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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민진 Sep 15. 2021

일거수일투족을 기록하는 스마트워치

장비 <스마트워치>

 아침에 일어나면서 세 번 정도 알람을 끄며 생각했다. 출근이 없으면 꽤 나은 삶일 것이다. 그런데도 무거운 몸을 일으켜 출근하는 건 출근을 하고 싶다는 방증일까. 그렇게 직업으로서의 내가 기능한다. 사무실에 들어서서 우선 팟캐스트를 얕게 틀고 문서 결재를 시작했다. 커피를 내려서 한숨 돌리고 이리저리 전화를 돌렸다. 커피의 각성이 찾아오면 사람 좋은 미소로 회의를 주관한다. 최근에는 업무 중에 카카오톡으로 이런저런 얘기를 한다. 누설할 수 없는 정보를 뺀 일 얘기가 오간다. 점심 메뉴도 빠지지 않는다. 뒷말도 무성하다. 답을 하려고 계속 핸드폰을 집었다고 놓았다가 하는 꼴이다. 번잡스럽고 여간 신경 쓰이는 게 아니다. 그런 와중에 최근 들어 러닝용으로 샀던 애플 워치를 떠올렸다. 손목에 대고 말을 하면 고대로 받아 적는 음성인식 기능으로 톡을 하면 되겠다 싶었다. '왜 여태 이 생각을 못 했지.' 난 일주일에 고작 한 번 쓸까 말까 한 애플 워치를 손목에 차고 다니면서 더는 핸드폰을 열지 않을 수 있었다. 폰을 들락거리다가 헛되이 보낸 시간을 다 모으면 대동강이 넘칠 것이다. 이 작은 기기에 많은 것이 달려있다. 것도 모자라서 손에 족쇄까지 찼다. 정말 편해지는 건지, 아니면 스스로 옥죄면서 굴레에 빠진 건지 잘 모르겠다.


 톡이 오면 무전기에 대고 말하는 것처럼 바로 답한다. 소곤소곤 말해도 정확하게 받아 적는 애플 워치 덕에 동료들의 오해를 샀다. 그들은 내가 시계 가죽끈 냄새를 맡는 줄 알더라. 누구나 다 손목시계 가죽 땀내가 고소하다는 걸 아니까. 그렇게 애플 워치를 습관처럼 보기 시작하니 별별 정보를 다 달고 살게 됐다. 우선 날씨를 항상 인식하게 된다. 창이 있어도 일하느라 잘 보지도 않는데 오히려 스마트워치 액정으로 하늘을 보는 기분이다. 그리고 무엇보다 운동량 측정이 편리하다. 내가 오늘 얼마나 걸었고, 지난 한 달간 얼마간 움직였고 그게 그 전달에 비하며 얼마나 증감이 있는지 요약해 준다. 애플 워치는 내게 계속 말을 걸어온다. 내가 얼마나 안 걷고, 얼마나 일어서지도 않는지 아냐면서, 심지어 심박 수마저 불규칙한 걸 잊지 말라고 계속 보챈다. 그 모든 게 수치로 나온 팩트이다 보니 난 초조함을 느낀다. 알았어 내가 곧 움직일게. 그럭저럭 평범하게 살고 있다고 생각했는데 이리 또렷하게 무기력할 줄이야. 물론 육체의 활력이 무기력한 잣대가 될 리 없지만, 육체와 정신은 긴밀히 이어진 사이니깐 전혀 무관하지는 않을 터다. 최근에 러닝 크루에 가입한 것도 고요한 일상을 하루하루 아무 일 없는 것처럼 흘려보내는 게 싫어서였다. 인생의 스펙터클은 아이클라우드에만 담아둔 채 젊음이 점차 사그라드는 기분이 끔찍했다. 노인네 같은 소리라서 누구에게도 못한 말이지만, 삶을 뒤바꿀 뾰족한 수가 없기에 달리기를 택했다. 애플 워치가 수긍할 때까지 움직이면 좀 괜찮아지려나.


 이틀에 한 번꼴로 동네 공원에 가서 달린다. 몸을 좀 풀면서 운동용 플레이리스트를 튼다. 평상시의 심박 수의 두 배가 되는, 분당 비트가 115 이상이 되는 음악을 주로 고른다. 역시 내 인생은 힙합인가. 어제는 뛰기 시작한 지 몇 분 만에 스마트워치에서 화려한 원형의 폭죽이 터졌다. 지난주보다 내가 두 배는 더 움직였다는 축하 멘트였다. 그리고 조금만 더 달리면 목표를 이룰 수 있다고 독려했다. 무슨 목표? 뭐가 됐든 나를 독려하는 시리를 위해 더 힘차게 발을 굴렀다. 저물어가는 여름을 구경하면서 산책을 나오신 어르신들을 바람처럼 스쳐 갔다. 거의 자정에 가까운 야밤인데도 공원은 북적였다. 긴 가을장마가 끝나고 하늘이 가을의 복귀를 알린 참이었다. 늦은 시간인데 교복을 입은 학생들이 공원 구석에 모여 있었다. 그들은 살짝 고개를 숙인 채 뭔가를 들으며 찬찬히 걷는 중이었다. 이 늦은 밤에 무슨 생각을 할까. 누구랑 통화하고 어떤 얘기를 나눌까. 교복을 갈아입지도 않고 여기서 무얼 하나. 보나 마나 학원에서 늦게 끝났겠지. 오죽 답답하면 공원에 왔을까 생각하니 마음이 쓰였다. 그중 한 학생의 통화 내용이 귀에 들어왔다. "야 지금 그걸 말이라고 하냐. 네가 대충 둘러댔어야지. 그걸 곧이곧대로 말하면 어떻게 해. 아 좆됐네 진짜. 야 됐어 끊어." 학생은 거친 말로 친구를 몰아세우고 폰을 껐다. 화가 난 듯 손가락으로 종료 버튼을 세게 때리고 주머니에 폰을 처박았다. 어른이나 애나 이 도시는 갈등이 산적해서 평범한 소갈머리로는 버텨내기가 어렵다. 이렇게 맑은 공기를 맡으며 심호흡이라도 하면서 자기 주문을 외는 수밖에 없다. 이건 내 인생에 먼지보다도 작은 일이야. 개의치 말자.


 최근에 한 친구와 18년 남북정상회담 이후로 처음 파스타 집을 찾았다. 메뉴를 보고 파스타에 곁들일 단백질류의 요리를 찾았지만 신통치 않았다. 친구는 파스타 집에 왔으면 그냥 밀가루나 먹으라고 말했지만 난 도리질을 치며 그나마 몇 개 없는 베이컨을 집어먹었다. 난 떡볶이나 짬뽕처럼 단백질 함량이 적은 음식을 싫어한다. 그래서 내 냉장고와 부엌 귀퉁이에는 온갖 단백질 식품이 있다. 왜 이렇게까지 됐는지 생각해보면 그건 다 헬스 유튜버 때문이다. 그들은 십 년 전부터 내 스승이었는데 영상마다 몇 번씩 단백질 보충을 강조했다. 운동하고 프로틴을 섭취하지 않으면 오늘 헬스장에서 용쓴 게 다 헛것이 될 거라고 겁을 줬다. 운동하는 작자가 밀가루와 염분에 과다 노출되면 근육이 다 말짱 도루묵이 된다나. 그렇게 그들은 조회 수를 올렸지만, 난 비건의 시대에 붉은 육류만 줄곧 먹었다. 그래도 최근에는 고기를 좀 줄여보려고 노력하고 있지만 쉽지 않다. 두부와 버섯으로는 도통 힘이 나지 않는다. 그래서 내 나름의 규칙을 만들어서 월요일은 고기, 화요일은 채식으로 번갈아 가면서 섭취한다. 이런 내게 달리기는 불필요한 지방량을 덜어내는데 제격인 운동이다. 땀을 쭉 빼면 식욕도 떨어지고, 잠도 잘 와서 치킨을 향한 욕구도 잠잠해진다.


 살면서 점점 더 육체적인 사람이 되어감을 느낀다. 정신도 육체 안에 담겨있으니 우선 신체를 잘 다듬어야 정신도 말짱하지 않을까. 과거에는 무조건 고뇌하는 청년을 자임했지만, 지금은 군살이 붙지 않은 몸을 멋으로 여긴다. 비싼 노트와 맥북의 성능보다는 오래 앉아 있어도 허리뼈 부근이 뻐근하지 않도록 척추기립근 단련에 힘쓴다. 서른 중반치고 너무 노티 나는 얘기지만 하루만 아파봐도 몸이 얼마나 중요한지 체감할 수 있다. 애플 워치는 내가 헬스장에서 든 쇳덩이는 측정하지 못하지만 그래도 난 거의 매일 체육관에 들른다. 운동을 마치고 내 둔부와 대퇴부가 욱신거리면 확실하게 살아있는 기분이 들어 흡족하다.


 어제는 다큐멘터리로 여러 동물을 보다 잠자리에 들었다. 유튜브는 사파리보다 다양한 동물이 사니까. 자연공원에서 자동차를 타는 대신 내 방 침대에 누워서 멍한 표정으로 구경했다. 설치류에 갑각류까지 가리지 않고 총출동했다. 난 그걸 멍하니 지켜보면서 고기가 먹고 싶다고 생각했다. '아 랍스터, 아 안창살' 저녁 식사를 샐러드로 한 탓에 금세 허기가 진 것이다. 빨리 잠들었으면 좋을 텐데 뱃속이 밥 달라고 요동쳤다. 육체와 정신이 늘 쉽게 합의에 이르는 나는 배가 고프면 기분마저 우울해진다. 나도 모르게 지글지글 구워낸 삼겹살을 떠올렸다. 사파리 대신 쯔양 먹방을 틀고 고통에 신음했다. 김치를 올리고 밥과 함께 싸 먹는 쯔양은 아무 걱정이 없는 사람처럼 보였다. 진짜 내일 일어나기만 해 봐라. 아침부터 삼겹살을 구울 테다. 한참 비건 얘기를 해놓고 고기 먹는 글을 쓰는 건 마치 동네 고깃집 간판에서 불판을 들고 동족을 구우면서 미소를 짓고 있는 피글렛 캐릭터처럼 야만적인 짓이지만, 애플 워치가 오늘은 활동량이 충분했다며 다독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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