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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지수연 Sep 18. 2022

혼자라면 선택하지 않았을 것들

여행을 즐기는 사람과 집을 사랑하는 사람이 연인이 된다면 어떨까.

만화를 좋아하는 사람과 철학을 좋아하는 사람이 부부가 된다면 어떨까.




익숙한 것은 안락하다. 안락함으로부터의 이탈이라니. 그런 짓을 왜 하겠는가. 몇몇 사람들은 고개를 내저을 것이다. 나 역시도 그렇다. 새로운 것을 마주한다는 건 기억하고 적응해야 하는 일이다. 이보다 귀찮은 것이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혼자라면 하지 않았을 것들에 내던져졌다. 내가 스스로 뛰어든 것이나 다름없다. 자신의 의지로 누군가의 아내가 되었기 때문이다. 하나의 가정을 이루기로 약속한 이상 나는 배우자의 속성을 함께 나누고 적응해야 한다.


H는 영화 매니아다. 버드맨과 인디에어와 머니볼은 수십 번씩 반복해서 보았다고 한다. 그도 그럴 것이, 일을 할 때나 설거지를 할 때도 H는 늘 시야에 들어오는 한 구석에 영화를 틀어놓는다. 소리가 나오지 않아도 신경 쓰지 않는다. 모든 대사를 다 외웠기 때문이다. 같은 작품을 두 번 보는 일이 거의 없는 나로서는 참 생소한 습관이다. 애초에 나는 드라마나 영화를 즐겨보지 않는다. 같은 작품이 드라마와 영화와 책으로 전부 나와있다면 책으로만 본다. 대단한 책벌레라서 그런 건 전혀 아니다. 그냥 그쪽으로 손이 가는 성향이다.


결혼 후 H는 명작 영화를 소개하는 재미에 빠졌다. 대상은 당연히 영화에 무지몽매한 그의 아내다. 예고편을 보여주거나 줄거리를 설명하면서 H가 묻는다. 어때? 재미있어 보이지? 언제나 그랬듯 나는 시답잖은 반응을 한다. 글쎄. 그런 것 같기도 하고. 하지만 H는 개의치 않는다. 노트북은 시원찮다며 거대한 데스크탑 스크린을 침대까지 끌고 와 영화를 켜거나 티켓을 예매한다. 그리고 영화가 끝나면 상황은 뒤바뀌어 있다. 나는 감격한 눈초리로 H에게 묻는다. 이 부분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해? 그 대사는 어땠어? 이런 세계관을 도대체 어떻게 상상했을까. 시간이 얼마간 흐르면 또 같은 일이 반복된다. H는 나에게 영화를 권하고 나는 떨떠름하게 영화를 본 후 그에 대한 감격을 늘어놓는다. 이상한 전개 같지만 그렇다. 보면 좋은데 딱히 보고 싶지 않은 이 기분을 뭐라고 할 수 있을까. 운동을 하기 전후와 비슷한 기분이랄까.


H는 아내의 예술 계몽 운동에 재미가 들렸는지 최근 들어서는 자신의 취향에 맞는 책을 사다가 권하는 취미까지 생겼다. 대개 카페에서 사 오는 책이라 카페 주인의 1차 선정, H의 2차 선정을 거친 것이 다행이라면 다행이다.



익숙함으로부터의 이탈은 언제나 특별함의 소재가 된다. 소설이나 영화에도 심지어 오랜만에 만난 친구의 이야기에도 심심찮게 등장한다. 그건 이탈이 손쉽게 겪을 수 있는 일이 아니라는 뜻이기도 하다. 손쉬운 것은 경계와 패턴을 벗어나지 않는 것이다. 소셜 미디어조차 알고리즘으로 사용자에 맞춰 정보를 제공하는 시대에, 익숙함 안에서 지내는 것만큼 안락한 일은 없다.


나의 유튜브는 대개 동물과 지식인들의 강의와 음악 모음집으로 이루어져 있는데 어느 날 H가 자동차 영상을 하나 보여준 이후로 우후죽순 차에 대한 영상들이 올라오기 시작했다. H가 즐겨 본다는 코미디 영상을 함께 본 이후로는 완전히 다른 사람의 유튜브가 되었다. 내가 좋아하는 고양이 영상 아래에 H가 좋아하는 개그 채널의 신규 영상이 나란히 있는 것을 보며 직관적으로 알 수 있었다. 타인의 취미를 함께 하고 취향을 받아들인다는 것은 알고리즘의 재구성과 같다. 자신의 것과 타인의 것을 구분하는 데에 결벽이 있는 사람이라면 보는 것만으로 피곤한 광경일 테지만 나는 괜찮았다. 재미있었다. 딱히 결벽이 있지도 않을뿐더러 틀 안에 갇혀 살기에는 너무 두더지처럼 고개를 내미는 인간이기에 그렇기도 하다.




화가 김환기와 아내 김향안의 이야기는 책으로도 강연으로도 다루어질 만큼 유명하다. 정현주 작가의 저서 '우리들의 파리가 생각나요'에 따르면 김향안은 글을 쓰는 사람이었음에도 미술에 대해 깊이 공부했고 그 모습을 의아해하는 사람들에게 이렇게 말했다고 한다. "남편이 화가인데 아내가 미술에 대해서 아무것도 모른다면 그 가정생활은 절름발이가 되지 않겠습니까? 부부란 서로 호흡을 공감하는 데서 완전히 일심동체가 되는 것입니다."


부부가 된다는 것은 조율이 필요한 상황이 와르르 쏟아져 내린다는 의미다. 하기 싫은 것을 해야 하는 순간만큼이나 낯선 세상에 적응해야 하는 순간이 흔하다. 지금까지 편하고 괜찮았는데 굳이 알아야 할까, 싶은 생각은 탁 접어 넣는 것이 가장 지혜로운 길이다. 오랜 시간이 흘러도 애틋한 관계를 유지하는 부부의 가장 큰 공통점은 '대화'라고 한다. 대화가 이루어진다는 것은 공유할 주제가 많다는 의미이고 그건 서로의 관심사가 비슷하다는 뜻이다. 결국 상대의 관심사에 함께 관심을 두는 것이 행복의 비결이라는 것이다.


성숙하고 지혜로운 선배에게 가정의 규율을 들었다. 종교 헌금에 대한 이야기였다. 그들은 같은 종교를 가진 이들끼리 결혼을 했어도 규칙이 필요하다 여겼고 몇 가지의 합의책을 세웠다.  한 구절은 이렇다.


남편과 아내가 내고자 하는 헌금의 액수가 다를 시 더 적은 쪽을 선택할 것.
헌금으로 인하여 부부의 마음을 어렵게 하지 말 것.
우리가 믿는 신은, 헌금보다 '부부가 서로 사랑하는 것'을 더 기뻐하는 분임을 잊지 말 것.


종교에 관한 이야기이지만 부부 생활 전반을 통찰하는 규율이었다. '상대의 마음을 헤아려 한 마음이 되게 하는 것'




H가 사 온, 채식에 대한 책을 재미있게 읽고 있다. H는 '어서 마무리까지 읽어야 비건에 대해 대화를 할 수 있다'며 나를 들들 볶고 있다. 즐겁게 읽던 다른 책의 흐름은 끊겼지만 나쁘지 않은 기분이다. 꾸준히 들볶이고 싶은 마음이 든다는 건, 서로를 통해 삶의 지경 넓어지고 있다는 의미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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