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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민진 Jan 07. 2021

추위를 걷는 맛, 겨울의 환(幻)

소재 <겨울>

 커피를 사러 밖에 나서니 햇살에 녹아내린다. 겨울의 낮은 맑고 청명하다. 찬 공기가 코로 들어와 속을 환기한다. 어제 먹은 술이 거센 트림으로 개운함을 고조시킨다. 겨울 공기는 불가사의하고 복잡하며 간단히 설명할 수 없는 기분을 준다. 특히 볕을 쬐며 걸을 땐 강아지의 촐랑대는 엉덩이처럼 생의 활달함을 만끽한다. 겨울 공기를 깊게 들이마시면 손쉬운 표면에 담지 못한, 좀 더 깊은 심층에 자리한 생의 비밀이 섞여 들어온다. 난 그걸 겨울의 환(幻)이라 칭한다.


 고요함에 잠긴 거리가 낯설다. 그 많던 사람들은 다 어디로 간 걸까. 연초인데 마치 망조가 든 디스토피아의 풍광이다. 과거에 흑사병에 사람들이 죽어나갈 때도 이랬겠지. 사람도 없고 차도 없다. 그래도 오래간만에 찬 공기를 마시니 번잡하고 소란스러운 일상에서 놓여나는 기분이다. 매일 청신한 바람을 쐬러 먼 길을 마다하지 않고 동네를 쏘다닌다. 말이 산책이지 거의 행군에 가까운 여정이다. 수 시간을 귀에 팟캐스트를 꽂고 텅 빈 거리를 걸어 다닌다. 코로나로 헬스장을 못 가니 이렇게라도 칼로리를 소모해야 한다. 어젯밤 거울을 보니 뱃살이 존재감을 드러내기 시작했다. 힘을 줘도 자신은 이렇게 엄연하다며 좀처럼 모습을 감추지 않았다. 이대로 배 나온 아저씨로 남을 순 없어. 괄약근에 힘을 주고 빠른 걸음으로 한보 한보에 집중한다. 배가 나오면 할복한다는 다짐으로 성큼성큼. 아이폰 앱으로 소모한 칼로리 체크도 잊지 않는다.

 '김환기' 화백은 대형 캔버스에 점을 찍고 또 찍어 겨울 새벽을 그렸다. <새벽 #3>엔 백설이 하얗게 쌓인 아침 풍경이 보인다. 점과 점 사이에 자연의 질서를 새겼다. 겨울처럼 창백한 하늘과 새벽달 같은 동그라미가 보인다. 마치 태곳적부터 내려온 추위를 머금은 인상이다. 도시의 네온처럼 형형한 점들이 담백하다. 화백은 아늑한 겨울 정취를 그리며 하나라도 더 덜어내고 지우려다가 결국엔 지긋이 점만 눌러 담았다. 이 도시의 겨울이 화폭에 다 담긴듯하다. 진짜 좋은 작품은 그냥 이렇게 오래 지켜보는 것만으로 그 존재를 형언할 수 있다. 화백은 제 이름처럼 시원한 그림을 남겼다. 난 고작 구글 검색으로 현대미술관에 자리한 겨울을 탐했다.


 작가 '가와바타 야스나리'는 소설 <설국>에서 니가타현의 새하얀 겨울을 깨끗하다고 묘사한다. 암, 그렇고말고 겨울은 깨끗하다. 작가는 변태처럼 온천 거리에서 일하는 고마코라는 기생을 보고 발가락도 깨끗하다고 적는다. 정확하게는 발가락 사이의 오목한 부분까지 깨끗하다는데, 난 이상하게 그게 그렇게 관능적으로 느껴졌다. 개인적으로 니가타현처럼 눈의 고장은 아니더라도 강원도행 기차를 좋아한다. 여인의 발가락 정도는 아니고 튼튼한 팔뚝처럼 믿음직스러운 풍경이다. 지난겨울 강릉 경포대 부근을 걸었던 기억이 생생하다. 분명 짙은 푸른색에 가깝게 보이는 겨울이었다. 눈은 없었지만, 커피도 맛있고 거리도 쾌청해서 당시에도 설국의 한 장면을 떠올렸었다. "국경의 긴 터널을 빠져나오자, 눈의 고장이었다. 밤의 밑바닥이 하얘졌다. 신호소에 기차가 멈춰 섰다." 그렇게 겨울 공기는 내게 국경을 넘어서는 기분을 안겨줬다. 국경이 없는 한국에 강원도는 여타 다른 도시와는 다른 경계를 지닌 고장이다. 그건 추운 겨울에만 선명해지는 혹한의 고장이기에 설국으로 불려 마땅하다. 난 동네 공원이건 여느 소설에서건 이제는 세상을 뜬 화가의 화폭에서건 썩 마음에 드는 겨울 풍경을 찾아낸다.


 얼어붙은 몸이 풀리면서 한참 발길을 끊었던 옆 동네까지 걸었다. 아이폰으로 만보에 가까워진 걸음 수를 체크하고 멜론을 틀었다. 확실히 겨울이라 플레이리스트에 서정적인 곡들만 가득하다. 곡이 느려졌다는 건 요즘 내가 헬스장을 가지 못했다는 말과 같다. 매일 산책만 하니 음악이 다 매가리가 없다. 돈과 여자 얘기로 가득한 힙합은 겨울과 거리가 멀다. 쿵쿵거리는 비트에 맞춰 옆자리 장사들과 끙끙 소리를 내며 추위를 잊던 시간이 그립다. 후드티에 이어폰을 꽂고 숨을 몰아쉬던 시절엔 겨울이 없었다. 그리운 게 어디 한둘이냐. 주말 이른 아침 스타벅스 창가 자리에 앉아서 글을 쓰던 자투리 시간도 그립고, 친지들과 새벽까지 갈매기살을 구우며 술잔을 기울이던 시간도 그립다. 한창 술을 먹다 조용히 자리를 뜬 그를 따라나서 미묘한 얘기를 나눴는데. 형형색색으로 핀 핸드폰을 보며 긴요한 분위기에 휩싸이던 그의 얼굴이 떠오른다. 문득 그와 같이 연말을 보내지 못해 애석한 마음이 든다. 같이 세운 계획이 허다한데 다 물거품이 되어버렸다. 그 거품은 오늘 온 눈으로 하얗게 셌다. 난 소망에 불과했던 겨울의 환(幻)에 시달리다 집에 들어왔다. 종소리가 땡 하고 울린다.


 나는 그와 나 사이에 뭔가 특별한 게 있다고 생각했다. 그건 어디에서도 볼 수 없는 진귀한 뭔가라고 믿었던 것 같다. 아벨라르와 엘로이즈가 서신을 주고받았던 것처럼 정신적은 측면으로도 긴요한 것으로 생각했다. 조금 미쳐서는 우리 사이를 단테와 베아트리체만큼이나 간곡한 것으로 떠벌였다. 그렇게 힘나는 대로 안간힘을 내서 적었다. 조금이라도 더 잘 쓰는 게 진짜라고 굳게 믿으며. 어느 한순간도 놓치지 않으려고 토씨 하나하나에 고심하고 애썼다. 기억을 되살려 시인 못지않은 감성으로 두드러진 형용사와 부사를 지어냈다. 우리가 보낸 시간은 의미가 있고 제대로 보여주기만 하면 누구나 공감할만한 드라마가 될 거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계속 붙들고 고치고 미덥지 않은 상태로 올린 글은 아침이 되면 날 부끄럽게 했다. 그건 공허한 목소리에 불과했고, 우리 관계도 사실 남들과 다를 바 없는 뻔한 얘기라는 게 드러났다. 내 글엔 현실의 중력이 모두 제거돼서 있어서 발붙이기 어려웠다. 우리 사이에 오갔던 폭력과 증오는 다 어디에 팔아먹었는지 사라지고 없었다. 점차 허구의 이야기에 가까워지며 그는 끝내 종적을 감췄다. 내가 믿는 방식의 사랑과 진부한 소설 속 장면이 습관처럼 등장했다. 그건 그것대로 의미가 있었지만, 확실히 그는 없었다. 그렇게 글 속에서 그를 훼손하며 잊었다. SNS에 띄워진 그는 현실에서 제 갈 길을 가고 있다. 프로필 사진 속의 그는 귀중한 시간을 축하하고 있다. 같은 사지만 보고 있으니 그의 행복을 박제한 것처럼 인위적으로 보인다. 내가 모르는 그의 표정도 있던가. 아무것도 없어질까 두려워 부득불 뭔가를 적어낸 나를 초라하게 만드는 미소다.


 굽은 등으로 노트북을 쳐다보며 흩어진 기억을 모아 읽을만한 문장으로 바꾸는 게 내 일이다. 미간은 점점 더 구겨지고, 허벅지는 시리지만 내가 원하는 바다. 공들여 쓴 문장에 갇힌 채 의미 없이 사그라드는 꼴이 안쓰럽지만 그래도 쓰면 좀 낫다. 형체가 불분명한 감정이 난무하는 글은 어딘지 모르게 먼바다를 부유하는 거무죽죽한 기름띠 같다. 난 그걸 되살리려 몸을 웅크리고 문장을 골라보지만 한 사람에게만 폭발적으로 몰입된 글은 일시적일 수밖에 없다. 한때는 서로 최선을 다했던 그 마음에 감사한 마음을 적고 싶었지만 뜻대로 되진 않았다. 종결 부호를 어떻게 찍어야 하는지 몰라 급히 창을 닫았다. 창밖에는 여전히 눈이 내린다. 연인을 위하고 새로운 시작을 축복하는 흰색 가루가 휘날린다.


 우리의 눈부신 시절은 이제 다 갔다. 현실에 켜켜이 쌓인 숙제들이 먼지처럼 내 주위를 부유한다. 출근, 식사, 회의, 커피 잔뜩, 퇴근 후 독서, 운동 후의 지질한 글쓰기. 이제 그에 관한 글도 쓸 만큼 다 쓴 것 같다. 이제는 끈적이고 질척이는 무거운 감정만 남았다. 그런 우울한 생각이 나와 가장 가깝다고 느끼지만, 더 했다가는 꼴이 우스워질 것이다. 지나간 글은 방치하고 또 다른 글을 써야만 한다. 펼쳐진 맥북과 더러운 메모장에 버릇처럼 휘갈긴 문장이 내 탄환이다. 써야 한다는 강박과 읽어야 한다는 구매 흔적이 거실을 초토화했다. 살도 빼야 하지만 이제 뭔가 다른 걸 써내야 한다. 다다다다다. 뭔 소리를 하는지도 모르고 어버버버. 곧 헬스장도 문을 열 것이다. 다시 월요일은 가슴 화요일은 등 수요일은 하체다. 틀림없이 모든 게 정상궤도로 돌아올 것이다.


 난 글을 쓸 때 떠오르는 상념을 어떻게 단출하게 문장에 녹일지 매번 고민한다. 마치 피에트 몬드리안의 데스테일 작품처럼 단순한 색의 배합으로 온전한 세계를 구축하고 싶은 욕구다. 항상 실패하고 말지만, 글을 쓸 때 힘이 되는 생각이다. 저만의 견고한 질서랄까. 예술이라는 거창한 말보다, 일상을 영위하는 하나의 방식에 가깝다. 손에 잡히는 주제, 심상한 분위기의 표현, 영원히 지워지지 않는 기억처럼 덧없는 순간을 포착하고 싶다. 모든 것을 수용하는 동시에 구조적인 견고함을 더할 수 있다면 좋겠다. 노란색, 파란색 그리고 몇 개의 선, 내 머릿속에 하나의 상이 만들어진다. 그건 겨울처럼 깨끗해 더할 나위가 없다. 그렇게 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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