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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민진 Mar 20. 2021

눈썹달을 따라 천천히 걷기

소재 <달>

 저녁을 먹고 복잡한 거리를 걷기로 했다. 오랜만에 도심을 가로지르고 싶었다. 신호와 기분에 따라 골목을 헤집고 나아갔다. 두 손을 주머니에 넣고 고개를 치켜든 채 보폭에만 집중했다. 백화점과 노점을 지나 옷가게가 줄지은 번화가를 스쳤다. 낡은 예술영화관 건물 앞에서 시간표와 포스터 따위를 구경했다. 근처에서 커피를 한 잔 사 마실까 생각하다 집에 사놓은 원두가 생각나서 그냥 집까지 걸어가기로 했다. 하늘에 초승달이 떠 있었다. 손톱의 끝부분처럼 가느다랗고 색을 칠한 눈썹처럼 도드라져 보였다. 이런 맑은 하늘에 저런 달이라니 웬 호사인가 싶었다. 꼭 세필로 그린 것처럼 아름다운 신월이었다. 제대로 묘사하기는 불가능하지만, 내가 떠올릴 수 있는 한 가장 근접한 표현은 달이 값비싸 보였다. 아름답다기보다는 예뻐 보여서 그런 것 같다. 난 꽉 찬 달보다 이런 이지러진 달을 보면 뭉클해진다. 흔한 드라마에 나올만한 상상이 비집고 들어온다. 뭐 대충 이런 거다. 우연히 들어간 영화관에서 포스터를 보다가 누군가와 같이 온 그를 목격한다. 별로 놀라지 않은 상태로 카톡 프로필을 검색해보는 그런 이야기. 검색창에 그의 초성을 써서 사진을 넘겨보면서 별로 다를 게 없다고 안도하는 장면들.


 따듯한 밤이었다. 사람들이 겉옷을 어깨에 걸치고 가는 게 보였다. 불어오는 실바람의 냄새를 의식할 수 있었다. 아, 이게 도시의 냄새였지. 그리고 문득 어서 여름이 왔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설익은 봄 냄새보다는 여름의 농익은 성숙함이 필요했다. 버스를 타고 우리 동네에 내렸다. 이제 낯익은 거리로 보였다. 보도블록이나 타일까지 이제 우리 동네 다웠다. 사람들이 하고 다니는 옷차림부터 거리에서 파는 음식까지 다 세트로 나온 점심 메뉴처럼 흔해 보였다. 도시 계획을 한 사람이 했는지 전국 어디나 비슷한 마을 모습이었다. 배가 고파서 어디서나 똑같이 생긴 던킨도너츠에서 커피와 도넛을 먹었다. 먹고 나면 입이 하얘지는 그걸 굳이 먹고 싶었다. 카페에서 창밖을 보니 여태 눈썹달이 떠 있었다.


 내가 좋아하는 소설 <종이달>에는 조카뻘 청년과 불륜을 저지르고 새벽 거리로 나선 리카가 신월을 바라보는 장면이 나온다. 문득 희미하게 보이는 신월을 보고 손으로 가리키며 한동안 자리를 뜨지 못한다. 중산층의 가정주부로 무난하게 살던 리카는 새로운 달을 보며 삶이 달라졌다고 느낀다. 수동적인 상태로 주어진 걸 받아들이는 데 익숙한 삶을 살았던 그녀는 이제 뭐든 해낼 수 있을 것 같은 만능감에 휩싸인다. 금기를 깨어버린 흥분과 함께 긍긍하던 처지에서 벗어났다는 실감에 전율한다. 한 번도 주체가 될 수 없었던 삶을 벗어나 만화에서나 나올 법한 대범한 범행을 저지르기 시작한다. 결국 수사를 피해 해외로 도피한 리카는 인터폴 국제 공조수사의 적색수배자가 되어 정처 없이 떠돈다. 소설은 제목처럼 그달이 종잇조각에 불과하다는 걸 깨닫는 과정을 다루고 있다. 하지만 그 달이 꽤 창창했다는 건 변함없는 사실이다. 한 여름밤의 꿈결처럼 허상에 가깝지만, 다시 시작해 볼 수 있다면 기꺼이 베갯잇에 얼굴을 파묻고 눈을 감게끔 하는 그런 여운이었다. 나는 고열량 도넛을 먹고 허리와 등을 푹신한 소파에 뉘어야 만능감 비슷한 게 나오는데, 리카는 그 야리야리한 몸으로 인생을 전복시키려고 부지런히 뛰어다녔다. 리카는 만약 다시 시작할 수 있는 리셋 버튼을 가졌다면 기꺼이 눌렀을 것이다. 한 치의 아쉬움도 아까울 것도 없는 표정으로 단호히. 소설의 말미에 리카는 이제 만능감이 다 닳아빠졌다는 걸 느낀다. 일신의 안위가 탈주의 쾌감보다 더 간절해지기 시작한 것이다. 그는 고단한 꿈을 꾼 사람처럼 입맛을 다신다. 누가 리카한테 지독하게 쓴 커피 한 잔 가져다주구려. 각성이 필요하네 각성.


 집에 도착하니 아이폰이 오늘 소모한 열량을 알려줬다. 파워워킹으로 도넛 한 조각 정도는 태워냈다. 머릿속에서 소모한 칼로리와 섭취한 칼로리가 딱 떨어졌다. 모든 게 명료한 세상에서 유일하게 희미한 건 글쓰기다. 의구심과 자책이 뒤섞여 나를 붙들어 매는 의문 덩어리. 몇 자 쓰다가 흰 벽에 부딪혀서 넘어설 수가 없었다. 아무리 까치발로 손을 뻗어도 더는 대퇴사두근에 힘이 들어가지 않았다. 노트에 적어둔 "낮에 잃은 것이여, 밤이여, 돌려다오" 괴테의 <파우스트>의 주문을 떠올렸다. 한낮의 질서 정연한 세상에서 벗어나 별의별 생각이 다 떠오르는 카오스의 새벽이 도래했음에도 머릿속은 깜깜하기만 했다. "낮에 꿈꾸는 사람은 밤에만 꿈꾸는 사람에게는 찾아오지 않는 많은 것을 알고 있다."라고 말했던 에드거 앨런 포의 글귀가 더 어울리는 밤이다. 이게 다 체력 문제야. 늦기 전에 알람을 맞추고 침대에 누웠다. 다시 어제와 같은 새벽이고 곧 출근이다. 하루가 너무 비좁다. 할 건 많은데 밤은 아무것도 돌려주지 않는다. 새벽에 하는 축구를 보고 싶지만, 아침에 회의에 참석할 생각을 하니 끔찍했다. 항상 노동은 어느 정도는 비참함을 수반한다는 걸 명심하려 해왔다. 이 정도 월급을 받으려면 어느 정도의 수치는 감수해야지. 위엄이며 품위라는 건 어쨌거나 내 속에서 해소해야 할 감정이지 타인과 부대끼며 얻어낼 수 있는 건 아닌 것 같다. 탐탁지 않았던 일들도 시간이 지나면 나름대로 귀엽게 살아가는 사람들의 모습으로 탈바꿈한다. 미덕 증후군이랄까. 어디서든 교훈을 얻어내서 다 내게 피와 살이 되었다고 믿어버리는 종교에 가까운 믿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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