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도 끝도없이 나쁜시절
처음에는 스스로 베지테리언이라고 밝히는 일을 서슴치 않았다. 내가 이러저러한 계기로 채식을 시작했고 나는 가치있는 일을 하고 있다고 오히려 뽐냈던 것 같다. 초반엔 친구들에게 동물들이 길러지는 실태에 대해 설명하면 놀라워하고 대단하다는 반응이 있기도 했다. 그러나 그런 분위기는 오래가지 않았다.
함께 밥을 먹기가 쉽지 않았다. 그때는 완전 비건이었기에 육류 뿐만 아니라 우유, 달걀, 해산물을 전부 먹지 않았다. 고를 수 있는 메뉴가 매우 한정적이었다. 백반집에 가서도 다시다가 들어있을까봐 밥만 먹는 일도 허다했다. 모두를 불편하게 하는 것이 내탓인지 아닌지 헷갈렸지만 고작 그런 이유로 비건을 그만 둘 수는 없었다.
어느날은 집으로 돌아왔는데 삼겹살 냄새가 나는 것이었다. 엄마가 내 눈치를 보더니 “냄새 많이 나?”하는 것이다. 나는 괜찮다고 말했다. 엄마는 냄새가 안빠진다고 연신 미안하다 말하며 선선한 가을밤에 온 집안 문이란 문은 다 열어놓고 부채질을 해댔다.
“요즘 너무 풀만 먹었더니 몸이 쇠약해지는 것 같아서” 엄마가 말했다. 나는 그런 엄마에게 미안해져서 “나 괜찮으니까 고기 먹어도 되~”라고 대답했다. 그러자 엄마는 부채질이 힘들었는지, 눈치를 보기 힘들었는지 갑자기 버럭 짜증을 냈다. “그러니까 왜 갑자기 채식을 한다고 해서 이 고생을 하게 만들어!!”
낯선 상황과 환경을 마주한건 나 뿐만이 아니었다. 나와 교감하고 싶어하는 모두에게 일어난 일이었다. 나는 그럴때마다 해명같은 설명을 하려들었고 가족이나 친구들은 그럴때마다 귀찮다는듯 알았다고 할 뿐이었다. 점점 누군가와 함께 밥을 먹는 일이 불편한 거사가 되어버리고 있었다.
함께 놀러가는 것도 자제했고, 술을 잘 마시지 못해 술먹는 자리도 피했다. 카페에 가도 디저트를 눈치보며 먹게 하고 싶지 않아 홀로 다녔다. 나는 외로워도 스스로 원래 혼자가 편한 사람이라며 위로했고, 마음의 고립은 점점 깊어져갔다.
세상 탓을 하다가도 내 탓을 하게 되었고, 내 탓을 하다보면 끝없이 가라앉았다. 좋게 생각하면 한없이 좋고, 나쁘게 생각하면 한없이 나쁜게 인생이랬나. 한도끝도없이, 밑도끝도없이 나쁜시절이 나를 지나가고 있었다. 운명인지 우연인지 내게 ‘그’ 일이 일어나기 전까지는.