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꿈꾸다

by 유재은


동네 서점에 책이 입고되자마자 막내가 제일 먼저 발견하고 사진을 여러 장 보내왔다. 그중 베스트셀러 1위 사진이 있었는데, 나를 닮아 내향적인 딸이 이 사진을 찍기 위해 얼마나 큰 용기를 내었는지 알기에 뭉클해졌다. 베스트셀러에 대한 소망은 가져본 적이 없지만 엄마의 꿈을 향한 딸의 마음이 얼마나 고마웠던지. 책에 대한 새로운 소식을 발견할 때마다 사진을 보내주고 졸업한 대학교에도 희망 도서를 신청해 도착했다며 알려주는 큰 딸의 다정함. 방송 인터뷰를 하게 될 거라며 그러면 자신의 이야기를 꼭 하라는 남편의 응원. 이모의 책을 읽고 싶다며 먼 타국에서도 항공 택배로 책을 주문해 열독하고 있는 조카와 여동생의 마음. 벌써 두 번이나 읽으셨다며 아파트 작은 도서관에도 기증하시는 등 홍보 요정이 되어주시는 엄마의 사랑이 추운 가을 환한 빛으로 스며든다.


책이 나온 첫 주에는 가족들과 함께 광화문 교보문고 나들이를 갔다. 그 거대한 책숲에 작은 나의 책이 초라해 보였음을 첫 책 출간 때 경험했기에 이번에는 방문 전부터 마음을 다졌다. 이렇듯 아픈 기억은 무용하지 않게 남아 나를 의연하게 만들어 준다. 덕분에 가족이 든든하게 처음을 함께 나눈다는 소중한 행복을 온전히 누릴 수 있었다. 덤으로 나의 책을 토닥토닥 가만히 쓰다듬으며 마음으로 말을 건네는 여유까지 생기고 말이다.


'꿈꾸다'는 말을 좋아한다. 여전히 꿈꿀 수 있는 나를 좋아한다. 꿈을 향한 길에 넘어지고 주저앉으면 그늘진 마음에는 슬픔이 차오르지만, 꿈이 있기에 삶이 따스한 힘을 얻는다. 얼마 전 그런 내 마음을 꼭 닮은 노래를 다시 듣게 되었다. 언젠가 이 노래를 알게 되었을 때도 가사가 좋다고 생각했는데, 최근 '우리들의 발라드'라는 오디션 프로그램 덕분에 다시 무한 재생하고 있다. 김윤아의 원곡도 좋은데 이서영의 노래를 들었을 때는 눈물이 흘렀다. 고요하고 담담히 건네는 그 한 마디 한 마디가 어찌나 아리도록 마음에 와닿던지. 꿈을 향한 길을 걷는 이들이라면 그 시린 생의 궤적을 절절히 느끼고 있지 않을까.


꿈에 관한 잠언이나 글들은 긍정적인 의미가 주를 이루지만, 이 노래의 가사는 꿈이 지닌 빛과 그늘을 함께 담고 있어 특별했다. 꿈은 '외로워도 다시 걷게 해 주는 비길 데 없는 위안'이지만 '괴로워도 벗어 둘 수 없는 굴레로 가장 무거운 짐'이 된다는 첫 소절부터 마음에 시린 눈을 내리게 한다. 꿈이 있기에 삶을 살아낼 수 있지만, 아무리 노력해도 이룰 수 없는 꿈은 '초라한 날 건조하게 비추는 무서운 거울'이라는 노랫말처럼 스스로를 한없이 작게 만든다. 그러니 문득 '다 버리고, 다 털어버리고, 다 지우고, 다 잊어버리고, 다시 시작하고 싶다'는 생각으로 생을 주저앉히기도 하지만, 또다시 '작고 따뜻하며 버릴 수 없는 애처로운 꿈을 소중하게 품에 안게' 한다. 가사 하나하나가 절절하게 내 마음과 같아서, 꿈길을 걸어오며 느낀 것과 꼭 닮아서 들을 때마다 울컥해진다. 노래는 절정에 다다르면 '간절하게 원한다면 모두 이뤄질 거라 말하지 말라'라고 외친다. 그렇다면 이루지 못하고 있는 '나의 꿈은 꿈이 아닌 것처럼' 여겨지니 말이다.


꿈은 나를 위태롭게 만들기도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꿈이 있기에 살아갈 수 있다. 마침내 이루어져 환희로 빛나는 순간보다, 그 지난한 과정 속 스스로를 안아주는 마음이 꿈을 더욱 눈부시게 해주는 것이 아닐까. 그렇게 꿈꾸다 주저앉고, 또다시 꿈꾸고 멈추다 다시 나아가기를 7년. 꿈이 건네준 반짝이는 위로가 더없이 감사하다. 출간하자마자 라디오에 발췌글이 소개되고, 30년 만에 동아리 선배와 동기와도 연락이 닿았다. 엄마의 서점 비밀 나들이는 이어지고, 엄마 친구분은 책을 읽으며 우시다가 전화를 하셨다고 한다. 사랑 가득한 마음으로 응원해 주는 가족과 친구. 너무나도 따뜻하게 책 홍보를 해주시는 브런치와 블로그의 글벗들. 좋아하는 카페 운영자분의 소중한 선물과 책을 통해 처음으로 인연이 닿게 된 귀한 사람들의 마음. 그야말로 꿈이 꿈같은 일을 선물해 주었다.


그로 인해 현실은 그다지 달라지지 않음을 첫 책을 통해 알고 있다. 그래서 "오랫동안 꿈을 그리면 그 꿈을 닮아간다"라는 앙드레 말로의 말을 좋아한다. '이루어진다'가 아닌 '닮아간다'이니까. 꿈이 준 선물은 또 다른 길을 꿈꾸게 한다. 애틋하고 애처로운 꿈. 그렇게 오래 꿈을 닮아가고 싶다. 꿈같은 삶 속에서.







때로 너의 꿈은

가장 무거운 짐이 되지

괴로워도 벗어 둘 수 없는 굴레


너의 꿈은

때로 비길 데 없는 위안

외로워도 다시 걷게 해 주는


때로

다 버리고

다 털어버리고

다 지우고

다 잊어버리고

다시 시작하고 싶어


때로 너의 꿈은

가장 무서운 거울이라

초라한 널 건조하게 비추지


너의 꿈은

때로 마지막 기대어 울 곳

가진 것 없는 너를 안아주는


간절히

원하는 건 이뤄진다고

이룬 이들은 웃으며 말하지

마치 너의 꿈은 꿈이 아닌 것처럼


소중하게 품에 안고 꿈을 꾸었네

작고 따뜻한 꿈

버릴 수 없는 애처로운 꿈


너의 꿈은

때로 무거운 짐이 되지

괴로워도 벗어 둘 수 없는 굴레


너의 꿈은

때로 비교할 데 없는 위안

외로워도 다시 한번 걷게 해주는


간절하게 원한다면 모두

이뤄질 거라 말하지 마

마치 나의 꿈은

꿈이 아닌 것처럼

마치 나의 꿈은

꿈이 아닌 것처럼



_ '꿈', 김윤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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