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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민진 Apr 04. 2021

운동할 땐 비트가 있어야지

소재 <힙합>

 난 지적 허영을 짤랑거리는 장신구처럼 달고 다닌다. 스피노자의 잠언인 “깊게 파기 위해서 넓게 파기 시작했다”를 어디서든 아는 척을 하려면 뭐든 얕게라도 알아야 한다는 말로 멋대로 해석한다. 그래서 뭘 접하든 이것저것 주워들으며 감만 잡다가 조금 복잡해질라치면 돌아섰다. 음악을 들을 때도 마찬가지라 플레이리스트에는 이름난 클래식 교향곡 넘버를 올려둔다. 누구나 알만한 곡들만 들으면서 취향이 아니라 허영을 즐긴 것이다. 지루해도 이 곡이 그렇게 유명하단 말이지, 하면서 고개를 뒤로 젖힌다. 그건 '피에르 부르디외'의 책에 그은 밑줄 때문이기도 하다. "음악은 정신 예술 중에서 가장 '정신적인' 것으로, 음악에 대한 사랑은 '정신적 깊이'에 대한 보증이 된다." (구별짓기 p.47) 


 사실 내가 즐겨 듣는 음악은 힙합이다정신적 깊이가 얕아서 그런지 힙합은 일말의 지식 없이도 그냥 들으면 좋다일종의 '길티 플레져'처럼 어디서도 말하지 않고 혼자 즐긴다내가 가책을 갖는 이유는 가사 때문이다힙합 가사는 직설적이고 때론 폭력적이다욕설이 잦은 데다가 여성 비하적인 혐의를 지울  없는 가사도 많다드러내 놓고 얘기하기엔 부적절하다내가 힙합을 향한 편견을 조장하는  같아서 찔리지만 힙합은 에어팟에 나오는  들을 때가 가장  편하다. <나쁜 페미니스트>  록산 게이도 여성 비하 가사가 가득한 힙합 음악을 즐긴다고 고백하지 않았나그 중독성이 거의 면요리 급이다. 요즘처럼 정치적 올바름과 혐오 감수성에 섬세한 감각이 필요할 때는 행동 하나하나가  조심스러워서 음악을 들을 때도 주위 시선을 살피게 된다느슨한 순결 의식과 주색에 경도된 망나니 같은 가사에 내가 얼마나  즐거움을 느끼는지 글로도 쓰지 못하겠다. 


 글을 쓸 때는 물론 프란츠 리스트의 <순례의 해>라던지 슈만의 <사육제>, 스트라빈스키 <봄의 제전>처럼 집중하기 좋은 음악을 듣는다. 말 그대로 배경음으로 깔기 좋은 연주곡들이다. 하지만 운동을 할 때는 힙합을 자양분 삼아 거리를 뛰고 고중량 쇳덩이를 든다. 내가 최고고 너는 나보다 한 수 아래일 뿐이라는 힙합의 자랑 정서가 기분을 한껏 고양시킨다. 그렇다고 힙합이 운동에만 어울리는 건 아니다. 힙합에는 슬프고 낡은 정서도 공존한다. 가사가 중요한 장르 특성상 그 표현의 범위가 광의적이기 때문이다. 난 항상 참신한 힙합 음악들을 찾아 헤매고, 여전히 속속 새롭게 등장하는 신인류의 힙합이 내 아이폰에 올라온다. 에두름 따위 없는 직선 주로의 쾌감은 나를 움직이게 한다. 


 내게 발라드는 따분하고 록은 과잉이며 요즘 유행하는 트로트는  간지럽기만 하다오직 대중가요에서 힙합만이 제멋대로에 건방지고 안하무인이라 좋다힙합 특유의 방자하고 교만한 태도를 좋아한다발라드가 사랑 타령만 하는 것처럼 힙합도 자화자찬이 장르적 특성이다에미넴의 등장 이후 불우했던 어린 시절을 이겨내고 내가 랩으로 부자가 됐다는 자수성가 랩이 판을 쳤다거기에  자랑작업물 자랑애인 자랑시계 자랑신발 자랑인맥 자랑하는  덤이다 새롭고 참신한 라임과 플로 위에  자랑을 얹는  포인트다그건 내가 글을 쓰는 욕구와 크게 다를  없다자기중심적인 사고에서 나오는 고유한 시선을 드러낸다는 점에서 그렇다 필터를 거쳐 나온 문장은 이기적으로 느껴질 만큼  사정에만 몰두해 있다그래서 어제  가사를 오늘 행하지 못하면 구려지는 것도 힙합과 에세이의 동질감이다.


 어둡고 키치한 것에 끌리는 욕구는 어디 가서도 풀기 어렵다. 불투명한 용기에라도 담고 싶은데 그럴 때 힙합이 내 숨통을 틘다. 늘 말조심을 하고 삼가야 하는 것 투성인 직장 생활 중에 힙합을 듣는 이유다. 특히 점심 식후에 의자를 뒤로 재끼고 힙합을 들으면 살 것 같다. 나와 다른 세상에서 제멋대로 노는 래퍼들이 나랑 놀아주는 기분이다. 그들은 말한다. 가지런한 세상은 재미가 없다고, 난장을 피우면서 꽥꽥 소리를 지르자고. 고요한 사무실을 다 뒤집어 놓으라고. 아이들에게 아무리 얌전히 있으라고 말해봤자 입만 아픈 것처럼, 세상 모든 재미는 사실 뒤엎고 까불대는 카오스의 세계에 있다. 사사건건 바름을 강요하는 세상에서 대놓고 삐뚤어지고 싶은 반항심을 어떻게 참고 살까. 나는 늘 질서를 원한지만, 어쩔 땐 괴성을 지르다가 종국에는 널브러지고 싶어지기도 한다. 오직 비트 안에서만큼은 좀 더 상스럽고 못돼먹고 건들거려도 괜찮을 것 같다. 평소에는 감히 입에도 꺼내놓지 못할 가사를 들으면서 손가락을 두 개 정도 펴고 히죽거린다.


 힙합이 없었다면 섭섭했을 시간이 있었다여태껏 힙합 음악에  번도 경의를 표하지 않았다는  신기할 정도다 뇌를 차지하는 지분을 가지고 주주총회를 하면 힙합은  번째 상석에 앉아서 거만한 표정으로  노려보고 있을 것이다불량해 보이는 그 친구에게 감사의 말을 전하지 못했다힙합이 없었다면 나는  나이에 맞지 않는 전혀 다른 목표를 추구했을지도 모른다힙합이 없었다면 점잖은 일만 골라하는 샌님처럼 얌전이나 떨며 살았을지도뭐든 이치에 닿지 않는 짓은 삼가고꼴사납고 경솔하고 분별없고 때론 눈살이 찌푸려지는 문장을 용기 내서 진 못했을 것이다힙합이 없었다면  오래전부터 관능적인 관계는 포기하고 교양 있고 명예로운 사람 뒤꽁무니나 쫓으며 얼마 남지 않은 젊음을 탕진했을 것이다딱딱한 잔소리나 해대는 지루한 어른이 되었을지도 모른다나는 힙합 덕분에 도덕적 감화를 물리치는 대신에 온갖 애정 행각을 위해 뼈를 깎는 변신을 기꺼이 감수했던 제우스의 심정을 이해할  있었다.


 힙합은 누군가의 오해와 달리 이별에도 효력을 발휘했다내가 장밋빛 두근거림을 갖고 밝게만  도 힙합을 들었지만, 느닷없이 혼자가 됐을 때도 어김없이 힙합이었다. 나를 지켜준 것은 내면의 힘도 아니고제임스 조이스가 <젊은 예술가의 초상> 적었던 “다가오라삶이여.” 같은 멋들어진 문장도 아니었다어딘가에 여자들과 자빠져서 금목걸이를 차고 시건방진 표정으로  킬킬거리는  놈팡이 같은 래퍼의 도움이 컸다손에  책이 무색할 만큼 상스럽고 천박하지만 어딘지 모르게 자유로웠던 그들이  시선을 돌려놨다창밖에 펼쳐진 대자연의 숲을 바라보는 것처럼 상쾌한 기분이었다.


 결성 20주년이 되어가는 다이나믹 듀오는  학창 시절과 20대의 길라잡이였다내가 일에 진력을   퇴근길에서중고차를 사서 처음 운전을  버려진 후에 집으로 걸어가는 동안 나와 함께했다다듀는 일상과 가장 밀접한 곡을   알았고오버하지 않고 나이 때에 맞는 가사를 들려줬다. 지방의 어느 기차역에서 티셔츠에 두 사람의 사인을 받았다. 악수하고 몇 마디 나눴는데 벅찬 순간이었다. 그들은 꽤 친절했고, 내 팬심을 알아주며 화답해줬다. 버벌진트에 대한 애착도 있었던  같다네이버 1 만들어달라고 떼쓰던 진태  말고세련된 라임과 날카로운 통찰로 가사를 쓰는 철학적인 버벌진트를 추종했다싸울 듯이 사사건건 트집을 잡고 늘어지는 가사에 심취했던 기억이 있다요즘 보니 형들 많이 늙었더라


 서른 살이 넘어 즐겨 들었던 래퍼라면 빈지노와 기리보이가 있다개인적인 아픔을 세련되고 유니크하게 표현할  아는 가사를 특히 좋아했다그들의 미덕은 힙합이라는 장르를 유연하게 만들었다는  있다가사는 단순하지만 듣고 싶은 얘기만 해준다고 생각할 때가 았다돈과 여자 얘기에 쏠려있던 가사가 들을 통해 일상의 전방위로 흩어졌다어휘 사용은 형편없고 가사는 시종 모자라 보이는데 이상하게 끌린다사실 여기 열거하기 어려울 만큼 수많은 래퍼들의 곡을 듣는 이토록 풍성해지고 점점  판이 커지는  신기할 정도다한때 순위표에도 올라가기 어려웠던 국힙은 이제 메인스트림에서 당당히  축을 차지하고 있다.


 누군가에게 힙합은 <쇼미더머니> 모든 것일 수도 있다누군가에겐 아이돌의 랩이 힙합일 수도 있다그것들은 물론 모두 힙합일 것이다매주 홍대 클럽에서 푸처 핸섭을 하고, '힙합플레이야' 구독해야 진정한 리스너가 되는  아닐 것이다 그냥 힙합이라는 삶의 태도를 좋아한다내게 힙합은 현실의 반영이다과거의 자책이 악착스럽게 따라붙고미래에의 걱정이 갈수록 두터워질  비트를 켠다. 헬스장은 고독해서 비트가 뛰놀기 좋은 공간이다. 세트를 늘려갈 때마다 힙합곡을 고르면서 기운을 찾는다. 래퍼들은 천편일률적인 삶의 틈바구니 속에서 엉뚱한 짓을 일삼고도  멋지게   있음을 알려줬다현재의 폭을 잔뜩 넓혀놓고 가당찮은 불안일랑 들어오지 못하게 으름장을 놓는다. 난 거만한 표정으로 비트에 맞춰 발을 구른다. 알게 모르게 권위적으로 구는 치들 앞에서 고개를 치켜들기 위해서라도 쭈욱 비트가 있어야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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