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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재은 Aug 28. 2024

바닷빛

_ 하늘을 담는 바다


# 바닷빛
: 멀리서 바라본 바다와 같이 푸른빛.

# 까치놀
: 석양을 받은 먼바다의 수평선에서 번득거리는 노을



나의 그릇이 넘쳐 버린 날.

마음이 너덜너덜해진 샌드백처럼 되어버린 날에는

그리운 바다로 갑니다.

그곳에 가면 묵혀 두었던 감정을 꺼내어

문장에 담을 수 있으니까요.


서울에서 태어나 40년 이상을 살아가다 차로 10분이면 바다를 볼 수 있는 곳으로 이사를 왔습니다. 사람들은 오랜 터전을 떠나기 쉽지 않은데 특별한 이유가 있는지 물었고, 나는 어쩌다 보니 그렇게 되었다며 웃었지요. 떠나온 곳에 대한 그리움은 없습니다. 그곳은 내게 고향처럼 여겨지지 않고 그저 벗어나고 싶은 답답함만을 안겼습니다. 돌이켜 보면 짙은 아픔으로 자리매김한 그 동네를 떠나, 나는 처음으로 내가 살고 싶은 곳을 선택했습니다.

  

도회지의 풍경이 편안해서 서글픈 도시 사람이 도시와 바다가 공존하는 동네에 살게 되다니. 서울에서 살 때는 바다를 보려면 계획을 세워야 했는데 이제는 마음만 먹으면 바닷빛에 스미는 노을을 볼 수 있습니다. 일하는 곳에서도 창밖으로 멀리 바다 한 조각이 보입니다. 물이 무서워 수영도 배우다가 킥판을 놓지 못한 채 그만두었지만 하염없이 바다 바라보기는 사랑합니다.


물결에 밀려 보드랗게 쌓인 모래, 그 고운 목새를 바라보며 바닷가를 걸을 수 있는 곳은 아니지만, 까치놀 아름다운 바다 공원의 카페에서 글을 쓸 수 있는 것은 내가 이 동네를 좋아하는 이유 중 하나입니다. 그리하여 마음이 소란한 날이면 바다를 만나러 갑니다. 어떤 날은 출근하러 가는 길에 차의 핸들을 돌리기도 해요. 조금씩 땅으로 메워지며 풍경이 인위적으로 바뀌는 것은 아쉽지만, 잠시라도 숨을 고를 수 있는 안식처가 존재함에 감사하게 되는 일상입니다. 새로운 보금자리에서도 어느덧 9년, 이제는 갈매기가 비둘기처럼 친숙해졌네요.     


하늘을 담는 바다. 바다는 하늘빛에 따라 제 빛을 담습니다. 나의 마음 빛에 따라서도 색이 달리 느껴지는 것을 보면 그 무한한 포용에 경탄하게 됩니다. 어디가 하늘이고 바다인지 모르는, 하늘과 바다의 경계가 허물어지는 순간을 마주하면 찬란한 풍경에 녹아듭니다. 가득 싣고 온 삶의 무게도 파도와 함께 일렁이다 보면 어느새 마음에 고요가 깃듭니다. 한없이 걸을 수 있는 바닷가는 혼자여도 좋고 소중한 사람과 함께여도 기쁩니다.


여름 바다와 겨울 바다. 그리고 봄 바다와 가을 바다.

모든 계절의 바다를 그리다 보니

또다시 마음은 그곳을 향해 달려갑니다.

바다 앞에서라면 온종일 부리는 나태함에도

살아감의 등대를 찾을 수 있으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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