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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재은 Oct 30. 2024

푸른빛

_ 청춘


# 푸른빛
 : 맑은 가을 하늘이나 깊은 바다, 풀의 빛깔과 같이 맑고 선명한 빛.



통기타의 선율은 청춘을 불러옵니다. 포크밴드 ‘동물원’과 김광석의 노래는 설렘과 두려움, 풋풋함과 아픔으로 심장이 고동치던 그 시절을 떠오르게 하지요. 지하철을 오가며 혹은 늦은 밤까지 얼마나 반복해 들었던지 카세트테이프의 필름이 늘어져 속상했던 적도 많았어요. 그러면 소리가 느리게 재생되는데 소중한 사람이 녹음해 준 테이프를 되살리기 위해 냉동실에 넣어두었던 기억도 새록새록하네요.


소극장 콘서트를 그때만큼 좋아하고 자주 갔던 적도 없습니다. 모두 그들의 노래였고요. 차분한 어조의 토크와 이어지는 담백한 노래들은 잠언처럼 청춘에 스며들었습니다. 시작만으로도 마음을 일렁이게 하는 기타와 하모니카. 그 속에 담긴 나의 이야기 같던 노래들. 조금 먼저 어른의 길을 걷고 있던 그들의 청춘을 보며 배우고 사람답게 살아갈 용기를 얻었지요.


첫아이를 가져 배가 산처럼 불러왔을 때도 소극장의 작은 의자에서 콩콩거리는 기쁨이의 태동을 느끼며 크리스마스이브를 보냈습니다. 늦은 시각 공연장을 나오는데 함박눈이 펑펑 내리고 있었어요. 차가 끊겨 눈이 수북이 쌓인 새하얀 도로에서 택시 잡느라 애쓰면서도 반려자의 손을 잡고 음악의 여운에 취해 마냥 좋았던 추억도 있습니다.


몇 년 전에는 책장을 정리하다 대학 시절 동아리 문집을 발견했습니다. 동아리 방에는 '날적이'가 있었는데, 그 노트에 우리는 자유롭게 글을 남기곤 했지요. 대부분은 짧은 메모였지만 누군가는 자작시나 일기 같은 글을 적어두기도 했어요. 그것으로 만든 문집들을 보관하고 있었는데 그중 ‘10년 후의 내 모습은?’이라는 앙케트가 실려 있는 것을 보게 되었어요. 몇십 년 만에 이름만으로도 반가운 선후배의 글을 보니 기억 저편의 그들이 시공간을 넘어 찾아와 준 듯했습니다. 빙그레 미소 지으며 함께 한 청춘을 떠올리다가 낯익은 필체도 발견했고요.


“나를 잃지 않고 살아갔음...”


장난스레 적힌 많은 글 가운데 스무 살의 나를 만난 것입니다. 웃음을 자아내는 위트 있는 글 사이 섬처럼 떠 있는 나의 진지함에 웃음이 났어요. 오글거리기도 하고 말이에요. 찬찬히 떠올려 보니 이십 대에도 나는 무언가 눈에 보이는 성취가 아닌, 나를 잃지 않고 살아가는 삶을 꿈꾸었네요. 그 막연한 바람을 위해 어떻게 살아가는 것이 나의 가슴을 뛰게 만드는지 고민했고, 인생의 선택에 있어서도 그것이 항상 우선순위가 되었습니다. 지금의 나는 그런 삶을 살아가고 있을까요. 스무 살의 내가 묻는 것 같습니다.


시시때때로 삶의 고난은 거대한 폭풍처럼 몰려와 인생을 사정없이 쥐고 흔들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시절의 빛깔과 닮은 모습으로 살아가려 애면글면하고 있습니다. 살아내려 하다 보니 어느새 몸과 마음은 가을빛을 맞이하게 되었네요. 익숙한 공간과 생활을 떠나고 싶으면서도 일상의 패턴을 벗어나는 것에 대해 두려워지기 시작했고요. 그래도 다행입니다. 오랫동안 마음에 담고 이리저리 가늠하다 힘을 잃은 꿈의 날개를 다시 일으켜 세웠으니까요. 가냘퍼진 날개가 마른 잎처럼 떨어져 흩어지기 전에 깨어나게 되어 고마울 따름입니다. 물질적인 건 덜 가져도 귀하고 소중한 것을 위해 삶을 내어주고 있는 나를 안아주고도 싶네요.


사랑과 도전에 대한 쓰라림으로 방황하던 그 시절이, 불확실한 미래를 향한 동질감 속에서 함께 울고 웃을 수 있었던 푸른빛 청춘이 그리워집니다. 청춘 예찬만큼 나이 듦도 찬미하지만 세월이 흘러감에 따라 필요에 의해 관계를 나누고 정리하는 것이 보편화되는 게 서글퍼지기도 하네요. 문득 시절 인연들의 안부가 궁금해지며 그들의 삶이 무탈하기를 빌게 됩니다.


쓸쓸히 있다가 사라질지라도 어느 서가에 쓸쓸히 있다가 사라질지라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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