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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재은 Mar 27. 2024

반짝거리는 순간들 _ <착한 동생 삽니다>

_ by 김리하 : #형제자매


4살 터울이지만 친구 같이 지내는 두 딸이 있습니다. 같은 취향을 공유하고 있어 늘 이야깃거리가 많은 아이들이지요. 주말이면 대체로 한 방에 모여 무언가를 하다가 남편과 내가 잠을 자러 들어가면 기다렸다는 듯이 거실로 나와 좋아하는 영화나 영상을 보며 까르르, 낮 같이 밝은 새벽을 보내곤 해요. 그토록 늦게 자면 분명 또 한낮에 일어날 테지만 얼른 자라고 하기보다는 웃음소리에 잠들기 전까지 뭉근한 마음이 듭니다.


물론 우리 딸들도 어릴 때부터 쭉 이래왔던 건 아니에요. 여느 집처럼 둘만의 티키타카와 전쟁을 오고 가는 지난 시간들이 있었습니다. 기쁨이. 우리 가족에 처음 찾아온 보물 같은 아기였기에 모두에게 기쁨이 되었고, 살아가며 기쁜 일들이 충만하라는 의미에서 '기쁨이'라는 태명을 지어줬습니다. 기쁨이는 정말 가족들이 힘든 시기에 안고 일어서고 걷는 것만으로도 커다란 기쁨을 주었고 대식구의 사랑을 담뿍 받았습니다. 그러다가 '장군이'를 만나게 되었지요. 장군이. 이전에 큰 슬픔이 있었기에 무엇보다도 건강하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씩씩한 태명을 지어주었습니다. 살아가면서 어떤 힘든 일이 찾아와도 장군처럼 당당하고 용감하게 살아갈 수 있기를 바라면서요.


기쁨이는 장군이를 참 많이 기다렸어요. 드디어 동생이 생겼다는 기쁨으로 매일 책을 읽어주고 유치원 벼룩시장에서도 자기 것보다 태어나지도 않은 장군이의 선물을 챙겨 올 정도였으니까요. 사랑 가득한 편지를 쓰고 또 그리고, 태어나면 어떻게 해줄지 많은 약속들을 스스로 했습니다. 하지만 기쁨이는 몰랐던 거예요. 자신이 받던 가득한 사랑이 고스란히 장군이에게 옮겨갈 줄은요. 물론 어른들의 마음은 같은 크기의 사랑이 두 개로 나누어진 것뿐이었지만 어린 기쁨이는 얼마나 큰 상실감을 느꼈을까요.


모두가 아기 장군이에게로 시선이 쏠릴 때 남편만큼은 첫사랑을 잊지 않고 챙겼습니다. 기쁨이가 사람들 몰래 장군이를 꼬집거나 발로 꾹 누르기도 했다는 걸 알았으면서도 그걸 수십 년이 지난 얼마 전에서야 이야기하는 걸 봐도 알 수 있지요. 그래서인지 성인이 된 기쁨이는 아빠를 무척 좋아하고 아빠 같은 사람이 이상형이라고도 합니다.


기쁨이와 장군이는 크고 작은 싸움 속에서 서로 다시는 이야기하지 않겠다고 호기롭게 말하다가 얼마 있다 또 같이 큭큭 대기를 무수히 많이 했지만 장군이가 중학생, 기쁨이가 고등학생이 되었을 무렵부터 조금씩 특별한 관계가 되기 시작했어요. 그러다가 장군이가 고등학생, 기쁨이가 대학생이 되고부터는 친구 같은 사이가 되었지요. 주위를 봐도 같은 성별의 형제자매는 커 가면서 특별해지는 경우가 있는 것 같아요. 물론 서로 일상 대화만 하는 소원한 사이도 있긴 하지만요.


아이들이 싸웠을 때 <내 동생 싸게 팔아요>라는 책을 읽어줬어요. 아이들에게 하고 싶은 이야기는 책으로 넌지시 건네곤 했으니까요. 그런데 아이들도 책을 읽다 보면 엄마의 의도를 알아차려 나중에는 효과가 없더라고요. 그래도 잊을만하면 한 권씩 도서관에서 빌려 왔는데 <착한 동생 삽니다>는 어릴 때 아이들과 읽었던 동화를 떠오르게 했어요. 비슷하면서도 좀 더 깊은 초등학생들의 마음이 표현되어 있는 책입니다.  


지예는 동생 지수 때문에 화산처럼 폭발할 때가 많은 언니예요. 동생 지수가 별 것도 아닌 일에 약한 척 울음을 터뜨리며 엄마에게로 가서 방문을 잠글 때면 어찌나 화가 나는지 그것을 누그러뜨리기 위해 냉장고로 달려갑니다. 냉동실 문을 열면 찬 기운에 기분이 조금씩 풀리기 때문이에요. 지예의 눈에 엄마는 지수만 예뻐하는 것 같았어요. 지예는 억울하고 얄미운 마음에, 착한 동생이 있다면 아끼던 인형과 용돈을 모두 주더라도 사 오고 싶을 정도였지요.


그러던 어느 날 지예는 지수 때문에 엄마에게 혼난 후 냉동실의 바람을 가득 쐬고 얼음까지 와드득 깨 먹은 후손과 발이 꽁꽁 얼기 시작해요. 그야말로 냉동 소녀 꽁꽁이가 된 것이지요. 동생 때문에 이상한 병까지 걸리다니 지예는 동생이 더욱 싫어집니다. 가족을 향한 지예의 마음이 단단히 얼게 된 거예요. 그 속상함도 모른 채 여전히 지수 편만을 드는 엄마에게 지예는 그동안 쌓였던 마음을 모두 쏟아 놓습니다. 그 후 엄마의 사랑이 담긴 쪽지와 선물을 받게 된 지예의 딱딱한 마음은 조금씩 말랑해지기 시작해요.    


모든 관계에서는 진심 어린 소통이 서로의 마음을 여는 열쇠입니다. 아무리 가까운 사이라도 말하지 않고 상대의 마음을 알 수 있는 건 기적 같은 일이니까요.






투명하고 예쁜 유리병에 차곡차곡
담아두고 싶은 순간들이 있다.
지나가고 사라지는 것이 못내 아쉬운 순간들,
너무 반짝거리고 소중해서
절대 잊지 않고 싶은 순간들,
하나하나 마음을 담아
꾹꾹 눌러가며 접어낸 종이학처럼.

책상이나 선반 어딘가
잘 보이는 곳에 얌전히 놓아두고,
보고 싶을 때마나 꺼내 보고 싶은
그런 순간들이 있다.

엄마 몰래 동생이랑 화장품을 바르고
엄마 옷을 입고 놀던 모습
(…)


- <혼자가 익숙하지 못한 사람>, 예슬




✐ 형제자매와의 반짝거리는 순간들을 시로 써 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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