축 빌라, 까치산역에서 오르막을 한 고개 올라가면 만날 수 있는 집이었다.


거실 창 밖은 건물로 가려져 있었지만 해는 적당히 들었고 주방이 좁디좁다는 단점만 빼면 집 자체는 완벽했다. 투룸에 작은 거실과 세탁실과 창고와 화장실이 잘 갖추어져 있는 깨끗한 집이었다. 집을 보러 가니 비슷한 나이대의 신혼부부가 우리를 반겼다. 부부 중 남편이 차로 우리를 데리러 나왔다. 누가 봐도 좋지 않은 입지를 가리려는 노력이었다. 부산한 역 주변과 경사가 상당한 오르막. 모르고 있던 건 아니었다. 하지만 주어진 돈에 이 정도의 집을 얻으려면 어느 정도 입지를 포기해야 한다는 사실은 누가 설명해주지 않아도 본능이 알아채는 상식이었기에, 우리는 눈을 가렸다. 무엇보다 H가 그 집을 마음에 쏙 들어했다. H가 좋아하니 나도 좋았다. 우리는 뒤이어 잡혀있던 다른 집의 방문 일정을 취소하고 이 집을 계약을 하겠노라 부부에게 통보했다. 부부 중 아내는 그 말을 듣고 울었다. 세입자를 구하고 나가야 하는데 오랜 시간 집이 안 빠져서 마음이 너무 힘들었다고, 그래서 눈물이 난다고 했다. 그때는 그 말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몰랐다. 우리는 세상 물정 모르는 서른 안팎의 어른이들일 뿐이었다.


집주인의 대리인이라는 사람에게서 연락이 온 건 H가 그곳에 산지 일 년 반이 지났을 무렵이었다.


안녕하세요. 임대인 ㅇㅇㅇ 세입자님. PD수첩 방영 이후 임대업 법무가 마비되어 전세자금대출이 불가하여 차후 채권자가 가압류 및 경매가 진행될 경우 세입자 피해가 불가피하게 될 것을 예상합니다. 안심보험에 가입되어있지 않으신 세입자 분들은 협의하에 소유권 이전 및 방안을 구하고자 합니다. 네이버에 ㅇㅇㅇ 검색해 보시고 상담받고자 하시는 분은 문자 메시지로 주시면 순차적으로 연락드리겠습니다.


해석하자면 결국 이런 뜻이었다.


당신의 집주인은 갭투자 사기 가해자입니다. 사기의 규모가 커 방송에까지 방영되었습니다. 고로 전세보증금은 돌려드릴 수 없습니다. 전세가로 집을 매매하시든 세입자를 구하고 빠지시든 소송을 하시든 알아서 해결하십시오.


집주인은 소유 주택만 500채가 넘는 사람으로 우리나라의 주택 1위 보유자였다.


H로부터 연락을 받은 늦은 저녁, 나는 택시를 타고 곧장 달려 화곡동으로 향했다. 현관문이 열림과 동시에 으와앙 울며 H를 끌어안았다. 덤덤하려 노력하는 H의 모습이 더 서글펐다. 전세보증보험도 가입하지 않았으며 특별한 대책도 없었다. 피해자가 있는 일은 세입자를 구하거나 집을 매매하는 일뿐이었다. 그제야 생각이 났다. 우리를 반기던 신혼부부와 집 계약 소식을 듣고 눈물을 뚝뚝 떨구던 아내의 모습이. 모델하우스처럼 깨끗한 집과 화사한 가랜다가 걸려있던 벽의 의미가 고스란히 느껴졌다.



갭투자 사기에 대한 연락을 받고 우리가 가장 먼저 했던 일 역시 청소였다. 온 집을 쓸고 닦아 때 묻은 흔적을 지웠다. 가구를 반듯하게 놓고 잡동사니를 치워 넣는 우리의 손길에 눈물을 닦아내던 신혼부부의 손길이 겹쳐 보였다. 예쁜 구도로 그럴듯하게 사진을 찍어 올리면 한 명이라도 더 집을 보러 와주려나. 우리가 또 다른 피해자를 만들어내는 건 아닐까. 그렇게 마음을 졸인 시간이 몇 주였다.


결국 집은 아무도 보러 오지 않았다. 대신 어느 부동산에서 연락이 왔다. 이번 사건에 얽힌 주택 중 위치와 매물 가치가 좋은 집들만 우선으로 올려두었는데 당신이 살고 있는 집을 사고 싶다는 임대사업자가 있으니 마음을 놓으시라는 연락이었다. 며칠 후 임대사업자는 계약을 완료했다. 집을 보러 오지도 않았다. 아무렴 어떤가. 코끼리가 집을 매매하러 온다고 해도 우리는 현관을 닦아놨을 것이다. '명의가 변경되었으니 염려하지 마시고 이사를 원하면 보증금을 빼줄 테니 날짜를 이야기하라'는 새 집주인의 목소리는 봄날의 벚꽃보다 화사했다. 우리는 말했다. 


당장 다음 달에 나가고 싶습니다. 

갭투자의 지옥은 그렇게 끝이 났다.




세 번째 집 _ 각자의 직장에 적당히 가까운 세 번째 집으로 이사를 왔다. 이곳에서 우리는 정식으로 부부가 되었고 적당히 만족스러운 삶을 살고 있다. 이제 부부에서 부모가 되려 네 번째 집을 알아보는 과정이지만 집이라는 것도 사람과 사람 사이의 인연처럼 주어진 운명이라는 게 있어서 어느 때에 어느 곳을 만나게 될지는 알 수가 없다.




얼마 전 우연히 갭투자 사기를 겪은 피해자의 글을 보았다. 피해 당시 어찌할 방법이 없어 집을 강제로 매매했고 3년이 흐른 지금 드디어 집을 처분했다는 내용이었다. 그동안의 마음고생은 물론이며 많은 인생 계획 차질을 빚어야 했던 이야기를 보니 수년 전 일이 어제 일처럼 떠올랐다. 고만고만한 지역의 고만고만한 보증금. 피해자의 대부분이 신혼부부거나 사회초년생이거나 주머니 사정이 넉넉지 않은 소시민들이었다. 우리 이전의 신혼부부가 그랬듯 우리 역시 천운으로 고난을 벗어났지만 그렇지 못한 사람들의 앞날을 생각하면 내 마음 역시 아득해진다. 다양한 방법으로 만들어지는 피해자들의 눈물과 이기심의 시발점을 생각하며 고개를 저을 수밖에 없었다.


갭투자 피해자들의 글에는 비슷한 뉘앙스가 여러 번 등장했다. '설레며 가꾸어 나가던 집이 타인으로 인해 꼴도 보기 싫은 집이 되었다는 사실이 너무 속상하다'는 내용이었다. 잠시나마 같은 일을 겪은 피해자로서 나 역시 옅은 공감에 이르렀다. 집에 담긴 추억을 한 보따리에 쑤셔 넣어 '꼴도 보기 싫은 집'으로 치부해 버리는 슬픔은 생각보다 더 서글프다. 타인에 의한 일. 그것도 비도덕적인 방식으로 이익을 창출하는 가해자에 의한 일이라면 더더욱 그렇다.


하재영 작가는 저서 '친애하는 나의 집에게'를 통해 자신의 지나온 집에 대해 기록했다. 대구, 고양시, 서울을 거치며 아이가 되고 어른이 되고 아내가 되는 작가의 시간과 공간. 그것은 집에 대한 기록이었지만 오로지 집에 대한 기록은 아니었다. 그렇다. 집이란 그런 것이다. 집이라 불리지만 결코 물리적인 집으로서만 존재할 수 없는 것. 결국은 삶의 기록인 것. 집과 집과 집을 거치는 모든 시간에 어른이 되고 아내가 되고 부모가 되어 결국은 책 한 권으로 만들어도 종잇장이 여유롭지 않은 것. 그러니 집을 미워하는 일은 결국 나의 지난 삶을 미워하는 일이 된다.


자신의 손발에 피를 묻히지 않고 타인을 아프게 하는 사람들로부터 개인이 보호받을 수 있다면 큰 기쁨이겠으나, 그런 세상이 오지 않아도 혹은 무엇을 겪어도 우리는 살아야 한다. 피할 수 있는 것은 피하면 좋겠지만 그러지 못했다면 나를 통과하는 모든 시간을 끌어안고 안아주는 수밖에. 다행이라면 다행이다. 삶의 대부분의 것은 시간이 해결해주며 다시 웃는 날의 방문도 그리 박하지는 않으니 말이다. 수년 전 H를 부여잡고 통곡을 하던 나는 지금 별 다른 것 없이 기분이 썩 괜찮은 밤이라는 이유로 글을 쓴다. 결국은 그런 밤이 온다. 별 것 없이 기분이 썩 괜찮은 밤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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