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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해와 Jul 21. 2020

비건을 선언하다

내가 알고도 몰랐던 세상

아는 것이 모르는 것이다. 어딘가에서 들어 본 말인 것 같기도 하다. 이 말을 떠올리기 시작한 것은 내 스스로 남들보다 조금 더 아는 것을 잘 모른다고 말하기 시작하면서 부터였다. 무엇도 완벽하게 알 수는 없다 여기며 아는 것에 대해 겸손해지는 나를 발견했을 때부터.


나에 대해 안다고 생각했지만 나는 내 트라우마에 대해 몰랐고, 나의 반려견에 대해 잘 안다고 생각했지만 동물권에 대해 생각해본 일 없었고, 여성에 대해 잘 안다고 생각했지만 페미니즘은 몰랐고, 좋은 음악, 좋은 글에 대해 편협한 편견이 있었다.


나는 햇수로 비건 5년째에 접어들고 있다. 길면 길고 짧다면 짧은 시간이다. 그 마저 온전한 비건으로 살지 못했다. 정신력도 약했고, 걱정도 많았으며, 좋아하는 음식은 대부분 동물성이 많았다. 그런 내가 무려 5년동안 비건을 유지하고 있다.


고기를 많이 먹는 것과 내가 나의 반려견을 사랑하는 것에 아무런 관계가 없다고 생각하던 시절이 있었다. 유기견을 보면 안타까웠고, 로드킬 된 고양이를 보면 가만히 명복을 빌어주는 것으로 나는 내 몫을 다 하며 산다고 여겼다. 그런 내가 세상을 구하는 글을 쓰고 싶다는 욕망이 가지고 살던 시절이었다.


페미니즘을 처음 접하게 되었을 때 나는 큰 충격을 받았다. 좋은 세상을 꿈꾸던 내가 인권문제조차 몰랐던 것이다. 페미니즘이 많은 것을 바로잡을 것이라는 생각을 가지고 깊은 관심을 가졌다. 그리고 자연스레 동물권을 접하기 시작했다.


페미니즘으로 내 인생이 송두리째 흔들리던 시기였다. 내가 사용하는 언어와 살면서 받았던 수많은 성희롱, 성추행을 잊지 못하고 살면서도 많은 사람들의 반인권적 행동에 동조하거나 방관하는 모든 행동을 변화시켜야 했다.


초조하고 어렵고, 부정적이고 겁많은 상태가 지속되었다. 설상가상으로 인간 뿐만 아니라 동물에 대해서도 고민하고 행동해야 하는 것들이 점차 늘어났다. 이 모든 것을 알기 전으로 돌아가고 싶었다. 부끄러움도 모르는 시절로 돌아가면 뻔뻔해도 마음은 편하게 살 수 있지 않았을까.


공부할 것도, 고민할 것도, 실천할 것도 많아 피로감을 느끼던 어느날 유튜브를 통해 영상 하나를 보게 되었다. 수컷 병아리들을 컨베이어밸트 태워 믹서기로 보내버리는. 그리고 그 자막. ‘수컷 병아리들은 알을 낳을 수 없고 맛이 없어서 미리 선별해 산 채로 갈린다. 이렇게 갈린 병아리들은 다른 동물들의 사료로 쓰인다.’


눈물이 났다. 영상을 더 볼 수 없어 화면을 끄고는 한참을 어둠 속에서 울었다. 생각을 거듭할 수록 그 자막과 영상이 선명해졌다. 치킨집들이 한창 우후죽순으로 생겨나고 이틀에 한번꼴로 치킨을 먹는 것이 문화가 되어버린 시기였다. 맛이 없고, 알을 못낳는 다는 건 그 모든 생명이 인간을 위해 살거나 죽는다는 말이었다.


나도 마찬가지였지만 요즘 사람들은 치킨을 많이 먹는다. 양계장이 많다는 것, 고기로 만들기 위해 키워진다는 것들을 모두 알고 있었지만 나는 정말 하나도 몰랐던 것이다. 속속들이 알았다고 해도 아무것도 깨닫지 못했다면 그건 모르는 것이다. 나는 전혀 몰랐다. 어떤 존재가 나를 위해 키워지고 나를 위해 죽어주고 있다는 사실을.


그 이후로 한달간 나는 고기로 쓰이는 모든 동물들의 영상을 찾아봤다. 양계장과 축산업, 우유를 뽑아내기위해 젖소에게 무슨짓을 하는지까지. 충격은 충격인 상태에서 나를 꺼내주지 않았다. 나는 뭐라도 해야된다고 생각했다. 캠페인을 할까, 노래를 부를까, 글을 쓸까. 나는 할 수 있는 것들을 해보려다 하던 것을 멈추는 것을 선택했다.


모든 동물을 끊겠다고 다짐했다. ‘나는 앞으로 그 어떤 동물성 식품도 먹지 않겠다’ 가족과 친구들 앞에서 선언했다. 나보다 그들이 더 난리였다. 비웃거나 약을 올렸다. 그냥 먹으라며 설득을 하기도 하고, 비건을 하는 나를 욕하기도 했다. 지인들과 만나기 불편한 상황이 많아졌지만 나의 마음은 그 어느때보다 확고했다. 나는 베지테리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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